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선고 직접 못봐 많이 울었지만
이겨서 기분 좋았다”
“당장이라도 사죄 받으면
100살까지 산 기분 들 것 같아”

▲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내 생에 그렇게 기분 좋은 날은 없었어.”

1999년 3월 일본 재판을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여온 양금덕 할머니는 마침내 얻어낸 대법원 승소에 “눈물로 산 73년을 이제야 보상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대건문화관에서 열린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대법원 승소 시민보고대회’가 끝난 뒤 양 할머니는 “짧은 선고였지만 승소했다는 소식에 다시 젊은 청춘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그동안 단합해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 우리나라 학생들에 고맙다”고 소회를 밝혔다.

대법원 최종 선고가 내려진 지난달 29일 갑자기 결핵 진단을 받아 아쉽게도 직접 선고를 지켜보지 못한 양 할머니는 “그날(선고일) 병원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단 몇 시간이라도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의료진에 떼(?)를 써보기도 했지만 건강이 악화될 수 있어 결국 할머니는 병원 밖을 나서진 못했다.

그토록 기다린 순간을 직접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컸지만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나선 기분이 풀렸다고.

“내가 못 갔어도 여러분들이 다 가서 응원해준 것이. 뜻있는 일을 해줘서 마음이 좋았재. 직접 못 갔어도 내 대신 해줬다는 거 고마워.”

재판에서 이기고 나니 가장 떠오른 순간은 2013년 11월 광주지방법원 1심 판결에서 이기고 만세를 외쳤을 때다.

이동련 할머니 등 다른 1차 소송 원고,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이금주 회장 등까지 다 함께 했던 첫 승리의 순간. 할머니는 “여럿이서 박수치고 만세를 부르는 기분이 참 좋았다”고 떠올렸다.

한편으론 많은 세월이 흘러 당시 함께했던 동료들을 보기 어렵다는 아쉬움도 나타냈다.

이날 보고대회에는 이동련 할머니도 참석해 오랜만에 양금덕 할머니와 만났지만 치매 증상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1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원고인 이동련 할머니와 양금덕 할머니(왼쪽부터).|||||

“동련이 친구도 보니까 치매끼가 있어서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하고. 그렇게 나하고 친했는디 저렇게 된 게 영 마음이 안 좋아. (대법원에서)이기는 날 다 모여서 이겼다고 만세도 외치고, 이런 일 저린 일 그동안 우리가 한 일들, 고통 받은 일들 얘기도 하고 싶고 그런디 인자 다 늙어서 잘 만나지도 못하고 영 마음이 안 좋아.”

이런 할머니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청소년들의 응원이다.

“아이들이 힘내라고 해줄 때가 제일 좋아요. 그 어떤 때보다. 돈 가져다주고 뭣을 가져다주는 것보다 애기들 응원이 제일 좋아. 눈물나게 김동시러.”

이날 보고대회에서 “100살까지 살고 싶다”고 한 양 할머니의 남은 유일한 바람은 일본 정부, 미쓰비시중공업의 진신어린 사죄다.

“이만치 됐은 게 일본 사람이 사죄하는 것이 가장 바라는 거지. 우리한테 잘못했다는, 우리가 그동안 눈물 흘리고 아픈 것에 대해 사죄하는 것이 바람이여. 내년이라도 사죄만 받으면 그 이상 바랄 수 없겄어. (내 나이가)금년 90인디 사죄만 받으면 100살까지 산 것처럼 여한이 없을 것이여. 여지껏 가슴 앓이, 눈물이 다 눈 녹대끼 녹는 기분이 들 것 같어.”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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