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소송 일본 측 시간 끌기로 지연 속 2차 소송 제기
“소송 못하는 피해자 많아, 조속히 근본 해결책 마련을”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민변 광주전남지부가 14일 오전 광주지방변호사회관에서 일제 강제동원 2차 집단소송 제기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광주·전남지역 피해자와 유족들의 소송이 확대되면서 근본적 해결책 마련을 위한 촉매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소송 대리를 맡은 변호사들과 지원단체는 소송 자체가 아닌 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는 피해 원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 것을 호소하며 한·일 양국이 서둘러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14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광주전남지부에 따르면, 광주·전남지역 일제 강제동원(노무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을 중심으로 진행한 집단소송 참여 원고는 1차(2019년 4월29일, 54명)와 2차(2020년 1월14일, 33명)를 더해 총 87명이다.

1차 땐 미쓰비시광업, 미쓰비시중공업 등 총 9개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됐고, 이번 2차 집단소송을 6개 기업을 상대로 한다. 1·2차 중복(2차 때 가와사키중공업, 훗카이도탄광기선 추가)을 제외하면 피고 기업은 총 11곳이다.

△미쓰비시광업 28명(1차 19명, 2차 9명) △미쓰비시중공업 16명(1차 12명, 2차 4명) △훗카이도탄광기선 15명(모두 2차) △미쓰이광산 10명(1차 7명, 2차 3명) △스미모토광업 5명(1차) △신일본제철 3명(1차) △니시마쓰건설 2명(1차 1명, 2차 1명) △일본광업 2명(1차) △후지코시강재 1명(1차) △히타치조선소 1명(1차) △가와사키중공업 1명(2차) 등이다.

지난 2018년 대법원 승소 판결 이후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은 배상판결 이행은 물론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배상판결을 이행하고 있지 않은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을 대상으로 원고들이 강제집행에 나서자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등 경제보복으로 맞섰다.

이번 집단소송은 강제동원 범죄 행위에 대한 가해 사실 인정과 진정한 사죄와 배상이라는 피해자들의 절규에도 아랑곳 않는 일본 정부와 기업, 문제 해결에 손놓고 있는 한국 정부를 동시 겨냥해 추진됐다.

대법원 승소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 모두 근본적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피해자와 유족들 입장에선 소송이라는 사실상 최후의 수단을 택한 셈이다.

87명의 원고가 참여하는 대규모 법적 투쟁이 현실화된 가운데, 소송 대리를 맡고 있는 이소아 변호사는 이날 광주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2차 집단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이번 소송은 각 개별 피고 기업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지만 저희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느 기업 하나에서 배상을 받아내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이 소송이 진행되는 것을 계기로 개별 기업이 개별 원고에 배상하는 방식이 아닌 여러 해결 방안들이 논의될 수 있도록 촉발시키는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에 시민모임과 민변 광주전남지부는 2차 소송 이후 3차, 4차 추가 소송 준비보다는 소송이 아닌 근본적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하고, 이에 대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지난해 소송 원고를 모집할 당시 무려 537건이 신청됐을 정도로 유족이 컸던 만큼, 향후에도 소송을 제기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남아있는 피해 생존자와 유족 모두 80~90대 고령인 점을 고려하면 소송을 통한 문제 해결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각 개별 기업들을 상대로 일일이 소를 제기하는 것도 상당히 버거운 게 사실이다.

실제 1차 집단소송은 소가 제기된지 1년이 지났지만 피고 기업들의 소극적 대응으로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일부 판결 선고기일이 잡힌 경우도 있지만, 관련 소장이 피고 기업들에 송달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류리 변호사는 “소송 관련 우편물을 보내면 일본 자체에서 송달이 되고 있지 않다보니 실질적인 재판 진행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이러다 선고 직전에서야 어떤 대응을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정희 변호사는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인 사건들도 일본 외무성에서 이유도 없이 서류를 반송하는 일이 있었다”며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밝혔다.

결국 일본 기업, 더 나아가 일본 정부 차원에서 재판 절차를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14일 광주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소아 변호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일제 강제동원 2차 집단소송과 관련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1차 집단 소송 원고 중 몇 안 되는 피해 생존자였던 이영숙 할머니는 지난 7월 세상을 떠났다.

소송에 참여하고 있지 못한 피해자들 억울함 역시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제 강제동원 국외 동원 피해자는 105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이중 노무현 정권 당시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지원위원회’에 신고해 피해자로 확인된 경우는 22만4835건이다. 이중 노무동원 피해자는 14만7893건으로, 피해자로 인정된 광주·전남 노무동원 피해자는 2만6540명에 불과하다.

피해를 겪었더라도 이때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거나 노무동원이 아닌 군인·군속 등 피해자는 재판을 통한 문제 해결마저 불가능한 처지다.

시민모임 이국언 대표는 “1·2차 집단소송을 계기로 나머지 피해자들은 도대체 왜 소송 기회가 있는데도 이것을 누리지 못하느냐 주목해서 봐주셔야 한다”며 “책임 당사자인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관련 자료 제공을 거부해 피해자이면서도 소송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소아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강한 요구가 있다면 추가 소송을 진행할 여지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이보다는 추가 소송 없이 이 문제가 해결되길 강력하게 촉구한다”며 “추가 소송을 통해 피해자들을 ‘괴롭게’ 하는 부분이 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민주주의 사회, 인권을 말하는 국가의 실력은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얼마나 잘 듣고 이를 반영한 결과를 만들어내느냐에서 드러난다”며 “피해자가 수십년간 이야기해도 들려지지 않던 구조에서 이제라도 조속히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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