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기 선생, 5년간 SNS 사진에 ‘시’ 접목
9일 시사집 출판기념회, 작품 전시회 개최

▲ 지리산 노고단에서 나상기 선생(왼쪽)과 아내 이종옥 씨가 포즈를 취했다.
 “작가는 아니에요. 재야 사진가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겁니다. 저는 작가로 불릴 수 없지요.” 50년 동안 ‘재야 민주화운동’에 몸 담아 온 나상기 선생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사진기를 들었다. 스스로를 ‘재야 사진가’로 칭하며, 인생 2막을 맞아서도 ‘중심 아닌 곳’을 자처하는 그다.

 찍어 온 사진에 시적 감상까지 더해 엮은 ‘시사집(詩寫集)’ 발간을 앞둔 그를 6일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제가 올해 칠순이더군요. 지난 시간의 결과물을 동지들과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표현하고 싶었던 저의 마음이고, 그게 또 제 인생의 일부니까요.”

 5년 간 틈틈이 SNS에 올린 사진과 글 중에 150점을 고르고 골랐다. 주로 남도 지방을 돌며 사계절의 풍경과 꽃을 담아낸 사진이다. 사진이라는 정지화면에 마음의 언어를 노랫말처럼 입혔다.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두 단어

 “사진을 쭉 찍다보니,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어요. 그립기 때문에 기다리는 거고, 기다릴수록 더 그리워지는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모든 사진들을 아우르더라고요.” 이번에 발간되는 시사집의 제목을 ‘기다림의 꽃 그리움의 풍경’으로 함축한 이유다. 사진과 시를 접목한 시사집을 설명하기 위해 표지에 ‘사진을 시로 읽는다’는 문구도 새겼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5년 전 인생의 전환점을 맞으면서다.

 “무녀독남으로 저 하나만 바라보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치매를 앓으셨는데, 달라진 어머니와 지내면서 제 현실도 많이 달라졌죠.”

 바깥일을 내려놓고 나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조급하게 변화시키려고 했던 과거에 대해 많이 반성했습니다.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저에겐 사진이 그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여수 무슬목 해변. 나상기 작품.

 어두운 시절 학생운동을 거쳐 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되고, 이후 농민운동, 재야민주화운동까지 지난 50년은 그와 동지들이 바라는 세상을 위해 몸 바쳤던 세월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식량 자급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가슴 아픈 농촌의 현실을 직시할 때마다 그에게 찾아오는 건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하는 허탈감이었다.

 “농촌 풍경을 찍을 때면, 농민의 땀과 눈물이 느껴집니다. 가끔은 예전 버릇대로 성명서 쓰듯 글이 써져 혼자 웃을 때도 많았어요. 그러다 이젠, 변화의 열망을 후배들의 몫으로 남겨주자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그리운 만큼 기다리자는 거지요.”

나상기 선생.
 
▲아내 이종옥 작품과 함께 전시회

 시사집 제목처럼 그리움과 기다림의 가치를 알게 된 인생의 황혼기에서 이제 그는 자신을 고백하고 싶다고 말한다.

 “작가도 시인도 아니지만, 제 마음을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앞으로도 사진기가 있는 한 계속 그리하려 합니다. 언젠가 또 한 권의 시사집이 나올지도 모르겠지요.”

 나상기 선생은 암 투병 중에도 민화를 그려온 아내의 작품과 함께 30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오는 9일부터 15일까지 금남로 2가 우영카메라 2층 우영갤러리에서 ‘나상기, 이종옥 전시회 사진이랑 민화랑’을 여는 것. 오프닝은 9일 오후 5시다.

 더불어 9일 오후 3시엔 시사집 ‘기다림의 꽃, 그리움의 풍경’ 출판기념회를 연다. 나상기 선생은 현재 민청학련계승사업회 공동대표, 민주평화광주회의 기획위원장,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광주전남기독교민주화운동동지회 감사, 전남농민운동동지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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