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당시 목포경찰서장
“유혈사태 막자” 총기 고하도로 옮겨
신군부 명령 거부로 경찰 중 유일 파면

▲ 5·18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강경진압 명령을 거부했던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사위 윤성식 씨 제공>
 1980년 5·18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강경진압 명령을 거부했던, 또 한 명의 ‘경찰 영웅’이 38년 만에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됐다.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다.

 8일 고 이준규 서장의 유족에 따르면, 지난달 국가보훈처에 5·18민주유공자를 신청했고 지난 6일 “유공자로 결정됐다”는 결과를 통보 받았다.

 5·18광주민중항쟁으로부터 38년, 이준규 서장이 사망한지 33년 만에 그의 희생과 헌신을 정부가 인정한 것이다.

 사실 이준규 서장의 행적은 물론, 그의 존재 자체도 최근에서야 조금씩 알려졌다.

 5·18 때 목포경찰서장이었던 그는 신군부가 아닌 시민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당시 경찰 간부 중 유일하게 파면을 당한 인물이다.

 5·18광주민중항쟁이 전남의 각 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자 전두환 신군부는 경찰에 강경진압을 명령했다. 목포도 시위 참여자 등이 크게 늘어났고, 무장 시민군이 진입하는 등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이준규 서장은 결코 시민들을 상대로 한 무장을 지시하지 않았다.
 
▲“자위권 행사 소홀” 파면·고문 후유증 85년 사망
 
 신군부는 경찰에 총기 사용을 통한 시위 진압을 명령했지만 이준규 서장은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시민군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경찰 병력을 목포경찰서에서 철수시켰다. 특히, 이준규 서장은 총기들의 방아쇠 뭉치를 제거한 뒤 배에 싣고 목포와 가까운 곳에 있는 섬인 고하도로 옮겼다.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는 당시 광주지역 치안을 책임지고 있었던 고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의 ‘강한 의지’도 뒷받침됐다.

 당시 안병하 국장은 시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대응할 것을 지시하는 한편, 총기 사용으로 인한 사상자 발생을 막기 위해 전남지역경찰에 총기를 반납할 것을 명했다.

 지난 5월10일 고 안병하 치안감 유족은 ‘1. 절대 희생자가 발생 않도록(경찰의 희생자가 있더라도) 2. 일반 시민 피해 없도록 3. 주동자 외는 연행치 말 것(교내에서 연행금지) 4. 경찰봉 사용 유의(반말, 욕설 언급) 5. 주동자 연행시 지휘보고(식사 등 유의)’ 등 당시 안 치안감의 ‘데모 저지에 임하는 방침’을 공개하기도 했다.

 신군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이준규 서장은 자위권 행사 소홀 등을 이유로 파면됐고, 보안사에 끌려가 3개월 간 고문을 받았다.

 안병하 국장 등 직위해제나 면직을 당한 경찰 간부들은 많았지만 파면을 당한 건 이 서장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목포가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이란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며 “김대중 대통령을 내란 음모로 기소하려던 신군부 입장에선 목포에서 유혈사태가 나길 바랐는데,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자 이준규 서장에게 유독 가혹한 징계를 내린 게 아닌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유족들 5·18유공자 신청…보훈처 지난 6일 결정 통보
 
 이것도 모자라 신군부는 그에게 직무유기 등의 혐의를 달아 군사재판에 넘기기도 했다.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준규 서장이 강경진압 명령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안 목포시민들은 이 서장을 석방하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고, 이 서장은 선고유예로 풀려나게 됐다.

 하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됐고, 5년간 투병하다 1985년 암으로 사망했다.

 8일 고 이준규 서장의 사위 윤성식 씨는 “신군부는 이준규 서장님에게 ‘불명예 경찰’이란 낙인을 찍었고, 이로 인해 서장님은 물론 유족들도 오랜 시간을 힘들게 살아왔다”며 “이제라도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아드리기 위해 5·18민주유공자를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두환 신군부의 발포명령을 거부한 고 안병하 치안감이 2005년에야 순직을 인정 받고, 사망한지 29년만인 지난해 10월 치안감으로 1계급 특진 추서된 가운데, 이준규 서장의 유족도 5·18민주유공자 인정을 계기로 순직 인정, 군사재판에 대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재심 청구 등 남은 명예회복의 과제들을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윤 씨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준규)서장님의 완전한 명예회복이다”며 “이를 위해선 목포에서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없도록 했음에도 서장님이 왜 이렇게 불공정하고 가혹한 조치를 당해야만 했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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