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 최용주 연구원 ‘5·18 당시 미국 언론 보도’ 분석

▲ 1980년 5월22일 뉴욕타임즈가 보도한 기사. 최용주 5·18기념재단 비상임 연구원은 5·18 당시 미국의 언론매체들이 보도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뉴욕타임즈는 광주항쟁 기간 중(5월19일-5월30일) 관련 사진을 총 8장 게재하였는데, 5장이 시민들의 시위행렬이나 황폐한 거리 사진이고, 2장은 외곽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계엄군 사진이며, 계엄군의 과잉진압 장면을 담고 있는 사진은 1장에 지나지 않았다. 이 중 한 장에는 무장한 시민들이 타고 있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미국의 주요 언론매체들이 미국적 관점에서 5·18을 보도하며 본질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5·18기념재단은 5·18 관련 해외자료 수집 및 분석 사업의 일환으로 5·18 당시 미국의 언론매체들의 보도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19일 공개했다.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1980년 5월18일에서 6월 말까지 한 달 여 동안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약 250 건 정도의 광주항쟁 관련 기사를 생산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미국 주류언론의 양대 매체인 ‘New York Times’와 ‘Washington Post’, 최대 통신사인 ‘Associated Press’, 그리고 대표적 시사잡지인 ‘News Week’와 ‘Time’에 실린 190건의 기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담았다.

최용주 재단 비상임 연구원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당시 미국매체들의 광주항쟁 보도는 광주항쟁이 발발하게 된 한국 고유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객관적이고 거시적인 이해 보다는 자국인 미국의 관점, 구체적으로는 카터 행정부가 추구하는 대한(對韓)정책의 관점에 의존해서 보도했다는 점에서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안보를 명분으로 전두환 신군부를 군사적, 외교적으로 지원할 수 밖에 없었던 카터 행정부는 광주항쟁을 정치발전과 인권 신장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지역차별과 지역의 정치영웅인 김대중의 체포에 불만을 품은 광주시민들이 일으킨 ‘국지적’ 폭동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러한 관점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보도의 관점에 스며들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러한 보도경향은 광주항쟁과 성격과 비슷한 1989년 중국의 천안문사태에 대한 미국언론의 보도행태와 비교하면 더욱 잘 드러난다”고 밝혔다.

“천안문사태 기사의 경우 사태의 정치적 성격을 보여주는 개념인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단어는 빈도 수에서 6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게 다루어지고 있는데, 광주항쟁 관련 기사의 경우는 민주주의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190개 기사 총 3만3840 개 단어 중 42회)”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당시 미국 매체가 카터행정부의 대한정책 기조에 의존해 광주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을 주저한 탓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광주항쟁 이후 미국 언론이 가장 염려하고 있었던 부분은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책임론과 이로 인한 ‘반미주의’의 확산이었다”며 “대부분의 매체들이 반미주의의 확산에 대비하는 미국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미국 매체들은 광주항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공수부대의 유혈진압에 있음을 명시했고, 특히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적극적으로 왜곡 선전하던 북한 개입설을 일축하는 등 사실에 근거해 취재하는 노력을 많이 보여주었다”며 “광주항쟁 이후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한 미국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한 점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고 밝혔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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