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교내 설치 기념물 앞에 나무들 심어 가려
“민주주의 역사 부끄럽나?” 비난 쇄도에 바로 제거
학교 “추모비 너무 튀어서 가리려는 목적” 해명

▲ 송원고 교내에 설치된 이재호 열사 추모비가 나무 식재로 가려져 있을 당시의 모습.<사진 출처=페이스북>
 광주 송원고가 학교 안에 세운 ‘이재호 열사 추모비’를 일부로 가린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다. SNS 등을 통해 논란이 확산되고, 비난이 쇄도하자 송원고는 곧바로 나무를 제거했다.

 이렇게 상황은 일단락 됐지만, ‘학교측이 왜, 이 열사의 기념비를 감추려 했는지’ 그 배경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8일 SNS에서 ‘송원고’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교육계 한 인사 A씨가 이날 페이스북에 ‘송원고를 방문하니 이재호 열사 조형물을 가리는 나무가 식수돼 있었다’는 글과 함께 사진을 첨부하면서부터다.

 해당 사진에는 나무에 가려진 추모비가 조형물 끝의 일부만을 드러낸 채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나무 식재 전 사진도 함께 첨부됐는데, ‘평화의 울림’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비석 위에는 스테인리스 소재의 조형물이 설치된 모습이었다. ‘평화의 울림’은 이 열사의 동기들로 구성된 이재호기념사업회가 지난 5월 학교 운동장 뒤뜰 부지에 설치한 것이다. 이 열사는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86년 시위 현장에서 ‘반전반핵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치며 산화했다.
 
▲이재호 1986년 “반전반핵” 분신 산화

 A씨는 “식재된 나무의 위치로 보아선 추모비를 가리려는 인위적 의도가 확연하다”며 “학교가 민주주의 역사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건가”라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송원고 내 이재호 열사 추모비.|||||

 논란은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학교 측에 대한 항의로 이어졌다. 이날이 일요일이었음에도 학교는 곧바로 나무를 제거하고 원상 복귀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송원고 관계자는 지난 1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 열사 추모비 앞에 나무를 심은 지 열흘 정도 됐는데, 갑자기 해당 사실이 알려져 (여러 통로를 통해) 연락을 받게 됐다”면서 “지체할 이유가 없어 그날 바로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교 관계자는 “이 열사 추모비가 너무 튄다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원래 계획된 비석의 크기보다 훨씬 크고 부각되는 것 같아 나무를 심어 시선을 분산시키려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사실, 이 열사 추모비가 학교 안에 세워지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다”며 “추모비가 설치되는 것부터 굉장히 조심스러웠는데, 막상 세워지고 나니 마치 추모비가 송원고를 대표하는 상징물처럼 보이는 게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이 열사의 동문 B씨는 “모교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안타까운 심경”이라며 “3년 넘게 추모비 설치를 위해 노력해 간신히 이뤄진 숙원인데, 학교의 유치한 대처로 그 의미가 일보 퇴색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열사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실천적으로 저항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이 보수적인 관점에선 불편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가리는 식으로 역사를 부정해선 안 되고, 더 이상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권위주의 정권 맞선 극단적 저항 부담?”

 한편 송원고 내 설치된 이재호 열사 추모비에는 ‘평화의 울림’과 ‘민주·평화 열사 이재호’가 새겨져 있다. 비석 윗 부분은 이 열사의 친구이자 조각가인 이상길 작가가 ‘한라에서 백두까지 한반도 모습을 표현’한 스테인리스 조각을 세웠다.

 이는 우리의 일상을 투영하고 나를 바라보는 거울을 의미하고, 야간에는 LED 조명을 비춰 이 열사의 메시지가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지난 5월19일엔 송원고 동문들과 이 열사 유가족들, 이용섭 광주시장 (당시 시장 후보), 학교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이 진행됐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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