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타파” 10년 외침, ‘교육 판도’ 흔들다
대학 합격 현수막 철거
학력 조장 이력서 퇴출 등 성과

▲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사무실에서 만난 활동가 황법량(왼쪽) 씨와 박고형준 씨.
  시민운동을 일컬어 우리 사회를 추동하는 ‘힘’이라고 합니다. 시민적 권리를 찾고,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이 최선봉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민운동은 재정난·인력난 등 여러 한계 속에서 어려운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시민운동의 불씨가 꺼진다면, 지역사회의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광주드림은 지역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을 정기적으로 소개하고 지면에 활동상을 알리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의 지지와 후원으로 이어져 시민운동의 불씨가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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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학벌을 향한 무한질주 속에서 ‘학벌없는 사회’를 외쳐온 10년. 외롭게 쏘아올린 작은 공들이 어느덧 큰 ‘공’이 되어 교육 판도를 뒤흔들었다. 일명 ‘SKY대 합격’ 현수막이 철거되고, 학력차별 이력서가 사라지는 변화의 물결이다.

 그 변곡점마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이하 학벌없는사회)’이 선두에 섰다. 학벌에 가려진 자유·평등·인권의 가치가 유폐되지 않도록 절박하고도 치밀하게 투쟁해 왔다. 그렇게 10년을 싸웠지만, 학벌은 여전히 공고하기만 하다. 앞으로도 긴 싸움이 계속될 것이란 뜻이리라.

 학벌없는사회는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학력차별에 관심을 가진 청년 2~3명이 모여 2008년 준비모임을 갖고 2009년 9월19일 창립했다. 광주에 뿌리를 두고 작은 동호회 수준으로 출범했지만, 교육문제를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어 제도 개선을 이끌어 온 강단 있는 단체로 통한다.

 원래 학벌없는사회는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이었다가 최근 ‘광주’를 뺐다. 올해 1월18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내린 결정이다. 광주에 거점을 두고 있으면서도 활동영역이 전국에 미친다는 게 첫째 이유다. 서울 거점의 ‘학벌없는사회’가 2016년 해산해 지역 명을 붙일 이유도 없어졌다.
 
▲교육은 전국 활동…명칭서 ‘광주’ 빼
 
 광주 서구 화정동에 터를 잡은 학벌없는사회를 찾았다. 단체에 복귀한지 한 달이 안 된 박고형준씨와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단체 활동에 뛰어 든 황법량 씨가 작고 아늑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학벌없는사회는 장동, 대인동, 산수동 등 광주의 여러 곳을 옮겨 다녔고 지난해 화정동으로 이사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교육청과 가장 가까운 곳까지 오게 됐네요.(웃음)”

 형준씨가 멋쩍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듣는 사람도 괜스레 머쓱한 건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제도권 교육의 상징, 교육청과 그곳에 일침을 가해 온 학벌없는사회의 질긴 인연(?)이 여전히 진행형인 까닭이다. ‘걸어서 5분 거리’만큼 좁혀지지 않는 사이도 있다.

 형준씨는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투쟁이라면 늘 빠지지 않는다. 학벌없는사회의 지난 10년은 그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학벌 타파의 역사는 단체가 구성되기 전부터 시작됐다.

 형준씨는 고등학생이던 2000년 ‘중·고등학생연합’ 광주지부 핵심 멤버로 참여해 교육문제로 토론하고 활동했다. 학생들의 두발자유화를 요구하며 집회에 참여하고, 자치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을 참여시켜달라고 캠페인을 벌였다. 고3 겨울 수능 날엔 수험장 대신 교육청 앞에서 ‘대학 평준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대학’만 쫓으며 인생의 주인 되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 제도권 교육”을 스스로 거부하고 문제제기 한 경험들이 축적된 시기다.

 2009년 학벌없는사회가 창립하면서 본격적인 시민운동으로 뛰어들게 됐다. 형준씨는 상근자로 활동하며 이슈를 만드는 데 그치는 시민운동이 아니라 관련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하고, 안 되면 국가인권위·헌법기관에 문제제기 하는 방법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일궈왔다.

