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도곡~앵남간 도로변 투명벽
새들의 무덤 이어져
몇년 전 설치 버드세이버 무용지물
실효성 있는 대책 필요

▲ 방음벽에 부딪혀 비명횡사한 새의 사체들.
 “쿵” 소리가 나고선 “탁” 떨어진다. 투명한 방음벽을 미처 보지 못하고 벽에 부딪혀 비명횡사하는 새들의 이야기다.

 시민 박용수 씨는 광주와 화순을 오가는 도로를 지날때면 이 같은 상황을 자주 목격했다. “자주 그래요. 어떨 땐 운행 중인 차량 바로 앞으로 툭 떨어질 때도 있어요. 부엉이가 부딪히는 것도 본 적이 있어요”

 27일 박 씨의 제보를 받고 찾아가 본 화순 도곡~앵남 간 국지도 5호선 도로 전남학숙 인근 구간. 4년 전 같은 제보로 본보가 기사화<도로 위 투명 방음벽에 새들 비명횡사·2015년 5월>했고, 도로관리부서인 전남도가 ‘버드세이버’(Bird Saver)를 설치했지만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날도 방음벽 앞으로 새들의 사체 20여 개가 도로 위에 방치돼 있었다.

 치우는 사람은 특별히 없는 듯 사체들은 부패돼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일부 사체들은 함께 비행을 하다 동시에 변을 당한 듯 큰 새와 작은 새가 나란히 부패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제보자는 이를 두고 “새들의 무덤이다”, “총을 든 포수가 지키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했다.
 
▲버드세이버 설치 후 모니터링 전무

 이처럼 순환도로나 고가도로 등에 설치된 투명한 방음벽들이 새들에겐 피하기 힘든 ‘죽음의 벽’이 되고 있다.

 조류는 쫓아오는 천적을 인식하기 위해 눈이 옆에 달려 있어 전방의 물체를 인식하기 어려운 탓에 투명한 방음벽에 부딪히는 사고가 빈번한 것.

 특히 빠른 속도로 날기 위해 뼈 속이 비어있고, 두개골도 스펀지 구조로 돼있어 유리벽과 충돌하면 대부분 죽음에 이르게 된다.

 화순의 해당 구간 방음벽에는 지난 2015년 본보 보도 이후 ‘버드 세이버’가 설치됐음에도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다.

 버드세이버는 이러한 조류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붙이는 맹금류 모양의 스티커를 말한다. 해당 구간에는 독수리 모양 검은색 스티커가 하나씩 부착돼있다.

 하지만 2~3미터 간격으로 멀찍이 위치한 상태여서 “과연 효과가 있겠느냐”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그럼에도 행정당국은 버드세이버 설치 뒤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충돌사고는 줄었는지 등의 사후관리나 모니터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해당 국지도는 전남도가 발주한 도로다. 전남도 도로교통과에 따르면, 해당 구간에 대한 ‘버드킬’ 지적이 제기된 뒤 도로 시공사가 버드세이버를 설치했다. 전남도는 이후 전남도로관리사업소에 관리를 이관했고, 이후 버드세이버는 잊혀졌다. 발생하는 사체에 대해선, 민원이 들어올 경우 로드킬로 인식해 폐기물로 처리하는 정도다.

 전남도로관리사업소 관계자는 광주드림과 통화에서 “사업소는 기술직 공무원들이 근무하고, 관련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 영향 등 부분까지는 미처 돌보지 못했다”며 “향후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이 생긴다면 확실히 관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3m 간격 맹금류 스티커 효과없다”

 제보자 박용수 씨는 “비단 여기 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인데, 이런 상황을 그대로 놔둔다면 앞으로 몇 년이고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면서 “사람과 인간이 공존해야한다. 인간을 위해 방음벽을 높이 세웠기 때문에, 인간이 예산을 투입해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을 볼 때면 기분이 끔찍하다. 유리창이 꼭 총 든 포수하고 똑같다. 자유롭게 나는 새에게 일종의 그물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생명보다 소중한 게 어딨다고…”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박 씨의 지적처럼, 실제 조류충돌 문제는 이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1년에 전국에서 조류 800만 마리가 투명창이나 방음벽에 충돌해 폐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루에 2만 마리가 이 때문에 죽는 셈이다. 멧비둘기 등 소형텃새가 가장 많이 희생되고, 참매, 긴꼬리딱새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희생도 발견됐다.

 이에 최근에는 야생동물에 대한 보호의식이 높아지면서 조류충돌 방지 대책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남도의 경우 2015년 일찌감치 버드세이버를 설치하는 등 선제적 조치를 했지만, 맹금류 모양의 스티커가 2~3미터 간격으로 설치돼있는 방식은 “효과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환경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새들은 이른바 ‘5X10 규칙’에 따라 유리창을 인식할 수 있다. 높이 5cm, 폭 10cm 이하의 공간은 새들이 비행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신규 설치되는 방음벽은 ‘5X10 규칙’에 의거, 간격에 맞춰 점을 찍거나 그물망 설치, 줄무늬 스티커를 붙이는 등 새로운 방식들이 권장되고 있다.

 환경부는 이와 관련 ‘야생조류 투명창 충돌 저감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권장사항을 제시했고, 향후 건설법, 관련 지침 등에 가이드라인 내용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 설치된 버드세이버 모습. 2~3m 간격으로 띄엄띄엄 부착돼 있다.|||||
 
▲“시민 인식도 개선돼야”

 안타까운 희생을 막기 위한 시민활동도 전개되고 있다. 녹색연합은 지난 4월부터 야생조류충돌 방지 모니터링단 ‘버드 세이버즈-세 친구’를 모집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교육과 함께 각자 활동지역의 조류충돌을 감시한 뒤 플랫폼에 공유하는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한편, 실제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를 부착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온라인 기반 자연활동 공유 플랫폼 ‘네이처링(https://www.naturing.net)’에는 이밖에 많은 활동가들이 공유한 전국의 야생조류 충돌 사례가 올라와있다.

 지난해 7월 개설된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 미션엔 29일 현재 광주 80건, 전라 1358건의 피해사례가 공유돼있다.

 녹색연합 녹색이음팀 강승남 활동가는 “맹금류 스티커는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며 “설치 사례 등에서 볼 때 5X10 사이즈로 점처럼 부착해야 새들이 통과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화순군의 경우 개선이 필요해 보이고, 기존 설치된 방음벽들에 대해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루 2만 마리 이상이 희생되는데,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 등을 고속으로 지날 때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새들이 얼마나 많이 충돌하고 있는지 시민들이 잘 모르신다”며 “환경부가 관련법·지침 개정을 추진하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피해사실을 알려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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