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NGO센터 최선아 사업팀장
“지역사회 변화시키는 동력
시민운동 불씨 꺼져선 안돼”

▲ 광주NGO센터 최선아 사업팀장.
 시민운동이 ‘위기’라고 말한다. 시민사회단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과 지역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화운동과 궤를 같이한 광주 시민운동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시민들에게서 멀어진 시민운동, 활동가들이 떠나는 시민단체”라는 우려가 직면해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희망을 저버리기에 이른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시민사회단체가 여러 분야의 사회문제 최선봉에 서서,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사회 저변에서 시민적 힘을 키워내고 있어서다.

 시민사회단체들과 밀접한 위치에 있는 광주NGO센터 최선아 사업팀장은 시민운동의 현주소를 애정 어린 비판으로 갈무리해줬다. 애정의 근원엔 시민단체가 태동부터 지켜온 가치와 방향이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을 도화선으로 직접 선거권을 쟁취하고, 국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커졌어요. 참여자치21이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굵직한 단체들이 만들어졌죠. 대정부 투쟁부터 지자체를 상대로 한 시위·집회 등 투쟁적 성향의 시민운동이 동력을 받았습니다.”
 
▲“민주화 일조했지만, 시민과는 멀어져”

 지난 30여 간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이 같은 흐름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기 전까지 노동·학생·시민사회운동을 축으로 하위분야가 세분화됐고, 서로 연대하며 연합구도를 형성해 힘을 키운 것이다. 하지만 시민운동은 그 이상 확장되지 못했다. 당장 “시민들에게서 멀어졌다”는 뼈아픈 진단이 나오는 까닭이다.

 “2년 전 촛불혁명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어느 깃발에 속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해요. 단체 깃발들이 일색인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은 시민운동과의 괴리를 그렇게 표현했던 거예요. 시민단체가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거죠.”

 하지만 지자체 예산으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마을단위 운동은 활기를 띠었다. NGO센터처럼 시민활동을 행정과 시민사회 중간에서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도 많아졌다. 도시재생센터, 자원봉사센터, 청년센터 등이다. 그런데 이 같은 변화가 고군분투 중인 시민단체들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마을운동과 중간지원조직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잦아졌어요. 정체된 조직보다는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안정적인 자리로 옮겨간 것이죠. 마을활동과 중간지원 조직은 보조금을 받는 위탁사업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어서 다른 확장성을 갖긴 어려운 것 같아요. 시민운동이 다양화되고 전문화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시민사회단체의 본래 목적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판 자체는 축소되고 있다고 봐요.”
 
▲위탁사업·보조금의 딜레마

 하지만 최근 시민단체들 역시 보조금 사업을 필수불가결한 선택지로 여긴다.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만으로는 재정난을 타개할 방법이 없어서다.

 광주지역에선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정도가 ‘보조금을 받지 않는다’는 조항을 정관에 못 박았다. 단체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보조금과 선을 그었지만, 학벌없는사회 역시 재정문제를 안고 있다.

 재정난이 거듭될수록 현장을 떠나는 활동가들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수의 상근자들이 많은 짐을 짊어진 구조에선 중견 활동가들과 젊은 활동가들 사이 소통부재와 인식차이도 큰 난관이다.

 “단체를 초창기부터 이끌어온 중진급 임원들과 열정 가득히 첫 발을 디딘 초록활동가(신입활동가)들 사이에 괴리가 생각보다 커요. 모든 것을 희생해 단체를 지켜 온 선배들은 기존 관행을 유지한 채 젊은 활동가들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있죠. ‘직장인’이기보다 ‘활동가’의 역할을 요구하면서 후배들 권리에 무감각할수록 문제는 심각해요.”

 젊은 활동가들은 가치를 위해서라면 업무 외적인 부분도 감수하라는 요구에 버거움을 느낀다는 것. 가치를 실현하고 얻는 보람 때문에 시민운동에 열의를 가졌지만, 제대로 된 임금과 처우 없이는 일을 지속해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세대 간 관계에 대한 온도 차로 소통의 부재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식구’같은 시민운동 진영에서 막역하게 지내는 게 관행이라도 청년 세대에겐 인정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민주적인 소통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반말, 호칭, 하대 등은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가치라 해도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선 조직이 굴러갈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해요. 우선 재원 마련을 위해 회원확보에 절박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제안과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하고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한을 풀기 위한 활동을 10년째 이어오고 있다.<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회원확보·조직문화 개선” 시급

 서울의 한 여성단체의 경우 대표는 한 명이지만, 상근자들이 모두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여성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민우회는 사무처장직을 돌아가면서 맡는다. YMCA에선 서로의 애칭을 부르며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시민운동이 위기라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시민운동은 언제나 위기였고 또 힘들게, 힘들게 이어져 왔어요. 위기라는 단어에 갇히기보다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적기가 지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렵기 때문에, 그래서 인기가 없겠지만…. 시민운동은 시민이 주인이어야 할 민주주의 최선봉에서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기 때문이죠.”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본의 제1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한을 풀기 위한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국가도 정치도 외면한 근로정신대 문제를 공론화 하고 문제 해결로 이끈 힘이 시민단체의 작은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광주엔 시민단체로 700여 개의 이름이 올라와 있지만 단체의 목적과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곳은 100개가 채 안돼요. 존재만으로 소중합니다. NGO센터가 활동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대부분 일과 사람에 지쳐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올해 센터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이제, 변화된 힘으로 다시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시게요.”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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