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왜 ‘비정규직 백화점’이 됐나
예산만큼 쓰고 버려지는 ‘나쁜 일자리’

▲ 지난 7월 학교비정규직 총파업을 앞두고 급식실 노동자들과 투쟁 의지를 다지는 모습.<광주학비노조 제공>
 지난달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쉬던 중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최고 기온이 34.6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의 날씨였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쉴 공간은 한 평 남짓에 불과했다. 냉방은커녕 환기도 전혀 되지 않는 생지옥이었다.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보며 많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숨죽여 울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휴게실은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발 뻗고 쉴 공간조차 없는 학교가 태반이고, 언제 쓰고 버려질지 모를 고용불안과 최저임금도 못 미치는 시급까지…. 여러 악조건 속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도 함께 유폐됐다.

 지난 7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3일 간의 총파업을 벌였다. 정규직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신분보장을 약속받기 위해서다. 학생과 학부모, 국민들의 지지로 이번 파업은 큰 동력을 얻었다. 그러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는 아직까지도 침묵으로 일관 중이다. 학비노조는 10월 중 2차 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광주지역 학교비정규직노조 역시 그 투쟁의 선봉에 서 있다. 광주 학비노조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라’는 끝나지 않는 싸움을 이어 온지도 벌써 10년째다. 그동안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학교는 ‘비정규직 백화점’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교묘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노동착취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광주지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5000여 명에 달하며, 비정규직 직종만 50여종이 넘는다. 이에 본보는 ‘하루살이 목숨’이라 불리는 특수직군, 편법계약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계약직(강사직군), 산재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급식노동자와 같은 공무직 등 학교 비정규직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직군별로 대표 직종 중심으로 인터뷰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에 앞서 광주지역 학교비정규직의 전반적인 실태를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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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과 설움을 넘어 희망으로, 차별과 불안함을 떨쳐버리고 당당한 노동자로.’ 2010년 12월 광주지역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이하 학비노조)이 닻을 올리며 발표한 창립선언문 내용이다. 10년 전 품었던 바람은 더욱 절박한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광주 학비노조가 설립된 해 초대위원장으로 시작해 10년째 투쟁의 선두에 선 한연임 지부장은 “학교를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며 문장에 악센트를 줬다. 한 지부장은 정년을 1년 남긴 24년 경력의 학교 급식실 조리사로 그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다.

 “정부는 다양한 교육 사업을 각 시도교육청으로 이임하면서 사업비도 통째로 내려 보낸다. 그 예산의 대부분은 인력에 투입되는데, 그 때마다 예산만큼 쓰고 버려지는 소위 ‘나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광주도 영어회화강사나 스포츠강사처럼 재계약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학교 비정규직 직종수만 50여종

 노조에 따르면, 학교비정규직은 직종만 50여 종.(광주지역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수는 5000여명) 직종에 따라 임금 체계나 고용 조건 등이 상이하다. 또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간 노동조건이 다르고, 방학기간 근무 유무에 따라 임금조건이 크게 달라졌다. 그야말로 수백 가지 형태의 비정규직이 백화점 물품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광주시교육청은 그래도 좀 나은 게 비정규직 전담 부서를 두고 채용단위의 정수관리를 하고 있어 나쁜 일자리가 무한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공채 시험 제도를 통해 공무직(비정규직)을 뽑고 있기도 하고. 학교장이 마음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쓰고 자를 수 없다는 점에서 10년 전에 비해 큰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종별로 너무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교육청과의 교섭이 쉽지 않고, 결국 직종에 따라 싸움의 진전 속도가 달라지게 됐다.”

 광주의 경우, 노조 창립 이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교육감이 직고용하면서 고용불안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프로젝트 사업처럼 교육부 사업이 내려오면 어김없이 ‘저임금 시간제’ 혹은 ‘단시간 노동자’가 양산되는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마치 청소를 하듯이 연말만 되면 비정규직 해고 사태가 반복되고, 매년 교육청과의 임금교섭이 좌절돼 단식농성·삭발투쟁 소식으로 뉴스를 채우는 현실이다. 결국 노동조건 개선에서 한참 뒤쳐진 직종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직종별로 단위를 구성해서 단일화한 뒤에 교섭에 나서는 게 현실적인 답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장벽은 결국 비정규직을 ‘있어도 그만, 없으면 새로 채용하면 되는 직종’ 쯤으로 여기는 인식에 있다. 특히 사용자 측인 교육청이 성실교섭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매년 열리는 협상 테이블에서는 지난한 힘겨루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금, 공무원 봉급 최하위 80%로”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결국 공무원(정규직)이 해야 하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무사로 불리는 2유형 직종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다. 임용고시를 보지 않은 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무원 시험을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꼭 필요한 일을 상시적으로 하는데도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학비노조가 무엇보다 우선으로 외치고 있는 구호는 ‘임금수준을 공무원 봉급의 최하 수준에서 80%를 맞춰 주라’는 것과 ‘교육공무직이라는 직군을 법제화해달라’는 두 가지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교육부는 우리를 아직도 회계직으로 분류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어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말 바꾸기일 뿐이다. 우리 비정규직은 초중등교육법 어디에도 없는 유령 같은 존재다. 법으로 비정규직 신분을 ‘교육공무직’으로 보장해준다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임금체계나 근로조건을 맞출 근거가 될 것이다.”

 전국의 17개 시도교육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집단교섭이 도입된 지 3년째.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회 진행됐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다. 정부가 다시 각 교육청에게 폭탄 넘기기 하듯 책임을 미루는 탓에 결국 책임공방만 오가고 있다. 지난 7월3일부터 3일간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총파업이 일어난 이유도 교섭에 그 어떤 진전이 없어서였다.
한연임 지부장.|||||
 
▲“아이들을 위해 이런 일자리 스톱!”

 그런데 파업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총파업 이후 열린 교섭 역시 파행을 거듭하면서 전국학비노조는 오는 10월 2차 총파업을 예고하고 나섰다.

 “학교 청소 미화 노동자들은 제대로 쉴 공가조차 없어 열사병에 쉽게 노출되고 있고, 급식실 조리원은 산재비율이 가장 높은 직종이 됐다. 학교 야간당직 노동자들은 명절이 되도 학교에 감옥처럼 갇혀 지내야 하는 신세다. 우리도 매일 사랑스러운 학생들을 마주하며 학교 교직원으로 매일 출근을 한다. 마땅히 인간다운 대우를 받고 일하고 싶다. 그게 우리를 위해서도 당연한 권리지만, 아이들이 자라난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다. 언제 잘릴지 모를 ‘나쁜 일자리’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

 학비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6월13일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17명의 시도교육감중 10명이 학교비정규직 처우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워 교육감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1년이 흐른 현재 학교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한 공약을 이행하는 교육감이 단 1명도 없는 실정이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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