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명예훼손재판 계기
목격·경험 증언자 잇따라
전두환 측 핵심 피한 질문 공세에도
“헬기사격 분명”

▲ 지난 13일 전두환 사자명예훼손 재판 증인들이 법정 출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5·18 당시 목격한 헬기사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회고록을 통해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측이 5·18민중항쟁 당시 계엄군 헬기사격을 쟁점화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되려 ‘5·18헬기사격’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광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열린 전두환 사자명예훼손 재판에는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거나 경험한 증인 5명에 대한 심문이 이뤄졌다.

김웅기·이광영·정선덕·최형국·남현애 씨 등인데, 이중 김웅기·이광영 씨는 광주청문회, 1995년 검찰 조사 과정 등에서 헬기사격에 대한 진술을 한 적이 있고, 정선덕·최형국·남현애 씨 등은 최근에서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5·18헬기사격 목격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무려 5시간이 넘는 증인심문에서 이들의 공통된 진술은 “5·18 당시 헬기사격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김웅기 씨는 1980년 5월21일 양림동 아놀드 피터슨 목사의 집을 방문했을 당시 “피터슨 목사가 헬기사격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있었고, 저는 1층에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며 “광주천을 향해 쏘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이광영 씨도 1980년 5월21일 양동복개상가에서 시위대 차량에 부착할 현수막 작업을 마치고 이동하던 중 월산동 로타리 부근에서 두 차례 “헬기사격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정선덕 씨는 남편이 총상을 입었다는 병원 연락을 받고 기독병원으로 향하던 중 헌혈차에 탔다는데 “헬기가 뒤에서 날아오면서 하향, 상항하며 세 차례 총을 쐈다”고 밝혔다. 정 씨가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밝힌 시점도 80년 5월21일이다.

최형국 씨는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80년 5월18일로부터 2~3일 후쯤 “집에서 쉬다가 총소리가 나 마당에 나가보니 헬기가 금남로 방향으로 기수를 돌리고 사격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남현애 씨는 ‘부처님 오신 날’을 근거로 1980년 5월21일 노동청 건너편에서 “헬기를 본 동시에 사격이 시작돼 뒤에 있는 사람이 다 죽었고, 저도 팔과 다리 등에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전두환 측 정주교 변호사는 증인심문에서 증인들에게 사소한 질문을 쏟아내며 증언의 신뢰성·신빙성을 흔들려 했다.

이광영 씨에 대한 심문에선 “(시위대 부착할)현수막을 몇 장 만들었나” “차량 몇 대에 부착했나” 등을 물었다. 5·18유족, 시민들이 방청 내내 한숨을 푹푹 쉬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던 이유다.

이미 증인이 당시 왜 길을 나섰고, 어디를 가는 중이었는지 밝혔음에도 재차 “몇 시에 집을 나섰나” “목적지가 어디었나” 등을 꼬치꼬치 캐묻기도 했고, 이전 검찰 조사에서 진술한 증인들에 대해선 이전 진술과 다른 부분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이로 인해 증인심문이 길어지며 오후 2시에 시작한 이날 재판은 저녁 6시 이후 두 차례 정전사태까지 겹치며 저녁 8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지루한 질문공세 속에서도 증인들은 모두 “헬기사격을 분명히 봤다”는 점을 강조했다.
1980년 5월21일 금남로 주변에 헬기가 떠다니는 모습.<5·18기념재단 제공>|||||

헬기사격을 목격한 날짜가 80년 5월21일이 아닌 사람도 있고, 목격했다는 헬기 기종도 500MD과 UH-H1으로 갈렸지만 5·18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증언은 모두 일치했다.

김정호 변호사는 “전두환 측은 하나는 ‘80년 5월21일’이 아니라는 점, 또 증인을 자극해 본질을 흔들려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헬기사격을 목격하지 않았는데 목격했다고 보긴 어려운 것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6월10일 예정된 재판에서는 6명의 증인심문이 이뤄질 예정으로, 검찰 측은 “추가로 증인이 더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헬기사격이 한 건도 없다고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헬기사격을 봤다고 하는데 (재판부가)헬기사격은 없다고 판단할 수 있겠나”라면서 “증인심문이 계속될 수록 5·18헬기사격의 사실을 확인하고 전두환의 유죄를 입증하는데 유리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큰 틀에서 (증인들이)헬기사격을 봤는지 안 봤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증인심문 이후 전두환 측은 목격자들의 증언만 가지고는 “5·18헬기사격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할 수 없다”며 5·18 당시 광주지검의 사체검시조서, 부상자 보상결정서 등 관련 기록과 헬기 조종사 증인심문, 5·18 때 현장을 담은 언론 사진이나 영상 확인 등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기록과 증거로 돌파구를 마련해보려는 의도로 풀이되나 재판부는 이에 대해선 사실상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장동혁 부장판사는 “피고가 5·18 이후 국가통수권자였다”는 점을 들며 당시 관리된 기록, 헬기조종사들의 증언의 신뢰성에 의문을 나타냈다. 또 재판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 “피고 측 증거신청에 대해선 이후 심리를 진행하면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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