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사회·문화 전반 정서 공동체
행정단위 전라도보다 더 친숙한 개념

▲ 전라도라는 지명의 한축인 나주시 향교의 모습.
 1018년, 고려 현종은 전라도를 탄생시켰다. 그 뒤로 천년이 흐르고 2018년, 전라남·북도와 광주시 등 행정기관은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호남민심, 호남고속도로, 호남선, 호남평야 등 정치·사회·경제·문화 전반에선 전라도보다 ‘호남’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고 있다.

 전라도와 호남, 우리는 언제부터 어떻게 두 단어를 혼용하게 된 것일까.

 호남이란 단어는 지역민들에게 정서적으로 가깝고 서민들에게 익숙한 단어다.

 현종 9년, 고려는 지방행정제도를 개혁하면서 전주와 나주의 이름을 따 ‘전라도’를 만들었다. 중앙정부가 5도양계 체제를 두면서 나오게 된 하나의 ‘행정단위’ 개념이다. 국가권력의 의지로 만들어지고, 지역민들이 받아들인 지명인 것.
 
▲정부 기록보다 민간영역에서 먼저 등장

 반면 호남이라는 개념은 정부의 공식 기록보다 민간 영역에서 먼저 등장한다. 호남이라는 말은 행정지명이 생겨나면서 지역민 사이에서 불려지게 된 하나의 ‘별칭’으로 추정된다.

 한편 호남(湖南)은 ‘호수의 남쪽’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호수’가 어디냐는 데엔 해석이 엇갈린다. 일반적인 견해는 김제에 위치한 ‘벽골제’ 이남을 호남의 기준점으로 보는 학설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호’를 꼭 호수로만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고려시대 등장하기 시작한 ‘호’의 개념은 강으로 혼용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전라도를 탄생시킬 때 전라북도 지역의 지명이던 ‘강남도’가 호남으로 탈바꿈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려 승려 천인, 문신 이성, 문인 탁광무의 시 등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고려 중-후기 이미 민간에서 별칭이 활발히 쓰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식 기록에 등장하는 건 조선시대 세종실록이 처음이다. 이후 선조 대에 사용빈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임진왜란 후, 사림파가 등장하고 향촌사회엔 사족지배체제가 정립되면서 공식 기록에 자주 등장하게 되는 시기. 오늘날로 이어지는 ‘호남’이 역사에 전면 등장한 것이다.

 특히 17~18세기 이후엔 제도·관청·관직이름 등에서도 등장하며, 행정명칭인 전라도보다 ‘호남’이 더 사용되는 시기도 발견된다.

 전남대 코어사업단 조상현 학술연구교수는 “호남이란 명칭은 행정명칭과는 다르게 지역민들이 친숙하게 흔히 썼던 별칭으로 풀이된다”며 “금강 아래쪽을 친근하게 부르는 단어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정서적 공동체…문화적 기저는 호남

 고석규 전 목포대 총장에 따르면, 이후 호남에는 사림들로 의한 의향(義香)적 성향과 변방으로서 민중성 부각으로 인한 ‘소외, 저항, 한’ 등의 정서가 형성된다. 또한 정치적 소외와는 달리 풍요로운 자연이 주는 삶의 질은 ‘예향(藝鄕)’과 ‘미향(味鄕)’, 개방성, 진취성, 다양성 등 특성들이 덧붙여져 ‘호남문화’를 형성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현대까지 이어져, ‘호남’은 사회 전반에서 서남해안지역을 통칭하는 개념, 행정·사회·문화 전반에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고 전 총장은 ‘전라도 역사의 재조명’을 통해 “호남이란, 행정단위인 전라도와 달리, 정서구역의 ‘정서’를 형성하는 주체”라고 주장했다.

 한 지역 역사학계 종사자는 이에 대해 “현재로서는 전라도라는 말보다 호남, 경상도라는 말보다 영남이라는 말이 더 익숙한 것이 사실”이라며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아 기념사업이 이뤄지는 지금, 전라도라는 지리적, 문화적, 정서적 동질감을 회복하기 위한 문제의식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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