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팽목항·목포신항 추모객 이어져
“어른들 잘못 반성” “작은 힘도 연대”

▲ 세월호 참사 5주기인 16일 추모객들이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를 바라 보고 있다. 처참했던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채 녹슬어가고 있는 세월호 선체를 보며 추모객들은 다시 한 번 “잊지 않겠다” 다짐했다.
 “5년이 지나든 100년이 지나든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세월호 참사(2014년 4월16일)로부터 꼭 5년째가 된 16일 진도 팽목항을 찾은 정순식 씨는 “아직도 ‘그날’ 팽목항의 처참했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참사 발생 당시 정 씨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팽목항으로 달려와 세월호 가족, 취재진, 의료기관 등에 빵과 먹을 거리를 사서 지원하는 일을 했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빠져 나오지 못한 가운데, 뒤늦게 진행된 ‘구조’는 결국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엠뷸런스 차량이 시체 수습하면서 왔다갔다 하는…. 난리가 났었죠. 퇴항 명령만 빨리 했어도 거의 희생자 없이 구조가 가능했는데. 이건 인재에요. 100% 인재.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픈 거죠.”

 강진에 사는 그는 진도를 올 때마다 ‘어른들이 잘못해서 일어난 참사’에 반성하는 마음으로 팽목항을 찾는다고 했다.
 
▲“어른들이 잘못해서 일어난 참사”

 청소년들도 언니, 형, 누나, 오빠의 넋을 기리기 위해 팽목항을 찾았다.

 서울에 있는 대안학교인 ‘이야기학교’ 청소년들은 매년 진행하는 자전거 여행 행사를 세월호 5주기 추모 기간에 맞춰 전날부터 진도 초입부터 자전거를 타고 팽목항을 찾았다.

 이날 처음으로 팽목항에 온 이현우(15) 군은 “평소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했는데 잘 지키지 않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안고 왔다”며 “누나, 형들이 잊혀지지 않게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남 무안에 사는 박설희 씨도 남편과 함께 이날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참사 당시 ‘종일 TV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그는 “이전에도 아픈 마음을 가지고 살았지만 올해 아들이 고2가 되면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 생각이 나면서 가슴이 더 뜨거워졌다”며 “추모도 하고 아이들의 명복을 빌고 싶어 팽목항에 왔다”고 말했다.

 박 씨는 “세월호 참사는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우리 사회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였다”며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 재난 대비 같은 것들이 더 좋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간직한 진도 팽목항.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은 16일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연대

 특히, 이날 자유한국당 차명진 전 국회의원이 세월호 가족들에 ‘막말’을 한 것을 두고 “정말 울컥했다. 그러면 안 되지만 그 사람도 똑같은 일을 당해봤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며 “그런 걸 보면서 더더욱 진상규명을 위해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선체가 거치돼 있는 목포신항에도 많은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항만의 철조망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온전한 진상규명을 바라는 ‘노란리본’이 가득 걸려 있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 연대의 약속들이다.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목포신항에 걸려 있는 노란 리본들.

 이날 목포신항에서 진행된 한 성당의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목포신항을 찾은 김덕희 씨는 “같은 엄마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을 겪은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은 심정에서 목포신항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날 자신의 아들과 함께 왔는데 “이전에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난 것처럼 몰아가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며 “우리 아들도 이전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으로 함께 왔다”고 했다.

 아들 임종훈 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유튜브’ 등의 가짜뉴스를 ‘진실’로 믿었던 적이 있다”며 “주위에서 세월호 참사를 두고 ‘지겹지 않냐’고 하다보니 저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있었는데, 나중에야 그게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크게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세월호를 놓을 때 아니다”

 전북 익산에 사는 한성원 씨는 이날 세월호 선체 앞에서 묵념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연대하고 참여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한 씨는 “원래 (세월호 선체를 거치한)2년 전에 목포신항에 오고 싶었지만 그때는 차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며 “세월호 참사로 인한 슬픔과 아픔이 너무 컸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그 아픔은 변함이 없지만 조금은 세월호 선체를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나해서 목포신항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한성원 씨의 세월호 팔찌. 그는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3년 전부터 팔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세월호 참사가 사회적인 아픔에 눈 돌리지 않고 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된 ‘큰 전환점’이라고 했다.

 “제가 원래 시계도 불편해서 못 차는데, 세월호 팔찌를 3년 전부터 계속 하고 있어요. 팔찌가 뒤집어지고 까지고 하면 불편하잖아요. 그렇게 불편할 때마다 세월호를 생각하게 되니까 팔찌를 아직도 하고 있어요.”

 최근 세월호 CCTV가 조작·은폐됐다는 의혹 등 여전히 온전한 진상규명은 멀기만 한 상황. 한 씨는 “CCTV 조작이 진실이라면 국가에서 의도적으로 조작한 게 되니까 이건 ‘나라가 사람들을 죽인 것’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며 “불편하더라도 아직은 세월호를 놓을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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