대학도서관 개방을 촉구하는 1인시위 모습.<‘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제공>
 
▲학벌 특권·불평등 문제 소송까지 간다
 
 대표적인 사례가 ‘특정학교 합격 게시물 반대 운동’이다. 이른바 ‘SKY 대학 합격 현수막’이 “학벌주의를 부추기고 학생의 인권과 개인정보를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단체가 생기기 전인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약 200곳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했고, 이는 특정학교 합격 게시물이 철거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2년 3월 국가인권위에 낸 집단진정의 결과로 그해 10월 ‘차별시정위원회 결정문’을 받아냈다. “전국 시도교육감에 특정학교 합격 홍보 게시 행위를 자제하도록 각급학교 지도감독을 지시한다”는 내용이었다. 목표했던 ‘권고’를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교육계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만약 기관에서 정보를 비공개 하면, 역으로 왜 정보를 감추는지 행정소송을 제기합니다. 이기면 하나의 판례를 만드는 거고, 아니더라도 문제를 공론화해서 얻는 시민적 이익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학벌문제와 관련된 ‘불평등’ 문제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2014년 대학도서관을 지역주민이 이용할 수 없는 것이 위헌이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각하됐다. 하지만 대학도서관 개방에 대해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환기하고 일부 도서관이 자발적으로 개방에 나서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밖에도 학벌없는사회가 이슈화한 문제는 문구업체 성차별·입시조장 상품 판매 중단 캠페인, 남도학숙 입사자 성적 차별, 예비군 훈련에서의 학력 차별, 차별 없는 인권친화적 이력서 운동, 외부강사료 차별지급 시정, 고등학교 기숙사 성적순 차별 선발 인권위 진정 등 셀 수 없다.

‘차별·입시조장 상품 및 광고’관련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제공>

 그러나 학벌없는사회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길어 올린 힘겨운 성과들이다. 보조금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니 재정난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지 오래고, 때문에 더 이상 활동가를 늘리거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회비를 내주는 250여 명 회원들 응원이 모두 단체 운영비, 사무실 임대료, 활동가 인건비에 투입돼도 역부족이다. 9개월 정도 단체를 떠나 생활협동조합에서 근무했던 형준 씨가 최근 복귀하면서 인건비 해소는 더욱 시급해졌다.
 
▲“보조금 안받아” 선언…후원회원 확충 과제
 
 “단체 살림위원회 제안으로 SNS상에서 회원 모집 캠페인을 시작했더라고요. 회원을 늘려서 재정 문제를 넘어 우리의 운동을 힘 있게 알려나가고 또 운동영역을 확장해보자는 시도에요. 저로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강제 야간 자율학습 금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제공>

 최근 SNS상에서 학벌없는사회 박고형준 활동가를 응원하는 글과 함께 회원 모집 홍보가 릴레이로 이뤄졌고, 덕분에 실제로 회원 수도 꽤 늘었다. 학벌없는사회가 광주를 변화시킨 동력임을 시민사회도 인정하고, 당면한 짐을 함께 나눠지려는 연대의 손길이었다.

 10주년을 기점으로 학벌없는사회는 또 다른 변화의 국면을 맞이했다. 좀 더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는 시민운동을 위한 재정비 단계다. 시민대상 교육을 강화하고, SNS 등 시민소통도 늘릴 계획이다. 물론 학벌 타파 운동을 더욱 가열 차게 하기 위함이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단체 활동을 시작한 ‘반상근 활동가’ 황법량씨도 든든한 동료로 함께 하고 있다. 대학을 휴학한 법량씨는 학내에서 경험한 문제들을 토대로 대학 평준화, 조선대 공영화, 대학생 자치기구 정상화 등 고등교육 부분을 파고들 예정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학벌 문제는 훨씬 복잡하고 어렵게 현실을 옥죄고 있는 것 같아요. 대학입시만 해도 예전엔 내신이냐 수능이냐 따졌는데 지금은 다양화된 입학제도 자체를 학생들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니까요. 사회적으론 불행한 전망이지만, 앞으로 단체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네요.”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이 존재하는 이유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고교 기숙사 성적순 선발 금지를 촉구하는 1인 시위.<‘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제공>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을 후원해 주세요

 △정기후원(회원)
 링크(http://bitly.kr/ewiOaR)에 접속하시어 양식에 맞게 작성하고 확인 전화(070-8234-1319)주세요.
 후원금 받는 단체명 :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부정기후원
 아래 통장계좌로 납부해주세요.
 광주은행 019-107-337776 농협 301-0124-8869-41 (예금주 :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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