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공공 동물장묘시설 검토해야”

 사례1. A씨는 어릴적부터 키우던 반려견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결혼 후 노년기를 함께 보내지 못한 탓에 죄책감이 컸다. 하지만 이내 사체를 처리해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렸다. 인터넷을 통해 지역 사체처리 업체를 찾아 문의했으나 대기자가 많아 그마저 쉽지 않았다. 결국 불법인걸 알면서도 몰래 야산에 들어가 반려견을 묻었다. 이날의 기억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사례2. B씨는 자동차사고로 고양이를 잃었다. 주말 저녁에 일어난 사고였다. 사체처리를 위해 동물병원에 문의했더니 “해줄 게 없다. 산에 묻어줘라”는 말이 돌아왔고, 동물장례식장에선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답변했다. B씨는 집 안에서 차가운 사체와 함께 힘든 주말을 보낸 뒤에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들은 동물의 죽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반려동물이 죽으면, 천국과 지상을 이어주는 무지개다리에서 주인이 죽어서 올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10여 년을 함께 지내며 가족처럼 사랑했던 동물과의 이별은, 사람들을 ‘펫로스 증후군’에 빠지게도 한다. 관계의 상실로 인해 심한 상실감과 우울증에 빠져 일상생활에까지 지장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이처럼 반려동물과 사는 시민들에겐 반려동물의 죽음이란 단순한 ‘폐기’가 아니라 가족을 잃는 아픔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반려동물을 곱게 무지개다리로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반려동물을 위한 장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9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전국의 동물장묘업체는 31곳이 운영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국민 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기르는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처리계획에 대해 “반려동물 장묘시설을 이용하겠다”는 답이 59.9%로 가장 높았다.

 2017년 기준 전국의 반려동물 수는 874만 마리(개 632만 마리, 고양이 243만 마리)로 추정되는데, 현재 동물장묘업체 수 31개는 1년 내내 24시간 시설을 풀가동시킨다 해도 이들의 죽음을 처리하기엔 부족한 숫자다.

 반면 주거지나 야산에 매립하겠다는 답이 24%로 나타났다. 4명 중 1명은 ‘불법’적인 방법을 계획하고 있는 셈이다.

 현행 동물보호법·폐기물관리법은 동물의 사체를 ‘폐기물’로 규정하고 있다. 동물병원에서 죽은 경우 ‘의료폐기물’, 그 외 장소에서 죽으면 ‘생활폐기물’로 분류된다. 반려동물이 동물병원에서 죽었다면, 사체는 동물장묘업체에 전달돼 처리된다. 하지만 자택이나 야외에서 반려동물 사망 시에는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거나 동물장묘업체에 직접 인도하도록 하고 있다. 야산이나 사유지 등 다른 곳에 임의로 매립하거나, 임의로 소각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광산구에 위치한 동물장례식장 모습. <홈페이지 캡처>

 더욱이 광주전남에는 동물장례식장 한 곳을 제외하면 동물장묘업체가 전무한 실정이다.

 동물장묘업은 △동물장례식장 △동물화장시설 △동물봉안시설로 나뉘는데, 광주 광산구에 위치한 장례식장은 화장시설과 봉안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장례식’만 진행할 수 있다. 따라서 해당 업체는 장례식만 진행한 뒤 사체는 화장시설을 갖춘 전북 등 타지역 업체에 이송해 화장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엔 광주지역 한 장례업체가 장례식장과 화장시설, 봉안소를 모두 갖춘 동물장묘시설 건립을 추진했으나, 인근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힌 상황이다. 경기 고양, 용인, 수원, 인천, 대구, 전북 전주, 경남 김해 등 전국 곳곳에서도 “혐오시설이다”는 주민들의 반대로 민간업체들의 동물장묘시설 설립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자연히 “4가구 중 1가구 꼴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상황에서, 공공 영역이 반려동물의 장묘시설을 확보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광주 첫 광주동물장묘시설 건립이 추진됐지만, 주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사진은 주민들의 구청 항의방문 현장.

 이에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지자체가 장묘시설을 설립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고, 전북 임실군과 경남 김해시에서 지난해부터 ‘공공 동물장묘시설’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임실군 관계자는 “처음엔 지역에서 반대가 있었지만, 공원 형식으로 깨끗하게 계획하고 주민들 설명회 등을 통해 이제는 원활하게 추진되고 있어, 내년 말까지 완공될 예정”이라며 “임실군은 인근을 반려동물놀이터, 카라반캠핑 등을 포함한 대한민국 최고의 반려동물 테마공원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광주시는 공공 동물장묘시설에 관해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주민들이 동물장묘시설을 기피시설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추진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게 광주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공설장묘업체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개정 동물보호법이 3월부터 시행되는 것은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주민들이 반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동물보호단체와 의회 등에서 협의가 되고 시민공감대가 형성돼야 추진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7 반려동물 양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광주지역 반려동물 양육 가정은 18만 가구 정도로 추정된다.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 가구 중 31%가 반려동물을 양육하고 있는 셈.

 광주 녹색당 이소영 운영위원은 “반려동물 시대지만 여전히 법률 상으론 반려동물을 물건 취급하고 있는 상황은 가족이라 생각하는 동물을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하는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통계를 보면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반려동물을 양육하고 있는데, 지방정부는 이 시민들을 위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광주는 아직 동물복지라는 개념에 접근하지 못하고 여전히 보호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선도적으로 동물복지 조례를 만들었던 것처럼, 인식개선을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를 벗어나 다양한 교육 등 적극적으로 시민 인식을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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