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무기력” 비판 속
“패 다 깐 전두환, 대응 용이” 분석도

▲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이 11일 재판 출석을 위해 광주지방법원에 들어가고 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전두환은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곧장 법원으로 들어가면서 취재진이 질문하자 “이거 왜 이래”라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전두환이 직접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한 가운데 열린 지난 11일 사자명예훼손 재판을 지켜본 일부 시민들은 적지 않은 불만을 쏟아냈다. 상당 시간 동안 전두환 측의 ‘변명’만 듣다가 재판이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이날 재판은 당초 길어야 30분 정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1시간15분 정도가 소요됐다.

 전두환의 변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검찰 측이 기소에 이르게 된 과정과 수사 내용, 사자명예훼손 판단 이유 등을 압축적으로 제시한데 반해 전두환 측의 진술은 장황했다.

 5·18 당시 계엄군 헬기사격을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부터 시작해 사자명예훼손죄의 성립 요건 등을 조목 조목 설명했다.
 
 ▲전두환 측 변호인 무려 40분간 공소사실 조목조목 반박
 
 전두환이 고 조비오 신부와 관련해 회고록에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목사가 아니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적은 것이 허위사실인지 아닌지와 전두환이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러한 표현을 썼는지 고의성 여부 등을 토대로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여기다 전두환 측은 진술에 앞서 형사소송법 등의 관련 조항을 일일이 열거하며 상당 시간 동안 “광주지방법원에 토지 관할이 없다”며 토지 관할 이전 신청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는 이미 법원의 판단이 끝난 부분인데도 또 한 번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전두환 측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데 40분 가량이나 걸렸다. 재판을 방청한 시민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형사 피고인 전두환은 꾸벅꾸벅 졸고 있고, 장시간 전두환 측이 ‘자기 변명’만 늘어놓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 것이다.

 속이 탄 시민들은 중간 중간에 법정 뒤쪽에 마련된 생수를 마시기도 했다.

 그런데 시민들을 더 당황케 한 것은 재판이 여기서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검찰 측이 피고 측 진술에 대한 재반박이나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이 마무리되자 시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급기야 한 시민은 벌떡 일어나 “저 변호사(전두환 측 정주교 변호사)가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고 외쳤다가 제지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재판 이후 전두환이 탑승한 차량에 그동안 쌓인 분노를 토해낸 시민들은 재판에 대해서도 “전두환 변명 거리 만들어주는 장으로 밖에 안 보였다”며 “아무런 반박을 않는 검찰에 답답했다”고 입을 모았다.

 재판 현장만 놓고 보면 검찰의 모습은 무기력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재판이야? 전두환 해명의 장이야?”
 
 김정호 변호사는 “이번 재판이 11일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검찰 측에서도 다음을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 즉각적인 반박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전두환 측 주장에 전혀 반박도 않는 검찰의 모습은 아쉬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국민적 관심이 많은 사안임에도 전두환 측만 할 말 다하고 재판이 끝나 마치 전두환의 주장이 모두 옳은 것처럼 비춰질 소지가 있었다”며 “검찰이 어느 정도는 강력하게 나가는 모습으 보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후 재판에선 전두환 측 논리를 깰 수 있는 대응이 용이해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변호사는 “전두환 측이 장시간 공소사실과 관련한 반박을 하면서 사실상 그들이 깔 수 있는 패는 다 깐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반면, 검찰은 확보한 증거들은 아직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두환 측 논리를 깨는 대응을 준비하는데 있어서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결국 검찰이 전두환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들을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느냐가 향후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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