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셔록 미국 기밀문서 연구 결과
“신군부 미국에 왜곡된 정보 흘려”
“미국 국가안보·경제 이익 위해
‘전두환 책임’ 알면서도 방조했을 것”

▲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미국 정부와 신군부 사이의 비밀 통신기록 ‘체로키 파일’을 폭로한 미국 언론인 팀 셔록이 24일 지난 4월부터 광주에 머물면서 연구, 분석한 5·18 관련 미국정부 기밀문서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전두환 등 신군부는 미국 쪽에 터무니 없는 거짓 정보를 흘려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내려 했고, 미국은 이를 알면서도 ‘국익’을 이유로 신군부의 만행을 묵인·방조했다.”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미국 정부와 신군부 사이의 비밀 통신기록 ‘체로키 파일’을 폭로한 미국 언론인 팀 셔록(66·Timothy Scott Shorrock)이 3500쪽에 달하는 5·18 미국 관련 기밀문서를 연구한 뒤 내린 결론이다.

팀 셔록은 24일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1979~80년 미국 정부 기밀문서 연구 결과 설명회’를 가졌다.

1996년 미국 정부의 5·18 관련 기밀문서를 처음으로 공개했던 그는 지난 4월10일부터 광주에 머물며 그가 기증한 기밀문서에 대한 해제(解題) 작업, 연구 등을 진행해 왔다.

이를 통해 그는 8가지 정도의 주요쟁점을 제시했다.

우선 그는 “1980년 5월21일 미국은 ‘광주 항쟁’이 한국의 안보, 또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에 대한 위협을 초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미국은 광주항쟁을 진압하지 않고서는 이 반란이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밝혔다.

또 “광주항쟁은 급진주의자들이 주도하고 있고, 항쟁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한국정부의 권력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며 “미 정부는 광주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전두환과 쿠데타 지도부를 지원해야 한다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팀 셔록은 “한국 군부는 미 군대와미 정부에 매우 왜곡된 정보들을 제공했다”며 전두환 군부의 ‘왜곡 정보전’이 당시 미국 정부의 판단에 큰 영향을 줬을 것으로 판단했다.

신군부 세력이 한미연합사 미국 쪽 군사정보통에 제공한 정보를 담은 ‘미국 국방부 정보보고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보고서는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제공한 정보를 미국 국방부가 번역한 것으로 △계엄령 시행의 배경 △계엄령 확대 이유 △‘광주 시민 소요(Civil Disturbance)’의 실제 양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중 ‘광주 시민 소요의 실제 양상’ 부분을 보면 “군중들이 쇠파이프, 몽둥이로 각 집을 돌며 식구들이 만약 시위에 동참하지 않으면 집을 불 질러버리겠다고 위협함”, “폭도들이 초등학생들까지 동원하기 위해 강제로 차에 태워 길거리로 끌고 나왔다”는 등의 왜곡된 정보들이 수두룩하다.

팀 셔록은 “신군부가 5·18 당시 시민들의 자발적 시위 참여를 공산주의자들의 방식으로 강제동원이 이뤄졌다고 왜곡하는 사례다”고 지적했다.

“폭도들이 전투경찰에게 무차별 사격” “군중을 향해 쏠 기관총을 설치함” “폭도들이 지하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었음” 등 직접적으로 5·18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몰아가는 내용도 확인됐다.

한 5·18연구자는 “5월27일 도청이 진압된 뒤 폭도들 수백명이 무등산 기슭으로 도망가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도청 앞 광장에서 폭도들이 인민재판을 열어 사람들을 처형하고 있다는 등 신군부가 만든어 퍼뜨린 소문이 마치 광주시위가 공산주의자 또는 북한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함으로써 미국이‘즉각 소탕해야 한다’는 논리를 강화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역시 이러한 정보가 ‘왜곡된 정보’임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란 게 팀 셔록의 주장이다.

그가 1980년 5월21일 미국 국방정보국(DIA)가 작성한 ‘광주 상황’이란 문서를 확인한 결과 “군인들은 만약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나 그들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여겨지는 상황이면 발포할 수 있는 권한을 승인 받았다”는 적혀 있었다. 미국이 나름의 첩보 등을 통해 당시 광주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문서에는 “광주에서 세무서와 관공서들을 파괴한 폭도들(rioters)은 인질을 붙잡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몇 명의 도청 공무원들도 포함돼 있음” “폭도들은 예비군 무기고에서 소총과 탄약을 탈취함” 등 왜곡되고 과장된 첩보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해제’로 인한 반미감정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같은 시기 미국 CIA 국내외국평가센터(National Foreign Assessment Center)에서 작성한 문서 역시 대부분의 내용이 공백으로 지워져 있었음에도 당시 미국이 다양한 통로로 광주 상황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얻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광주에서 이틀간의 대규모 폭동이 오늘 완벽한 내란(full-blown insurrection)으로 바뀌었음. 직접적인 원인은 야당지도자 김대중의 체포에서 비롯됐음(공백)”이라는 대목에서 ‘완벽한 내란’는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의 전문에서도 사용된 것이다.

팀 셔록은 “글라이스틴은 ‘공식적’으론 광주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다고 변명했지만, 이 대목을 보면 글라이스틴이 CIA 등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어 광주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CIA 문서는 “광주에서 협상: 대부분의 정부군이 광주에서 철수하고, 광주 계엄분소와 광주시민그룹 사이에 협상이 시작되고 있음”이라는 구체적인 상황 정보도 담고 있었다.

CIA문서의 지워진 부분은 정보원, 광주 상황에 대한 CIA의 분석, 판단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팀 셔록은 “미국 군사 정보기관은 전두환 그룹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한국군과 군 내부 자료들에 대한 조작도 했다”며 “특히, 5월21일부터 22일 사이에 광주상황을 매 시간별로 보고 받고 있었는데, 이 보고에는 무기탈취와 시민들의 반격, 시민군의 무기반납 시각까지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모든 정보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1980년 5월22일 백악관 회의에서 항쟁을 끝내기 위해 (신군부가)군부대를 사용하도록 결정했다”며 “이 선택은 1953년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 대한 미국의 최악의 실수”라고 지적했다.

5월21일 이미 미국이 신군부의 무력 진압 의도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 방조한 것에 대해 팀 셔록은 “미국이 국가 안보, 경제적 이익 등을 위해 이런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인으로서 죄송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이번 기밀문서들에서는 발포 명령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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