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면 트라우마, 38년간 마음으로만 간직”

▲ 5·18미공개 영상에서 38년 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이윤희 씨가 14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자신이 소장한 5·18 관련 기록물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은 1980년 8월 당시 청년 시절의 이윤희 씨.<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지난 9일 공개된 5·18영상기록물에서 38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이윤희 씨는 14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하 5·18기록관)에 자신이 가진 기록물을 기증하겠다는 의사와 함께 5·18 당시에 대한 자신의 기억도 전해 왔다.

이날 5·18기록관에 따르면, 이 씨는 5·18기록관에 “5·18 관련 기록물을 찾았다”며 이메일을 보내왔다.

앞서 지난 11일 5·18영상기록물 관련 ‘연합뉴스’ 보도를 보고,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 이메일을 보내 “영상에 나오는 태극기 옆의 모습이 바로 저”라고 밝힌 이 씨는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 5·18기록관과도 연락이 닿아 “(영상기록물 관련 보도의)그 사진을 보고 즉시 알아봤다. 실로 38년 만에 저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했다”며 “눈물만 나올 뿐이다”고 심경을 전했다.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5·18 관련 기록물을 5·18기록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 씨는 기록물을 찾은 뒤 보낸 이메일에서 “오랜만에 5·18 항쟁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거듭 감사 뜻을 밝혔다.

이어 “매년 5월이면 트라우마라고 할지, 고심이 깊어지는 날로 지새고 있었다”며 “38년 동안 마음 속으로만 깊이 간직하고 있었지 실제로는 말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더구나 한인 이민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그동안의 고통을 털어놨다.

5·18미공개 영상에서 38년 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이윤희 씨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하겠다고 밝힌 나주지역 5·18 관련 기록물.<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이 씨는 “매일 같이 수십 구의 시신이 들어오면 염 작업과 함께 일일이 태극기를 덮어주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며 “때로는 시 외곽 경계 초소에 물품을 운반해주는 일로 일주일을 보낸 거 같다”고 5·18 당시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당시 목격한 참혹한 현장 상황을 설명하며 “20대 청년의 모습에서는 못볼 것을 본거 같은 트라우마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마지막 날 진압이 시작되기 두 시간 전에 선배님들의 권유로 도청 담을 함께 뛰어 넘었던 남여 고교생 3명을 지금까지 찾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도 최초 발포 명령자를 가리지 못한 현실 속에서 ‘그들’을 역사로 단죄를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면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반드시 진실을 밝혀 민주열사들의 원혼을 위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캐나다의 한 주립대학 교직원으로 10여 년 일하다 퇴직하고 지난 1월 캐나다 한인회 총연맹 회장으로 취임했다.

올해 가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 행사가 끝난 뒤 광주를 찾아 국립5·18민주묘지, 망월 옛묘역 등을 찾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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