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50주년 목표 ‘순례길로 엮자’ 구상
첫코스 들불야학,시민아파트 일대 탐방
“혁명 공간·사건 시민이 직접 걸어 연결”

▲ 광주 역사속 혁명을 꿈꿨던 이들의 흔적을 잇는 순례가 시작됐다. 순례자들이 13일 들불야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광천동 시민아파트 일대를 둘러봤다.
 “(광천시민)아파트 임대가 끝나갈 땐 저기 앞에 보이는 하얀 건물(광천시민아파트 가동 앞)이 보이죠. 김영철 씨가 ‘광천삼화신협’을 만들어 운영하던 곳인데, 저 신협 방을 (들불야학) 교실로 활용한 기억이 나네요.”

 지난 13일 오전 광주 서구 광천동 광천시민아파트 일대에 광주시민 20여 명이 모여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현장 이곳저곳을 설명하는 이는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임낙평 이사장. 들불야학의 강학 1기로 활동했던 그가 이날은 광주시민들에게 들불야학의 거점이었던 광천시민아파트와 광천동성당 등을 소개하고, 그곳에 스며있는 역사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강사’로 나섰다.

 ‘수강생’은 다양하다. 일반 광주시민부터 교사, 구의원, 시의원 등 정치인을 비롯해 연구자, 시민사회 활동가, 예술인 등등.

 ‘혁명의 도시 광주 순례길’이 시작을 알린 순간이다.
 
▲윤상원·박기순·김영철·박관현…

 광주마당 이민철 이사장의 제안으로 추진된 ‘혁명의 도시 광주 순례길’은 광주 역사 속 혁명을 꿈꿨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혼이 스며있는 공간 또는 장소를 직접 시민들이 걸으면서 순례길로 엮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이날부터 매월 두 번째 토요일마다 한 번씩 특정한 주제와 코스를 정해 진행하는 방식.

 5·18민중항쟁 50주년을 맞는 2030년까지 광주지역 내 ‘혁명’과 관련한 곳곳을 돌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순례길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들불야학과 5·18’을 주제로 들불열사기념사업회·들불야학동우회·광주마당이 준비한 이날 순례는 그 기나긴 여정의 시작점이다.

 들불야학 옛터인 광천동성당을 시작으로 광천시민아파트을 살펴본 뒤 광주천길을 따라 금남로 광주YWCA 옛터까지 걷는 것이 이날의 코스.

 ‘대건안드레아교육관’ 입구와 벽면만 남기고 옛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광천동성당이지만 임낙평 이사장의 눈에는 야학 학당이었던 옛 성당의 모습이 선했다.

 “(성당 주차장 쪽을 가리키며)승용차가 주차된 곳이 우리는 ‘교리 교실’이라고 불렀는데 그쪽 강당, 조그만한 방을 ‘들불학당’으로 썼어요.”

 들불야학 2기 강학인 전용호 작가는 당시 공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인쇄한 자료를 준비해 와 시민들에 나눠줬다.

 “‘들불’이란 이름은 박기순 선생이 유현종 씨가 쓴 ‘들불’이란 소설을 읽고 ‘들불처럼 전국을 불태우자’고 제안한 이름인데, 1978년 12월에 박기순 선생이 야학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기 위해 3~4일 과로를 하다 연탄가스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죠. 그때 장례식에서 불려진 노래가 ‘상록수’입니다.”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임낙평 이사장(중앙)이 들불야학 옛터를 설명하고 있다.

 광천동성당의 바로 옆에 위치한 광천시민아파트 역시 들불야학의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공간.
 
▲시민아파트 한칸도 야학당으로

 “1978년 10월 이 아파트에 입주해서 1년6개월간 야학을 했는데, 우리는 야학 공동방, 교무실이라고도 하고. 통행금지 되면 잠 잘 곳이 없기 때문에 한 이불 덮고 잠을 잤던 장소였죠.”

 광천시민아파트는 윤상원 열사가 들불야학에 참여하면서 입주한 곳으로, 임낙평 이사장은 “윤상원 열사의 체취가 서려있는 곳”이라고도 강조했다.

 “야학은 6개월이 한 학기인데 학기가 올라가면서 새로운 사람을 모집하니까 교실이 하나 더 필요했어요. 그래서 구 소방서에 있는 다방에서 ‘일일다방’을 이틀간 해서 모은 돈, 윤상원 선생이 모은 돈을 보태 (광천시민)아파트 한 동을 세낸 다음에 그걸 터서 교구·탁자·칠판을 만들어 놓고 교실로 1년2개월간 쓰기도 했어요. 아파트도 우리 들불야학 학당으로 활용한 거죠.”

 당시 신협을 준비하면서 광주YMCA직원으로, 또 새마을지도자로 ‘지역사회개발운동’을 펼쳤던 김영철 열사의 이야기도 순례 참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아파트에 아주 서민들이 살아서 김영철 씨가 주민의식 개발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들불야학이 들어오니까 본인은 ‘천군만마’처럼 느꼈죠.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겠다고 들불야학에 참여하고.”

 들불야학이 있던 곳과 가까운 광천터미널 일대는 당시 지방공단이 자리 잡고 있어 당시 박관현 열사 등을 중심으로 ‘노동자 실태조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전남대 사회조사연구회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박관현 열사는 들불야학이 탄압을 받기 시작한 1979년에 들불야학 3기로 참여했다.

 “야학 학생으로 참여한 노동자들은 15~25살 정도였는데, 단순히 가르치기만 하는 건 아니었어요. 교사와 학생이 아닌 선배와 동생, 형제 이런 개념으로 어울렸습니다.”

광천시민아파트를 찾은 순례 참여자들.

 이제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낡고 쓸쓸한 모습으로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광천시민아파트지만 이 공간에 담긴 들불야학 열사들의 삶과 이야기는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날 첫 순례를 시작으로 매달 진행되는 ‘혁명의 도시 광주 순례길’은 아직 다음 순례 주제나 코스가 정해져있진 않다. 다음 순례는 주제와 코스가 정해지는대로 SNS 등을 통해 홍보하고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매월 두번째 토요일 누구나 참여 가능

 이민철 이사장은 “광천동에서 김영철 열사가 신협운동 등을 통해 세상을 좋게 만들어보려했듯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 공간, 사건, 이런걸 연결해서 걷는 순례길을 만들어보자는 게 ‘혁명 도시 광주 순례’를 하려는 이유다”며 “이 과정에서 ‘뭔가’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또 다른 것을 연결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순례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광천시민아파트 어떡하냐’ ‘들불야학 이야기가 있는 거점을 어떻게 연결해야 하느냐’를 생각하게 됐다”며 “이미 설계되고 만들어진 길을 걷는 게 아니라 매달 참여해서 걷고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부분이다”고 강조했다.

 이민철 이사장은 “이 순례는 광주시민들도 참여하지만 외부에서 오는 분들이 광주에 올 때 어디를 가면 좋을지, 뭘 먹을지, 어디서 자야할지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데 이러한 질문을 엮어 답을 마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며 “예를 들어 복지 관련한 분들이 오면 복지와 관련한 곳들을 연결한 순례길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계속 걸으면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야 ‘외부 요청’에 응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보통 광주에 오면 한 두 곳 정도만 찍고 가는데 광주의 많은 일들은 그냥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옛날부터 이어져 온 맥들이 있다”며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맥들을 재조명하면서 새로운 순례길을 기획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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