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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특수부대 운영, 5·18 때 ‘광주시민 폭도’ 공작”
5·18기록관 ‘5·18편의대’ 운용 기록·증언 분석
“홍성률 등 ‘베스트 4인’ 주축
시민·시위대 분리공작”
강경남 kkn@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9-03-15 06:00:00
▲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지난해 공개한 5·18 관련 미공개 영상 중.

전두환이 5·18민중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고, 시민과 시민군과의 분열 공작을 펼치기 위해 일명 ‘5·18편의대’라는 특수공작부대를 운영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하 5·18기록관)은 14일 5·18 관련 군 기록, 검찰 수사기록 등을 통해 “전두환과 그의 보안사가 공수부대의 총칼보다 더 악랄하고 간교하게 5·18편의대를 운용했다”고 밝혔다.

5·18기록관에 따르면, 전교사가 1980년 9월 작성한 ‘광주소요사태분석’ 100쪽에 “5월19일: 진종채 2군사령관 작전지도 차 내광(來光, 광주 방문 의미)-(중략)다수 편의대 운용 등 지시”라는 기록이 있다.

‘편의대’는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군인들이 사복 차림으로 위장, 적지에서 몰래 활동하는 임시특별부대를 말한다. 원래는 ‘편의공작대’로 무장하지 않고 주민들과 동일한 행동을 하면서 첩보 및 정보 수집, 선무, 선동 등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다.

▲“10개조 20여명으로 선무 공작”

‘광주소요사태분석’의 141쪽에는 ‘선무활동 중점 및 수단’에 ‘편의대 활용’이 적혀 있고, 142~143쪽에는 1980년 5월22일 이후 10개조 20명으로 선무공작용 편의대를 투입해 선무활동과 첩보 수집 및 대민 계몽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 나와있다.

1982년 3월15일 육군본부가 발행한 ‘계엄사’ 160쪽에도 “정확한 첩보를 수집하기 위해 가발과 사복을 착용한 정보수집요원을 침투시켜”라는 내용이 나온다. 5·18기록관은 이 또한 ‘편의대’를 지칭한 것으로 봤다.

5·18기록관은 “전두환·노태우 등 8명에 대한 검찰 공소사실(1996년 1월)에는 ‘정호용은 5월26일 오전 전두환을 방문하여 재진압작전에 필요한 가발을 지원 받고’라는 내용이 있다”며 “전두환한테 지원 받은 가발은 5월26일 밤 투입된 ‘편의대’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보안사가 발간한 ‘5공화국전사’에도 편의대와 관련한 기록이 있다.

1677쪽에 재진압작전 직전 정보수집 등을 위해 투입했다는 기록과 더불어 1692쪽에는 “계엄군 측 정보요원들(편의대)이 시내에 침투해 파악·보고한 무장폭도들에 관한 각종 정보들이 매우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되었다”고 편의대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밖에도 1980년 5월26일 전교사가 20사단에 내린 ‘전교사 명령’, ‘전교사 작전일지’ 등에도 편의대가 당시 광주에서 공작활동을 벌였음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이 다수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5·18편의대는 시위현장에 잠입, 첩보 및 정보 수집, 주동자 색출 및 체포, 시위대의 위치 및 무장 상황 파악, 광주시민 및 수습대책위원회 동향 파악, 사진병 투입을 통한 ‘폭도’ 또는 ‘폭동화’ 공작을 위한 사진 촬영, 시위대의 모략 및 교란, 선무공작 등을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려고 왔다’ 등 악성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경찰서, 파출소 등 파괴 및 습격을 유인하는 역할까지 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5·18기록관은 당시 광주MBC 화재도 편의대의 공작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광주MBC 방화도 편의대 공작 의심”

5·18기록관 나의갑 관장은 “편의대의 임무는 단 두 마디로 족하다. 광주시민을 ‘폭도’로, 광주를 ‘폭동의 도시’로 만드는 공작이었다”며 “5·18편의대의 규모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수도 많았고, 공작 범위도 광범위했다”고 밝혔다.

5·18기록관은 전두환이 편의대 운영과 관련해 홍성률 1군단 보안부대장 겸 합동수사본부 치안본부 조정관(대령)·최예섭 보안사 기획조정실장(준장)·최경조 보안사 감찰실장 겸 합수본부 수사국장(대령)·박정희 중앙정보부 과장 등 소위 ‘베스트 4인’을 광주에 파견했다고 밝혔다.

이중 홍성률은 ‘광주 현지 막후공작 기획 총책 겸 편의 운용 총책’으로 지목된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보고서에 그가 “광주 시내에서 활동 중인 정보조를 통합지휘했다”는 내용이 있다.

1995년 ‘5·18 관련 사건 검찰수사결과’에는 “홍성률 대령은 광주 출신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보고함과 동시에 시민과 시위대와의 분리공작을 추진했다”고 적혀 있다.

5·18기록관은 “1979년 10·26사건, 12·12군사반란과 5·18 등을 거쳐 전두환이 대통령을 찬탈하기까지 그의 유능한 기획설계자는 ‘보안사 5인방(허화평·허삼수·이학봉·권정달·정도영)’이었다”며 “5·18 막후공작은 ‘보안사 5인방’과 광주파견 ‘베스트 4인’ 사이의 협업 결과물로 봐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나의갑 관장은 “5·18편의대를 정밀 해부하면 장막에 갇힌 광주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며 “이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몫이다”고 강조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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