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주 전 회장 사료 정리 중
근로정신대시민모임 미발표시 발견
일본 침략만행 질타
나고야 지원회 ‘민간 평화 사절단’ 평가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지난해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회장 이금주) 사료를 정리하던 중 발견한 고 문병란 시인의 근로정신대를 다룬 미발표 시의 첫장.<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온 저항시인 고 문병란 시인의 근로정신대를 소재로 한 미발표 시가 공개됐다.

18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에 따르면, 지난해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회장 이금주) 사료 전반을 정리하던 중, 한 자료철에서 문 시인의 근로정신대 일본 소장 한국어판 간행물 ‘내 생에 이 한을’ 서평과 함께 이 시를 발견했다.

시의 제목은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부제는 ‘일제하 근로정신대 손해배상청구소송 소장 한국어판 간행에 부치는 기념시’다.

이와 관련, 1944년 5월경 10대 어린 나이에 군수업체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1999년 3월1일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1년 후인 2000년 3월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후원회(회장 장두석) 명의로 일본 소송 소장을 한국어판으로 번역한 ‘내 생에 이 한을’이 출간됐는데, 시민모임은 “시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2000년 3월 25일 광주에서 가진 출판기념회에 즈음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총 9연 70행으로 구성된 시는 2000년 3월 26일 작성한 것으로, 이번에 발견된 것은 문 시인이 A4 용지 3장 분량에 시인이 직접 쓴 자필 시 사본이다.

시의 1연과 2연은 한·일간 어두운 역사를 살폈다.

조오련 수영 선수가 / 헤엄쳐 건너던 현해탄 / 그 역사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
한국과 일본은 / 수세기 동안 / 원한과 은원의 세월을 울어야 했다.
400년 전 / 도요토미 히데요시 / 풍신수길의 야망을 싣고 왔던 /
그 임진년 침략의 뱃길에서 / 끌려간 도고의 눈물이 흘렀고 / 짓밟힌 환향녀의 통곡이 사무쳤고 / 끌려간 근로정신대 위안부 / 그 통곡이 메아리쳐 / 현해탄의 파도는 드높이 울었다.

3연은 한일 간 그 원한과 은원의 관계에서 사죄와 참회를 비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을 따뜻이 조명했다.

통곡의 바다 / 회한의 바다 / 피와 눈물의 바다 / 오늘 그 바다 위로 /
사랑과 사죄의 참회를 싣고 오는 / 민간 평화 사절단 / 우치카와 변호사 /
다카하시 선생 / 원한을 넘어 / 오늘 마침내 우리와 손을 잡는다.

우치카와 변호사는 1999년 3월 시작돼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끝내 패소하기까지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일본 소송 공동 변호단장을 맡은 인물이다. 32년째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 운동에 헌신해 온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도 시에 언급됐다.

시민모임은 “일제의 침략만행에 대해서는 서릿발 같이 강하게 질타하면서도, 국적을 뛰어넘어 피해자들을 위해 애써 온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에게는 ‘민간 평화 사절단’으로 표현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고 밝혔다.

근로정신대 문제를 다룬 고 문병란 시인의 미발표 시의 마지막 장.<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가해자여, 역사 앞에 무릎 꿇어 / 우리의 눈물 받으라 / 짓밟힌 양심을 펴 /
그 눈물 적셔 / 더렵혀진 살점 / 역사 위에 엎질러진 죄악 / 눈물로 씻으라
/ 참회로 공덕 닦으라.
숭엄한 역사 앞에선 /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고 / 오직 진실만이 남는다. /
위대한 사랑만 남는다.

이렇게 시는 끝을 맺고 있는데 시민모임은 “냉철한 역사의식과 함께, ‘문학은 처음에도 인간, 최후에도 인간이 주제임을 잊지 말자’며 문학세계 전반에 철저히 인간성 회복을 강조해 왔던 문병란 시인의 시 세계를 다시금 엿보게 한다”고 평가했다.

문 시인은 ‘내 생에 이 한을’ 출간 서평에서 “금번 (근로정신대) 재판은 국적이나 이념을 초원하여 양심과 비양심, 불의와 정의, 평화주의자와 전쟁광, 광명과 암흑 대결의 싸움이자 그에 대한 심판”이라며 “특히 일본의 양심세력이 앞장서고 후원하여 결자해지의 용기와 지혜를 기울인다는 의미에서 침략자와 피지배라는 역사적 쓰라린 관계를 배상과 사죄로써 청산하고,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선린관계를 수립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것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이와 같은 이유에서 금번 인권의 도시 광주에서 행해진 민간사절단의 화해를 위한 유대는 값지고 훌륭한 것이다”며 “용서와 화해는 복수보다 위대한 사랑을 낳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가해자의 적극적인 참회와 눈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본에서 제기된 일본 소송 소장을 한국어판으로 번역한 ‘내 생에 이 한을’의 표지. 근로정신대를 다룬 문병란 시인의 시는 ‘내 생에 이 한을’ 광주 출판기념회에 즈음해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한편, 고 문병란 시인은 통일운동가 장두석 선생, 명노근 교수(전남대), 이상식 교수(전남대), 조비오 신부, 강신석 목사, 안진오 교수(전남대) 등과 함께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광주유족회 이금주 회장의 활동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봐 왔다. 또한 매년 새해가 되면 이금주회장님과 연하장을 보내 서로의 안부 인사를 나누는 등 각별한 친분을 유지해 왔다.

문병란 시인은 1975년부터 자유실천문인협회에 가입하면서부터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왔다.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창작과 시 교육을 함께 하다가 2015년 9월 25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시민모임은 새롭게 발견한 문병란 시인의 미발표 시를 지난 14일 10주년 정기총회 자료집에서도 소개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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