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앉아있다고 공부하는 건 아니다
-공부 비법은 `기억 꺼내기, 연결짓기, 분산학습’

 중학생 재석이는 학원에 다닌다. 하루 4시간씩 5개과목 수업을 듣는 종합반이다. 재석이는 학원이 지루하다. 수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하지만 5분을 넘기지 못하고 딴 생각을 하게 된다. 재석이 부모는 성적 때문에 싸우는 일이 잦다. 재석이는 부모님 때문에라도 공부를 잘하고 싶지만 맘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집에 오면 모든 게 귀찮은데 엄마의 닦달에 맘 편히 쉬지도 못한다. 재석이 엄마는 재석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몹시 불안하다.

 고등학생 지현이는 하루 2시간씩 학원수업을 받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시작해 영재대비반도 들었다. 하루 5시간도 못자고 공부했는데 고등학교 첫 번째 시험에서 수학 30점을 받았다. 지현이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울먹인다. 지현이 엄마는 선행학습을 안 시킨 것보다 못한 성적이 나와 속상하다. 그런데도 달리 방법이 없어 지금까지 학원을 끊지 못하고 있다.

 

 광주학생들 사교육 수강률 73.6%

 

 2014년 광주 학생들의 사교육 수강률은 73.6%다. 10명중 7명이 넘는 학생이 사교육을 받는다. 2012년보다 6.2% 증가했다. 일주일 평균 10.8시간 사교육을 받고 한 달 평균 24만 원을 사교육비로 지출한다. 대부분의 사교육은 학원에서 이뤄지고 있었으며 수학, 영어, 국어 순으로 수강률이 높다. 학생들은 사교육을 받는 이유로 ‘부모님이 가라고 해서’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모른다는 것,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학부모들은 불안감, 성적 저하, 사교육비 부담, 과도한 의존을 문제로 생각했다. 교육전문가들은 한국의 사교육 열풍을 한마디로 압축한 단어가 ‘불안’이라고 말한다. 학원마케팅의 기본이 불안 조성과 겁주기, 부풀리기다. 옆집 애들은 다한다, 안하면 원하는 대학에 못간다, 레벨이 이렇게 낮은데 어떻게 할거냐 라는 말을 들으면 더 불안해진다. 아무리 주관이 뚜렷하고 교육철학이 단단한 학부모라도 학원에서 상담을 받는 순간, 머리로는 과장이겠거니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불안해한다. 그래서 한국의 학부모들은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자신의 주관과 교육철학을 바꾼다.

 

 “사교육 5년 효과 별무”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에서 만든 베스트셀러 책자 ‘아깝다 학원비’에서는 사교육으로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사교육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을 5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학원에서 쌓은 실력이 통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전보다 성적이 더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맞벌이가정에서 아이를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는 것은, 부모가 할 수 있는 선택 중 가장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라 말한다. 영어조기교육은 효과가 없으며 단기유학 후 학생들은 자신감이 떨어져 성적이 더 하락한다.

 지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과 ‘진짜로 아는 지식’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는 것에 대해 설명해보라면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로 안다는 것’은 자신이 아는지 모르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점검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는 걸 한번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는지 모르는지를 아는 능력, 그것이 ‘메타인지’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일수록 메타인지가 발달되어 있다. 아이큐는 성적의 20%를 예측할 수 있지만 메타인지는 성적의 40%를 예측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아이큐와 달리 메타인지는 훈련을 통해 충분히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학원에 앉아있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원에 앉아있어야 안심이 된다. 학원에 가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재학습하는 자기주도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공부’란 묻고 답하고 재구성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완전히 소화하는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며 머리를 쓰느라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험난한 과정이다. 혼자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오는 중단의 유혹과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그냥 학원 왔다갔다한 것 뿐

 

 이십년 전부터 공부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인지과학자들이 최근에 ‘궁극의 공부법’이란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궁극의 공부법에서는 공부를 잘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억꺼내기, 연결짓기, 분산학습’을 제시하였다. 이 세가지 방법은 메타인지를 향상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기억꺼내기는 한번 배운 것을 다시 꺼내서 자신이 아는 것을 확인하고 모르는 것을 재학습하는 과정이다. 연결짓기는 새로운 지식을 접했을 때 이전에 배웠던 지식들과 연결시켜서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과정이다. 독서를 많이 한 학생일수록 연결고리가 많아서 새로운 지식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과정이 쉽고 빠르다. 분산학습은 같은 시간을 공부하더라도 한꺼번에 몰아서 하지 않고 몇 차례 나눠 공부하고 쉬고를 반복하는 방법이다. 놀라운 것은, 한국의 최상위권 학생들이 이 세가지 방법을 오래전부터 스스로 깨우쳐 알고 있으며 이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걷는 시간, 쉬는 시간에 끊임없이 기억꺼내기를 해서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점검한다. 그들은 벼락치기 공부를 하지 않는다. 벼락치기로 얻은 지식은 장기기억으로 가지 않고 잊혀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부와 휴식을 반복하면서 기억꺼내기를 수행한다. 공부한 내용이 장기기억으로 갈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계속 생산하는 것이다.

 광주학생 중 성적이 높거나 매우 높은 학생들의 15.7%만이 사교육을 받고 있었으며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하루에 5시간 이상인 학생의 단 6.6%만이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스스로 가고 싶어서’ 사교육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본인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데 사교육을 활용한다는 말이다.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에서는 자녀가 희망하는 경우, 취약한 부분 중 한두 과목에 한정하여, 선행이 아닌 보충을 위해 한시적으로 학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권한다.

 재석이와 지현이는 지금까지 공부를 한 것이 아니다. 그냥 학원에 왔다갔다만 한 것이다. 재석이 엄마와 지현이 엄마는 아이들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와 능력을 빼앗아주는 대가로 학원에 많은 돈을 지불한 셈이 된다. 그리고 그보다 몇 천배나 귀한 가족간의 사랑과 행복도 함께 지불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엄청나게 아깝다. 학원비.

김옥희 <광주시교육청 광주교육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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