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0주년 맞아 그동안 활동 중
10개 결정적 장면 꼽아
친일 ‘김백일’ 잔재 청산
새마을장학금 폐지 연대 활동도

▲ 지난해 11월29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1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지은 뒤 서울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근로정신대 피해 원고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 지원단체, 변호인단 등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문제를 알리고 명예회복을 도와온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 어느덧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시민모임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활동해 온 지난 10년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맨 먼저 꼽은 것이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앞 1인 시위다.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앞 1인시위.<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2009년 9월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이 광주시청 앞에 문을 연 것을 계기로 2010년 7월30일까지 208회의 1인 시위가 진행됐고, 여기에 참여한 인원만 2800여 명에 달한다. 이를 계기로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은 2010년 11월16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퇴출’됐고, 이후 2013년 6월에도 서울 여의도와 강남, 분당 등 3곳 영업장이 폐쇄됐다.

시민모임의 1인 시위는 미쓰비시 국내 영업장의 완전 철수를 이끌어낸 핵심 동력이었던 것이다.

전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투쟁도 시민모임의 지난 10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뉴스였다.

2009년 12월 일본 후생노동성이 양금덕 등 근로정신대 1차 소송 원고들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금으로 99엔을 지급해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벌어졌다. 화폐가치 변동을 고려하지 않고 64년 전 액면가 그대로 99엔을 지급한 일본정부의 만행은 근로정신대 투쟁을 전국적 이슈로 확산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이에 시민모임은 2011년 6월 후생노동성을 상대로 99엔 재심사 청구 도쿄 원정 투쟁단(22명) 활동을 벌였다.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투쟁.<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2010년에는 해방 후 처음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을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테이블로 불러냈다.

2010년 6월23일 항의방문단(21명)이 13만5000여 명의 항의 서명을 들고 도쿄 한 복판에서 삼보일배 시위를 벌였고, 서명을 미쓰비시 본사와 일본정부에 전달했다.

미쓰비시가 강제연행 문제와 관련 피해자 측과 교섭에 나선 것은 최초 사례로, 당시 2010년 11월~2012년 7월 16차례 정식 교섭이 이뤄졌다. 하지만 미쓰비시가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2012년 7월6일 교섭은 최종 결렬 됐다.

힘겨운 근로정신대 투쟁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 10만 희망릴레이도 시민모임의 10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이었다. 시민모임은 미쓰비시 협상이 본격화 되면서 재정난에 봉착, 2011년 1월 ‘10만 희망릴레이’ 선포식을 시작으로 11월 보고대회까지 협상기금 마련을 위한 10만 명 1000원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시민모임은 무등산 증심사 등산로 등에서 총 82회 거리캠페인을 벌였고, 광주지역 중·고등학교 136개 학교, 그 외 지역 12개 학교도 희망릴레이에 동참했다.

이 결과 목표를 초과한 총 11만4000여 명 참여이 참여해 1억1600만 원이 모금됐다.

2012년 3월 광주시의회 근로정신대 피해자 지원 조례 제정.<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2012년 3월에는 최초로 광주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돕는 조례가 제정됐다. 광주시의회가 첫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전라남도(2013) △서울시(2013) △경기도(2014) △인천시(2015) △전라북도(2016)에 이르기까지 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잇따라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해 매월 생활보조금과 의료지원금을 지급하게 됐다.

2014년 4월 서구 화정동을 발칵 뒤집은 친일파 ‘김백일’ 잔재 문제 역시 시민모임이 앞장 서 해결했다. 당시 서구 화정동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인근에 위치한 일제 군사용 동굴을 재조명한데 이어, 그해 11월 간도특설대 출신 김백일에서 유래한 백일초등학교 교명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진 것. 이후 도로명은 ‘백일로’에서 ‘학생독립로’로, 공원명은 ‘백일어린이공원’에서 ‘학생독립어린이공원’으로(2015년 3월), 학교명은 ‘백일초등학교’에서 ‘성진초등학교’(2016년 3월)로 변경됐다. ‘백일초’의 고명 변경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름에서 유래한 교명을 변경한 첫 사례였다.

군함도 상륙 무산…일제 징용시설 유네스코 등재 반대 투쟁(2015).<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일제 강제징용시설의 유네스코 등재 반대 투쟁과 군함도 상륙 무산도 10대 뉴스로 선정됐다.

2015년 6월3일 역사기행단(23명)이 나가사키 공항에 4시간 억류된 데 이어 군함도 입도가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 기행단은 우익단체의 반발 속에 추모의식을 진행했다. 또 일제 강제 징용 시설 유네스코 산업유산 등재 문제를 이슈화 했다. 유네스코 총회(7월5일)가 열리는 독일 본(Bonn)까지 가서 현지 교민들과 함께 등재 반대 투쟁을 펼친 바 있다.

2015년 8월12일 고 최현열 열사가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현장에서 ‘칠천만 동포에게 고함’ 유인물을 남기며 분신, 투병 끝에 8월21일 운명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등 일제 문제 해결을 바랐던 그의 정신은 잊어선 안 될 역사로 남았다. 고 최현열 열사는 1932년 영암 영보 형제봉 사건으로 항일 농민 운동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른 고(故) 최병수 선생(2018년 11월 독립유공자 서훈)의 아들로, 이후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고 최현열 열사 분신·운명.<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기나긴 법정 투쟁 끝에 얻어낸 대법원 승소는 두고 두고 기억될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시민모임은 근로정신대 피해자 및 유족등과 함께 2012년 1차 손해배상 청구소송(원고 5명)을 제기한 데 이어, 2014년 2월 2차(원고 4명), 2015년 5월 3차(원고 2명)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의 재판거래,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과 맞서 2018년 11월29일 여자근로정신대 사건으로는 처음 대법원 승소 판결을 얻어냈고, 2차, 3차 소송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다만, 대법 승소를 이뤄낸 1차 소송 원고 김중곤 할아버지와 2차 소송 원고 심선애 할머니가 지난 1월과 2월 미쓰비시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미쓰비시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배상과 사죄를 거부하자 시민모임과 원고 측 변호인단은 국내에 등록된 미쓰비시중공업의 상표권 2건, 특허권 6건에 대해 압류절차를 추진하고 나섰다.

전국 최초 ‘광주시 새마을장학금 조례’ 폐지.<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시민모임 10대 뉴스의 마지막은 전국 최초 새마을장학금 조례 폐지다.

2017년 1월 촛불집회 과정에서 시민모임은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새마을회 특혜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광주시청 등 공공청사 새마을기가 철거됐다. 또 북구 새마을회관 건립비(5억 원) 철회, 2019년 광주시와 각 자치구 새마을장학금 예산 삭감 등의 성과를 이뤘다. 특히, 지난 2월에는 ‘광주광역시 새마을장학금 지급 조례’가 전국 최초로 완전 폐지돼 광주에선 새마을장학금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한편, 시민모임은 14일 저녁 7시 광주시청 1층 행복나눔드림실에서 창립 10주년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총회에는 일본에서 한일회담 문서공개 운동을 펼쳐 온 재일동포 이양수 씨,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소송을 지원하고 있는 ‘제2차 후지코시 강제연행·강제동원 소송을 지원하는 호쿠리쿠연락회’ 나카가와 미유키(中川美由紀) 씨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