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장·허장환 전 정보요원 광주 증언회
“발설 금지 각서 썼지만 진실이 더 중요”

▲ 14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 관련 증언에 나선 김용장 전 미 501정보단 요원(왼쪽)과 허장환 전 505보안대 요원.
 “광주항쟁은 전두환 신군부가 사전에 만들어놓은 정권찬탈 시나리오에 따라 일어났다.”

 5·18민중항쟁 당시 미 정보요원과 보안부대원이 39년 만에 광주에서 밝힌 ‘5·18 진실’의 핵심 줄기다.

 이들은 “5·18역사는 지금부터 다시 쓰여져야 한다”며 5·18 당시 미국에 보고된 5·18 관련 보고서의 원문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80년 5월 광주에서 미육군 501정보단 요원으로 활동한 김용장 씨와 505보안대 수사관으로 활동했던 허장환 씨가 14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증언회를 가졌다.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두환이 1980년 5월21일 광주비행장을 찾아 사살 명령을 전달했다는 증언을 한 두 사람은 이날 증언회에서는 이제야 진실을 털어놓게 된 것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각오를 밝혔다.

 김 씨는 “정말 죄송하다. 정말 미안하다”라는 말로 운을 뗀 뒤 “광주라는 말만 나오면 하염 없이 눈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전두환 헬기로 광주에” 등 보고

 그는 5·18 당시 40건의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 보고서들은 전두환이 광주에 헬기를 타고 내려온 것, 도청 앞 헬기사격, 편의대 활동, 시신 재발굴·화장처리, 교소도 습격사건 조작, 공수부대에 의한 성추행 사건 등에 대한 것들이었다”고 밝혔다.

 김 씨는 “39년 간 광주항쟁에 대해 아내한테도 한 마디 안 했을 정도로 누구한테도 ‘비밀’을 발선한 적 없다”며 “일단 제 입밖으로 나가면 제 자신은 물론 제 가족, 주변 친구 아무 것도 보호할 수 없어 39년간 재봉틀로 입을 박아놓은 것처럼 그렇게 하고 살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런데 이제 때가 왔다. 그래서 감히 증언을 하게 됐다”며 “그 보직(미방첩 정보요원)에 있을 때 어떠한 비밀도 누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었지만 그 각서보다 광주에 대한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믿어 감히 그 약속을 어기고 증언하게 됐다”고 밝혔다.

 허장환 씨는 “개인적으로 망월묘지를 방문해 영령들에 담배 한 대씩 전달하고 있다”면서 “광주 문제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매듭짓자고 굳게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5·18 당시 수사관으로 있으면서 고초를 겪던 홍남순 변호사를 만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고 회상하면서 “전두환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싶지 않아 은둔 생활을 했지만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극심한 고초를 당했다”고 밝혔다.

 허 씨는 김용장 씨와 5·18 진실에 대해 함께 증언에 나서게 된 것에 대해 “저도 퇴직할 때 현직 당시 모든 내용을 함구하겠다 각서를 다 쓰고 나왔지만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한 번 해보겠다는 다짐을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14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김용장 전 미 501정보단 요원과 허정환 전 505보안대 요원 증언회.
 
▲ 광주는 왜 타깃이 됐나? 답 내놓기도
 
 전날 기자회견은 물론 이날 증언회에서도 전두환이 5·18 당시 광주를 방문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힌 두 사람은 5·18 당시 편의대를 통한 공작 활동, 희생자 시신을 가매장한 뒤 재발굴해 국군통합병원 보일러실에서 소각한 사실 등을 증언했다.

 하지만 허 씨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5·18이 왜 일어났고, 전두환 신군부가 어떻게 정권찬탈 시나리오를 작성해 그 수순으로 갔는가”라며 “(전두환 신군부가)필연적으로 광주를 타깃으로 해 5·18을 엮어 자기 용상으로 가는 디딤돌로 한 원인, 그 시나리오가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김 씨도 “광주항쟁이 신군부에서 사전에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에 의해서 일어났다는 것에 100% 동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가 왜 신군부의 타깃이 됐나에 대해선 당시 대구나 부산은 지역이 크고 신군부에서 콘트롤이 어려웠고, ‘자기네’들 고향이기도 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 고향인 목포는 규모가 적고 너무 남쪽에 위치해 작전상 어려웠다고 본 것으로 생각되고, 전주는 ‘김대중’과 관련이 직접적으로 없고, 대전은 ‘사이즈’는 좋은데 서울과 가까워 혹시라도 서울에 전파됐을 때 북한에서 남침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도 컸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마침 광주는 역사적으로 항상 항거하는 도시고, 그 규모도 좋아 ‘잘만하면 쉽게 폭동으로 몰 수 있는’ 그런 조건들이 많았다. 그 예가 ‘KT공작(고 김대중 대통령 연고선 추적과 연고자 동향 감시)’이다”고 밝혔다.

14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 관련 증언에 나선 김용장 전 미 501정보단 요원(왼쪽)과 허장환 전 505보안대 요원.

 김 씨는 “(전두환 신군부는)김대중 씨와 광주항쟁을 엮기 위해 사전에 이미 조작을 해놨고, 광주내란사건, 반란사건으로 엮었다”며 “바로 자기네들이 만든 시나리오에 의해 모든 것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미 정부서 당시 보고서 받아야”

 이어 “편의대가 광주시민들 선동하는데도 성공을 했는데 광주시민들의 수준이 달랐다. 무기를 스스로 반납하고 스스로 무기를 수거하고, 그 열흘 간 단 한 건의 금은방, 은행 털린 사건이 없었다”며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신군부에 좋은 빌미가 됐겠지만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게 광주시민 정신이다”며 “그래서 광주정신을 높이 사야 하는데도 39년간 광주항쟁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답보상태에 있어 정말 너무 안타깝다”고 밝혔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이 지연되는 등 특별법이 만들어지고도 진상규명을 위한 작업은 전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김 씨는 자신이 5·18 당시 작성했던 보고서를 진상규명의 ‘핵심 열쇠’로 꼽았다.

 김 씨는 “미 정부에 제가 써 보낸 보고서들이 원형 그대로 있을 것이다”며 “이를 원형 그대로 한국 정부로 보내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는 점을 문재인 대통령에 부탁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광주항쟁의 역사는 지금부터 다시 써야 한다. 잘못을 바로 잡는 그 일을 저희들이 해야 한다”며 “5·18에 대한 진상규명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허장환 씨도 “보안사가 자신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해 511대책반, 511위원회 등을 만들고 중요 문건을 삭제하고 5·18을 희석했고, 당시 정치적인 상황도 5·18, 광주문제를 실타래 같이 얽히게 만들었다고 본다”면서 “5·18이 영구적으로 민족 이념, 민족 지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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