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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을 함께 보며
전남대 6월항쟁 동지회(준) 결성한 까닭
서일환
기사 게재일 : 2018-01-12 06:05:01
▲ 전남대 6월민주항쟁동지회 준비위원회가 6일 메가박스 전대점에서 진행한 영화 ‘1987’ 단체 관람에 앞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1971년 4월27일 제7대 대선에서 마지막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았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자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는 12·12 반란과 5·17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했다.

 전두환은 1980년 8월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접선거에서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다시 1981년 2월 대통령선거인단 간접선거로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민은 전두환 군부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을 다시 시작했다.

 1985년 개헌 현판식을 필두로 직선제 개헌 요구가 봇물이 터졌다. 1986년 서울대 권인숙양 성고문 사건과 1288명이 구속되는 건국대 사건이 일어났다. 1987년 벽두에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서울대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국민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직선제 개헌을 요구했다. 전두환은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 요구를 거부하고 4·13 ‘호헌’(헌법수호) 조치를 발표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에서 호헌 철폐와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 은폐를 규탄하는 집회에서 이한열 군이 최루탄 피습으로 쓰러졌다.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결국 노태우는 6.29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26년 만에 실시된 대통령 직선제에서 야당은 김영삼의 후보 단일화, 김대중의 비판적 지지, 백기완의 독자후보 등으로 분열됐다. 결국 여당의 노태우가 당선돼 또다시 군부독재가 연장됐다. 하지만 민주화의 요구가 계속됐고 결국 전두환과 노태우는 구속됐다.

 1987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승만이 되살아나 MB다스를 만들었고 박정희가 부활하여 국정을 농단했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어 ‘박’ 대통령의 악령을 잡아냈고 헌법의 이름으로 ‘이’ 대통령의 원귀를 추격하고 있다.

 30년 전에 도서관 앞 5·18 광장에서, 도청 앞 금남로에서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직선제 개헌’을 외치던 동지들과 함께 ‘전남대 6월항쟁 동지회(준)’를 결성했다. 그리고 최근 동지들과 가족들을 초대하여 영화 ‘1987’ 무료관람 행사를 진행했다.

 1987년 꽃다운 청춘을 최루탄에 눈물 흘렸고 군화발에 붉은 피를 흘렸고 수배되어 경찰에 쫓겼고 구속되어 감옥에 갇혔다. 영화 ‘1987’ 막이 오를 때부터 내릴 때까지 30년 전 뜨거웠던 과거를 생각하며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서일환 <광주우리들병원 행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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