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기억, 찾고 잊고 싶은 기억 ‘놓다’
143개 기억 보관 중…
청년 자서전쓰기 프로그램도 진행

▲ 송채영 작가.
 최근 청년예술인지원센터에서 ‘기억보관소 프로젝트 Gone through’라는 전시를 마무리한 타라재이 송재영 작가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송 작가는 올해 청년센터와 함께 청년수당 참여자 대상 인생보고서 과정도 운영했는데요. 궁금한 이야기 같이 들어봐요.
 
 -자기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작가 타라재이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수집한 기억을 서사적 글쓰기로 풀어내며 리서치, 출판, 전시 등 다양한 매체로 기억과 기록을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서 수집된 목소리를 내면화 하여 ‘다시 말하기’로 글을 쓰는데, 이는 인간 내면의 다양한 군상을 탐구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타라재이는 무슨뜻이에요?

 △‘타라’는 산스크리트어로 ‘고통의 강을 건네주는 어머니’라고 해요. 티벳설화에 따르면 타라는 아흔이 되어 얻은 귀한 아들을 잃어버렸대요. 그녀는 세상을 떠돌며 아들을 찾아 헤매다가 고통 받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부처는 성심을 다해 사람들을 돕는 그녀의 모습에 감동받았고, 숨겨두었던 그녀의 아들을 돌려주었죠. 그녀는 성불한 후에도 망자를 위해 고통의 강을 함께 건네주는 보살이 되었다고 해요. 재이는 한자식으로 풀면 ‘있다’는 뜻이에요. 타라재이는 사람들과 함께 삶이라는 고통의 강을 건너고 싶다는 뜻이에요.
 
▲“저에겐 만인보와 비슷한 작업”
 
 -얼마 전 전시를 마치셨다고 들었는데, 기억보관소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기억보관소 프로젝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고, 잊고 싶은 기억을 놓고 가는 시민참여형 프로젝트입니다. 예약을 통해 프로그램에 참여 신청을 하면 참여자는 작가와 차담을 나누고, 작가는 참여자의 기억을 간접 경험하며 이야기 속에서 문장을 발췌해 기록합니다. 작가는 그 문장에 답하듯이 새로운 문장을 타자기로 적어 카드 뒷면에 기록해요. 이는 기억이라는 경계에 닿은 두 사람의 시간과 공간을 의미합니다. 참여자는 완성된 문장을 가져가거나 문장을 맡겨두고 가요. 기억보관료로 식사 한 끼를 대접받거나 의뢰인의 소지품을 받고 있습니다.
 
 -기억보관소 프로젝트를 왜 시작하게 되었나요?

 △2015년, 개인적으로 큰 아픔을 겪었어요. 길을 걸으며 자주 울었습니다. 가슴 속에 눈물이 가득한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잘 알아보는 법이에요. 대인시장 별장에 메이커스 2기로 입주하게 되어 공동작업장에 테이블을 놓고 저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어요. 뿐만 아니라, 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작업실 문을 나서는 사람들의 밝은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죠. ‘듣는 것은 힘이 있구나, 한 사람의 문장을 기록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구나, 잠깐이지만 외롭지 않구나.’
 사실 기억보관소는 작은 사건 덕분에 시작하게 되었어요. 당시 별장 팀에서는 메이커스 참여자들에게 아트마켓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어요. 우리 팀이 발행하던 잡지는 웹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판매를 목적으로 소량 출판 할 경우 원가대비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였어죠. 게다가 다른 멤버는 개인사정으로 마켓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 궁리를 하다가 즉석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장사를 시작한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앞 가게에서 젊은 여자가 쫓아왔어요. 업종이 겹친다면서 상도에 어긋나니 판매를 그만두라는 것이었죠. 그날 장사를 접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할 수 없는 일, 누구도 할 수 없는 일,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건 남들이 갖지 않은 저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 가지를 발견했어요.
 첫째, 나는 친근한 인상과 밝은 미소를 가졌다. 둘째, 좋은 관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안다. 셋째, 글쓰기를 좋아하고 재능이 있다. 이것들은 마치 화수분처럼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당신의 기억을 보관해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출입문에 붙이자 사람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았어요. 그런데 막상 용기를 내는 사람은 별로 없었죠. 프로젝트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타자기가 등장하면서 부터입니다. 지금까지 143개의 기억이 보관되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갈 생각입니다. 저에게는 만인보와 비슷한 작업이지요.

기억보관소 프로젝트.
 
▲ 불안을 토로하고 행복을 기억하고
 
 -기억보관소를 찾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분들이었어요?

 △아주 다양해요. 잃어버릴 것 같은 기억을 보관하러 오는 사람, 슬럼프에서 벗어나려고 문을 두드린 사람, 연인끼리 데이트 장소로 오기도 하고,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오기도 합니다. 가족에 관한 기억을 털어놓거나, 불안한 현재와 미래에 대해 토로하기도 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추억하며 기억을 남기기도 합니다.
 
 -기억보관소에 기억을 보관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메모리키퍼 타라재이와 연결되면 됩니다. 네이버에 ‘타라재이’를 검색해 블로그를 통해 쪽지를 보내거나, 페이스북에 ‘기억보관소’를 검색하거나 인스타그램에 ‘memorykeeper4you’를 검색하여 신청메시지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얼마 전에 ‘인생보고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다던데 소개 부탁드려요.

 △인생보고서는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청년들, 혹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입니다. 일반적인 자서전과 달리 인생보고서는 ‘자소서’와 ‘자서전’의 중간지점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나 리서치’와 ‘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나 리서치’는 현재 자신을 구성하는 다섯가지를 사진으로 포착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찾아보았어요. 이후 ‘나의 이야기’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삶을 소설의 발단-전개-절정-열린결말의 구성방식에서 차용해 성장스토리를 적었습니다. 자서전 발간을 목표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참여한 청년들은 인생-아트북을 완성하거나 자서전 글을 첨삭 받아 원고를 조금씩 완성해 나갔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많은 분들이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고 하더라고요. 저 또한 모든 과정을 참여자와 동일하게 참여했고, 가슴 속에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치유를 경험하였습니다. 15명의 참여자 중에 4명이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있답니다. 12월에는 어엿한 자서전 작가로 북 콘서트도 열 예정입니다.
 
 -광주라는 지역에서 예술하며 먹고 살기, 어떤가요?

 △예술하며 먹고 살기는 어디에서나 힘들지요. 필요에 의해 생산하고, 소비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광주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예술은 분명 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끼치며 기여하는 부분이 크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들이 지속가능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해요. 제가 아는 예술가들 대부분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작업을 하는 거거든요.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면 그게 인생”
 
 -앞으로도 계속 광주에 계시나요?

 △광주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저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고, 많은 친구를 주었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곳이에요. 늘 마음 한켠에 그런 고마움에 대한 부채감이 있어요. 앞으로도 더 많은 광주시민을 만나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광주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인생을 살기보단, 하루를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거짓 없는 하루를 살아내면 좋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거든요. 나와 내가 만나면, 배꼽에 있는 흥을 발견하고, 팔다리가 자유로워지면 어느덧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거예요. 춤추듯 하루를 살아내고, 소중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모공을 열어 바람을 느끼는 게 행복이 아닐까요. 오늘도 진실한 춤추기로 하루를 살아내고 인생에 도달하기를.
 
▶송재영 청년을 만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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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www.tarajay.net

이메일: tarajay@naver.com

전화번호: 010-2902-0969
 
문정은 <광주청년센터 더숲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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