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탑승 고속·시외버스 시승, 배영준씨
“투쟁없이 보낸 명절, 버스여행 기대감 커”

▲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공개한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에서 리프트가 내려온 모습. <사진=배영준 씨 제공>
 “그런 버스에 오른 건 난생처음이었죠. 기분만큼은 정말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시외버스가 지난 추석을 앞두고 공개됐다. 시승식에 참석했던 장애인 활동가 배영준 씨는 아직 그 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광주지역에서 이동권 투쟁을 벌여온 배 씨는 뇌병변장애인으로 전동휠체어를 타야 이동이 가능하다. 지난 5년간 유스퀘어 광주터미널에서 ‘명절 버스 타기’ 투쟁을 해왔는데, 올해 추석은 오랜만에 투쟁 없는 명절을 보냈다. “버스 타고 고향가자”는 구호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등버스 개조해 휠체어 가능 2석
 
 지난달 1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대형버스 시승식’이 진행됐다. 국토교통부가 한국교통안전공단(연구기획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등과 공동으로 개발한 차량이다. 29인승 우등버스를 개조해 수동·전동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2석이 마련됐다. 일반 좌석을 접어 사용하는 형태다.

 “여태껏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가는 건 꿈도 꾸기 힘들었어요. 기차에 장애인 석이 있다 해도 차 없이 육지 이동은 제약은 힘들잖아요. 이제 거제도처럼 작은 도시도 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커요. 주어진 선택지가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자유가 생긴 거죠.”

 그동안 전국의 장애인 단체 등은 ‘시외 이동권’ 투쟁을 벌여왔다. 지난 2014년부터 총 15차례의 ‘버스타기’ 투쟁을 진행했을 뿐 아니라 법정 소송제기 등 법 개정을 위한 노력도 이어왔다. 그럼에도 휠체어가 탑승 가능한 고속·시외버스는 ‘0’대. 시승식에서 공개된 차량이 최초인 셈이다.

 “기대감만큼이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컸어요. 실제로 이동약자들이 안전하게 탈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직접 탑승해보니 역시나 개선해야할 점이 많았어요. 휠체어를 고정할 수 있는 장치는 잘 갖춰져 있었지만, 휠체어 크기와 움직임을 고려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었습니다.”

일반석을 접어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게 된다.
 
▲의자 간격 좁아 휠체어 움직임 제약

 이날 시승식에서 나온 전장연 등의 의견을 종합하면, 휠체어를 리프트로 타고 내리는 과정에서 큰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의자 앞뒤 사이의 폭이 좁아 휠체어를 돌리는 등의 움직임이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다.

 “장애인들에게 장시간 여정은 큰 도전이에요. 척추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이 부동자세로 장시간을 버티는 건 신체적 위협이 될 수도 있어요. 보호자가 자세를 바꿔줄 수 있도록 동반자석과의 거리가 충분히 확보되고, 휠체어를 돌릴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머리, 턱 등 신체를 받칠 수 있는 장치도 세심하게 설치되면 좋겠어요.”

 특히 이 버스는 각각 보장구 A, B형에 속하는 수동형 휠체어나 전동휠체어는 탑승이 가능하지만, C형 전동스쿠터의 경우 회전 간격을 맞추기 힘들어 탑승이 불가능했다.

 “전동스쿠터를 버스에 실을 수 없다는 건 말이 안돼요. 스쿠터를 타는 장애인들도 지난 5년 간 이동권 투쟁을 함께해 왔습니다. 스쿠터 역시 장애인들의 다리와 발이에요. 다른 이유들로 일부 이동약자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개선됐으면 합니다.”

 국토부는 이날 시승행사를 통해 개선점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내년 2월 휠체어 탑승설비 안전성 검증 및 휠체어 사용자 등 예약·인적시스템 등을 개발해 내년 하반기 시범사업 운행을 시작한다. 국토부는 관련 예산 13억4000만 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5년간 시외 이동권 투쟁을 벌여온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여행가는 길, 장애물 제거까지” 

 “시범사업으로 버스 탑승이 가능해지면, 이동약자들의 삶이 훨씬 더 나아질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이동권 보장만을 의미하진 않아요. 터미널을 이용하기 위해선 장애인들도 무리 없이 화장실, 식당을 출입할 수 있어야 하고요. 여행지를 가더라도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도록 설계될 필요가 있으니까요.”

 배 씨는 “고속버스 여행 중 휴게소에 들러 간식 사먹을 수 있는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한편 지난달 19일 국토부와 전장연이 발표한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정책’에 따르면,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있는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 운영을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확대하며, 농어촌버스 및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교통약자의 접근성 제고를 위해 중형 저상버스에 대한 재정지원을 2020년부터 적극 추진한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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