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권리’, 홍보가 웬 말?
무급노동 장려?”

 ‘경비원 휴게시간은 곧 무급’이라고 알리는 광주시 제작 포스터가 “온전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 경비원들의 ‘무급노동’을 당연시 하게 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광주시는 “경비원의 무급 휴게시간을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경비원이 근무지를 벗어나 편안한 휴식을 취할 여건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가 ‘휴식=무급’이라는 현실만 강조하는 건 “열악한 노동조건을 방임하는 무책임한 처사”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광주 시민 A씨는 최근 아파트 경비원 초소 문 앞에 붙은 포스터 한 장을 보고 분노가 치밀었다.

 A씨가 목격한 건 광주시 이름으로 부착된 ‘경비원 휴게시간’ 안내 포스터였다. 해당 포스터에는 ‘우리 아파트 경비원 휴게시간 안내’라는 문구와 함께 점심·저녁·야간 등 세 구간에 걸쳐 휴게시간이 안내돼 있었다.

 이상한 점은 포스터 중반에 ‘휴게시간=무급’이라고 표기한 문구와 그림에서 발견됐다. 휴게시간이라는 단어에는 시계가 그려져 있고, 무급이라는 말은 원화 기호()에 대각선 줄이 그어져 금지 표시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를 문제로 여긴 그는 자신의 SNS에 “경비원 휴게시간 무급이 저리 대문짝만하게 알릴 일이냐”며 “위법일 가능성이 농후한 이걸 또 무려 배포씩이나 하는 광주광역시는 무엇?”이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어 “자칭 타칭 인권도시 광주가 참말로 남사시럽다”며 시 행정의 낮은 인권감수성에 쐐기를 박았다.
 
▲시 “주민들 휴게시간 ‘방해 말라’는 의도”

 광주시 ‘휴게시간=무급’ 포스터에 위법성 의혹이 일게 된 건 경비원들이 휴게시간 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열악한 현실은 외면한 채 ‘무급노동’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을 자랑하듯 홍보한 것으로 보여질 수 있어서다.

 그가 글과 함께 올린 해당 포스터 사진에서는 ‘휴게시간=무급’이라는 문구가 가장 크게 명시돼 핵심 내용으로 이해되고 있다.

 ‘경비원의 쉴 권리 보장’이라는 포스터가 제작·배포된 취지와 기능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포스터 하단 작은 글씨로 ‘경비원의 휴게시간을 방해하지 맙시다. 경비원의 휴게시간은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시간입니다. 용무가 있으신 분은 휴게시간 외의 시간에 다시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는 문구가 설명의 전부다.

 실제로 신명근 노무사는 “해당 포스터는 관에서 경비원의 ‘무급 휴게시간’을 허용 혹은 강제하는 효력을 갖게 될 소지가 크다”며 “이는 아파트와 외주업체(경비원) 간에 맺는 표준근로계약 상의 조건을 광주시가 정해주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고, 이는 실제로 휴게시간이 보장되고 있는 않은 노동자들에게 ‘무급’이니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악화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신 노무사는 “경비원들은 대부분의 경우 휴게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아 경비초소에서 쉬기 때문에 휴게시간과 대기시간의 경계가 모호한데다 청소, 주차관리, 택배관리 등 부과 업무까지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을 간과한 조치”라며 “경비원들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해 근무지와 독립된 별도의 휴게시설 설치 등에 앞장서야 할 광주시가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방치하고 주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책임을 다 하지 않은 얕은 수”라고도 비판했다.

 지난 2017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아파트 현장에서 경비원 휴게시간에 대한 이정표가 세워졌다.
 
▲“쉴 여건 안 돼, 별도 휴게시설 부터”

 사용자는 경비업의 특성 등을 이유로 주간 및 심야 휴게시간을 방해할 수 없다. 오히려 근로계약서상의 휴게시간을 입주민에게 정확히 알리고, 적절한 휴게장소를 제공하는 등 경비원의 휴게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그러한 조건이 갖춰진 때에야 경비원은 휴게시간을 휴게시간답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광주시 건축과 관계자는 “지난해 아파트 경비원들에 대한 갑질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 시 입장에서 ‘주민 갈등 해결’ ‘경비원 고용 안정’ 등의 관점에서 필요성을 검토해 추진한 사업”이라며 “경비원들의 휴게시간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아파트 관리소, 주민 등에 이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포스터 제작·배포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 산하 국민디자인단이 주관한 ‘자치단체 아이디어 공모 사업’에서 광주시의 ‘공동주택 경비원 고용안전 추진’ 사업이 선정돼 3000만 원의 교부금을 받았고, 올해까지 관련 영상 제작과 포스터 제작 등의 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해당 포스터는 총 2000부가 제작됐고 시 주관 주택관리사협회 교육이 있을 때 2차례에 걸쳐 관리소장 등 아파트관리소 관계자들에게 배포됐다.

 시 관계자는 “사업을 추진할 당시 경비원 고용안정과 관련해 노동계, 입주자 측 등 다양한 입장의 의견을 청취해 사업에 반영하려고 했다”며 “포스터 내용과 관련해서 따로 자문을 구하지는 않았지만, ‘휴게시간 보장’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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