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녹색당 “혐오는 자유일 수 없다” 시위
시립미술관 공식 입장 “표현의 자유 존중”
작가 “혐오의도 없다. 다른 해석은 존중”

▲ 광주 녹색당 페미니즘 의제모임은 16일 오전 11시30분 광주시립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A작가의 ‘애인의 무게’ 작품 앞에서 작품 철거를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광주시립미술관 야외 공공미술 작품 중 하나가 여성혐오적 표현인 ‘된장녀’를 연상시킨다고 주장하며 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그러나 광주시립미술관은 예술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철거 요구를 거부하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혐오는 결코 자유일 수 없다. 여성들에게도 저항의 자유가 있다”며 작품 철거를 촉구한 녹색당 측과 “표현의 자유가 그 무엇보다 우선한다”면서 작품 보존을 결정한 미술관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해당 작품의 작가 김숙빈 씨는 “여성혐오 의도는 없었으나 녹색당의 작품에 대한 해석을 일정부분 존중하고, 불편한 점에 대해선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작가의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광주 녹색당 페미니즘 의제모임은 16일 오전 11시30분 광주시립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A작가의 ‘애인의 무게’ 작품 앞에서 작품 철거를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광주 녹색당 페미니즘 의제모임은 16일 오전 11시30분 광주시립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A작가의 ‘애인의 무게’ 작품 앞에서 작품 철거를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이 작품은 광주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 입구 야외 잔디밭 공원 위에 설치된 것으로 남성과 여성, 명품가방이 등장하는 벤치 형태의 작품이다.

남성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지만 굵은 땀을 흘리며 힘겨운 표정을 짓고 있다. 화려한 차림에 여우 모피를 두른 여성은 여러 개의 명품 가방을 잔뜩 들고 웃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 작품과 관련해 비싼 가방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여성과 그로 인해 힘겨워하는 남성을 비유한 것으로 여성을 의존적, 과소비를 일삼는 대상으로 표현해 대표적인 여성 혐오 단어인 ‘된장녀’를 연상케 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녹색당은 지난 4월 말 광주시립미술관 측에 작품 철거를 요구했으나 미술관 측은 예산과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철거를 거부해 왔다.

작품 ‘애인의 무게’의 일부. 명품백을 들고 있는 여성의 손 부분.

하지만 민원이 제기된 이후 미술관 정문 주 출입구에 있었던 이 작품을 지금의 자리인 어린이갤러리 쪽 야외로 옮겼다. 약 5개월 전이다.

녹색당 당원들은 이날 ‘아이에게 부끄러워 성평등한 예술 원해’, ‘예술가에게 표현의 자유, 여성에게 저항의 자유’, ‘된장녀가 웬말이냐 미술관은 사과하라’ 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작품 철거를 촉구했다.

녹색당 관계자는 “작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라기 보다 시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시립미술관이 작품 선정에 부주의한 것이 문제”라며 “철거를 요구했음에도 예산과 표현의 자유 등 변명으로 철거를 미루는 미술관 측 행태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고 시위의 목적을 설명했다.

이어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풍자나 해학은 더 강한 권력을 향할 때 유효한 방식이고 여성을 희화화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며 “성 인지 감수성이 없는 이 작품은 여성을 희화화하는 동시에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광주시립미술관 측도 이날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작품을 “물질만능주의적 세태를 풍자한 작품”이라며, “외부의 압력에 의한 예술작품의 철거는 민주사회와 공립미술관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철거 요구에 선을 그었다.

작품 ‘애인의 무게’ 옆에 설치된 작품 설명.

미술관은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며 표현의 자유는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민주국가에서 공통된 기본적 인권”이라며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해 나온 예술작품은 인류의 문명과 정신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작업의도가 왜곡되는 해석은 지양돼야 한다”고 작품에 대한 논란을 일축했다.

미술관에 따르면, 해당 작품은 2016년도에 설치된 것으로 작가는 만화와 같은 장면을 이용하여 현대사회의 일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물질만능주의적 세태를 풍자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겼다.

미술관은 “외부의 압력에 의한 예술작품의 철거는 민주사회와 공립미술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저희 미술관은 이번 녹색당의 입장이 작가의 명예를 훼손하고 작가의 생존권과 예술세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심히 우려하고 있다”고도 했다.

시립미술관은 2020년부터 중외공원 일대의 아시아예술정원조성사업이 본격화됨에 따라 향후 옥상조각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면, 해당 작품을 다른 장소로 재조성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해당 작품을 제작한 작가 김숙빈 씨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3년 전 설치된 이 작품이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것으로 안다”면서 “하지만 녹색당의 해석과 지적은 일정부분 가능한 것이며 그래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작품의 의도를 설명하면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부유한 계층의 남성을 표현한 것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시대를 풍자하기 위한 의도였다”면서 “논란이 제기된 작품의 ‘된장녀’ 연상 부분과는 절대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김 작가는 철거 요구에 대한 생각을 묻자 “저작권은 저에게 있지만 작품의 소유권은 미술관이 갖고 있다”면서 “정말로 많은 시민들이 녹색당과 같은 입장인지 궁금하고, 설문조사 등을 통해 그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작가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답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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