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김철홍 광주인권사무소장 국민훈장 전달
기쁨 나누고 싶다는 듯 사진 속 남편 바라봐

▲ 일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 앞장서 온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이 11일 국민훈장을 전달 받은 뒤 1940년 남편과의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국민훈장 이금주 회장, 정의회복 큰 주춧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신문 기사의 제목을 크게 읽어가던 이금주(李錦珠.1920)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은 제목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손으로 가리키며 미소를 보였다.

“이금주가 아주 큰 사람 됐어.”

순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인 이금주 회장은 11일 반가운 손님들을 맞았다.

지난 10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71주년 기념식에서 이금주 회장이 올해 대한민국 인권상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한 가운데, 김철홍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장이 이날 직접 요양병원을 찾아 이금주 회장에 국민훈장을 전달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도 이 회장을 축하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김철홍 광주인권사무소장에 앞서 시민모임이 먼저 병원에 도착하자, 이 회장은 미소로 맞이했다.

올해 100세의 나이, 지병까지 겹쳐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날 이금주 회장은 건강한 모습이었다.

해당 요양병원 측은 “그동안 봐온 것 중 오늘이 가장 컨디션이 좋으신 것 같다”고 했다.

이금주 회장은 시민모임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면서 “이금주 업혀 댕겼다. 남편이 업고 다녔다”며 이전 추억들에 대한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주위 사람들에게 이쁨 받고, 사랑 받았던 이야기. 특히 남편이 자신을 업고 다닐 정도로 사랑 받았다는 걸 반복해서 이야기 했다.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이 11일 자신을 찾아온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민모임 안영숙 대표는 “병원에 올 때마다 회장님은 남편한테 업혀 다녔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남편과의 다정한 기억들을 평생 잊지 못하고 아직도 떠올리고 계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다 한 번씩 본보 기자에겐 “총각이 이렇게 컸다. 나 본 생각이 나요?”라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곧 김철홍 광주인권사무소장이 도착, 이금주 회장에 국민훈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훈장증을 전달했다.

이금주 회장은 훈장증을 펼쳐 ‘귀하는 인권옹호활동을 통하여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다음 훈장을 수여합니다. 국민훈장 모란장. 2019년 12월10일. 대통령 문재인, 국무총리 이낙연’을 또박또박 읽어 갔다.

김철홍 광주인권사무소장은 이날 이금주 회장에 훈장을 전달하면서 “일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헌신해 오셨다”고 존경의 뜻을 표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웃으면서 “아니다”고 했다.

이후 국민훈장을 목에 걸고, 포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보내온 손목시계를 차보기도 했다.

시민모임은 물론 병원 측 관계자들도 박수로 이금주 회장을 축하했다.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연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도 시민모임을 통해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금주 회장은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11일 김철홍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장(왼쪽)이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에 국민훈장을 전달한 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박수로 이금주 회장을 축하해주고 있다.

국민훈장을 목에 건 이금주 회장은 태평양전쟁광주유족회 현판 앞에서 찍은 사진, 남편과의 결혼식 사진을 번갈아가며 잠시 바라봤다. 말 없이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금주 회장의 표정에선 남다른 감회가 읽혔다.

특히, 결혼 2년 만에 일제에 빼앗긴 남편을 빼앗긴 한과 아픔, 남편이 남기고 간 추억들은 이금주 회장이 일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투쟁에 앞장설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31년이란 세월을 포기 않고 걸어온 자신의 삶이 ‘큰 축하’를 받은 날, 이금주 회장은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듯 사진 속 남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편의 유해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릅니다. 가슴에 맺힌 한이 없었다면 저도 이 일도 못했을 거예요. 남은 여생이나마 일본의 양심이 움직이도록 남김없이 쓰겠습니다.” 이 회장이 시민모임을 통해 남긴 다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국민훈장을 받기 앞서 시민모임은 국민훈장 수여 소식을 다룬 방송·신문 보도를 이금주 회장에 보여줬다.

뉴스 화면에서 우키시마마루호 폭침 사건, 천인소송 등 재판 활동과 함께 법정투쟁을 했던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시민모임 이국언 대표 등이 나오면 이금주 회장은 반갑다는 듯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전날 서울 시상식 장면에서 손녀딸 김보나 씨가 나오자 기뻐하는 표정도 지었다.

국민훈장 수여 소식을 보도한 본보 기사 제목을 읽고 있는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

관련 신문 기사도 꼼꼼히 살펴보면서 제목을 크게 읽었다. 그러다 자신의 이름이 있는 걸 가리키면서 “내 이름이 여기 있다야”라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특히, ‘국민훈장 이금주 회장 정의회복 주춧돌’이라는 기사 제목에선 ‘정의회복 큰 주춧돌’을 수차례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다 “이금주가 아주 큰 사람 됐다”고 미소를 보였다.

한편, 이금주 회장은 남편 김도민 씨가 결혼 2년만인 1942년 11월 일본군 군속으로 끌려갔다 사망했다.

일제의 만행으로 남편을 잃은 이 회장은 1988년부터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결성해, 회장을 맡아 오면서 30년 넘게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한 길을 걸어 왔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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