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법 미쓰비시 항소기각 1억~1억5000만 원 배상 판결
소멸시효 대법 전합 판결 10월30일부터 적용…추가 소송 길 열려

▲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유족 오철석 할아버지와 피해 당사자 김재림 할머니가 5일 항소심 승소 판결을 듣고난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또다시 승소했다.

5일 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판결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온 것.

특히, 이번 판결에선 일제 전범기업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가 남아있다는 판단이 나와 다른 피해자들의 추가 소송으로 이어질지 주목되고 있다.

5일 광주고법 민사2부는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유족 등 4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2차)과 관련한 항소심에 대해 미쓰비시중공업의 항소를 기각했다.

피해 원고들에 대한 미쓰비시 측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을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2차 소송은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심선애(1930년생)·양영수(1929년생)·김재림(1930년생) 할머니와 1944년 일본 나고야로 끌려갔다 대지진으로 사망한 고 오길애 씨 유족 오철석 할아버지(1936년생) 등 4명이 원고로 참여하고 있다.

앞서 광주지방법원은 지난 8월11일 1심 판결에서 심선애·양영수 할머니에 각 1억 원, 김재림 할머니에 1억2000만 원, 오철석 할아버지에 1억5000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광주고법 “항소 내용 인정안돼” 기각

미쓰비시중공업은 한국법원의 재판관할 문제, 일본기업들의 배상 책임 여부, 청구권 소멸 등의 이유로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했다.

하지만 광주고법은 또 다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광주고법은 이날 판결에서 “구 미쓰비시중공업의 행위는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미쓰비시중공업의 손해배상책무를 인정했다.

미쓰비시 측 문제제기에 대해선 “대한민국은 이 사건과 실질적 관련성이 인정된다”며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관할을 인정했다.

또 지난 10월30일 일본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피해자들의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아직까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시효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소를 제기할 무렵까지도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며 시효가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판결 후 기자들과 만난 피해자들.

미쓰비시 측은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 발표, 2012년 대법원 파기환송 등을 장애사유가 해소된 지점으로 봤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광주고법은 장애사유 해소 시기로 올 10월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진 날부터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10월30일 판결로 청구권협정에 관한 해석을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비로소 장애사유가 해소됐다”고 밝혔다.

5일 미쓰비시 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판결 후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광주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쓰비시 측에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피해자들 “이제 죽어도 원이 없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과 피해 원고 등은 이날 항소심 선고 직후 광주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쓰비시 측의 사죄와 즉각적인 배상을 촉구햇다.

시민모임은 이날 판결에 대해 “우리는 오늘 일제 식민범죄와 인권유린이 이 땅에 발딛고 설 수 없으며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쓰비시중공업은 상고를 포기하고 판결을 즉각 이행하라”고 촉구하며 “더불어 한국정부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이 조속히 실현될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선고를 지켜본 피해 원고 김재림 할머니는 “이제 죽어도 원이 없고 눈감고 죽겠다, 감사하다”고 했다.

유족 오철석 할아버지는 “오늘에서야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본다”며 “이제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나라가 된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유족 오철석 할아버지와 피해 당사자 김재림 할머니가 5일 항소심 승소 판결을 듣고난 법원을 나서고 있다.

▲소멸시효 명시…“추가 소송 이어질 듯”

한편 이번 판결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처음으로 명시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평가다.

법원은 2018년10월30일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장애사유 해소’ 기점으로 봤다.

소송대리인 김정희 변호사는 “대한민국 법률에 의하면 사건 발생 부터 10년이면 시효가 소멸된다”며 “이번 광주고법의 판단은 2018년 10월31날로 소멸시효가 기산돼야 한다고 명시한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사유가 해소되고 소멸시효가 다시 진행된다면, “언제까지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이상갑 변호사는 이에 대해 “판례는 ‘상당한 기간’ 안에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며 “그 기간은 적어도 6개월 길게는 3년”이라고 해석했다.

이대로라면, 2018년 10월30일 기준 짧게는 2019년 4월30일, 길게 보면 2021년 10월 31일까지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시민모임 이국언 대표는 “최근 판결들과 시효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피해자들이 추가로 소송에 참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며 “(적어도) 지금 파악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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