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야자 없는 수요일 오후, 마을이 학생들 보듬자

▲ 신가동 은행나무 축제를 고민하는 학생들. 수완고 강당에서의 워크숍 장면이다.

 폭염이 내리쬐는 오후의 수완고 강당. 에어컨과 선풍기를 아무리 틀어도 후텁지근한 기운이 가시질 않는다. 그 속으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백여 명이 강당을 가득 채웠다. 올 가을 신가마을에서 있을 은행나무축제의 청소년기획단으로 모인 학생들이다.

 “여러분 반가워요. 근처에 살면서도 신가마을에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죠? 신가마을은 가로수가 온통 은행나무에요. 수십 그루의 은행이 물들면 무척 예쁘죠. 하지만 주민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맞아요. 은행열매가 떨어지면 냄새가 심하잖아요. 은행잎이 바닥에 쌓이면 치우기도 귀찮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주민들이 귀찮아하는 은행나무를 축제의 소재로 삼아서 마을 이미지를 바꾸어보자고. 은행이 곱게 물드는 가을에 찻길을 막고 거리에서 마을축제를 벌일 거예요.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그 축제를 청소년에게 맡기기로 했어요. 2~3일 동안의 축제만이 아니라, 축제가 벌어지는 마을 곳곳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부터 청소년들이 함께 해 주면 좋겠어요. 낡은 담장에 페인트도 칠하고 가로수 아래에는 화단을 만들 거예요. 청소년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동아리를 만들어서 제안해 주세요. 마을 어르신을 찾아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만들어드릴 수도 있겠죠. 여러분이 동아리를 만들면 주민들이 도와줄 거예요. 다른 마을에서 하더라도 좋아요. 여러분이 틈틈이 만든 작품을 축제에 갖고 와서 전시를 하고 팔아도 돼요.”

 

사회 참여·직업 체험 활동 갈증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혼자서는 못 하던 일을 함께 해보면 좋겠다 하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학생도 있다. 학생들과는 세 번의 워크숍을 통해 동아리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첫 날인 오늘은 ‘내가 꿈꾸는 방과후활동’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날이다. 강당 바닥에 전지를 펴놓고 빙 둘러앉아 자기가 꿈꾸는 방과후활동을 적어낸다. 학생들의 생각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먹고 잠자고 놀기’ 무언가 의미있는 활동이 나오리라 예상했지만 기대가 무너졌다. 그래도 좋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사회로부터 요구받는 일이 많을수록 충분히 쉬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그러고 나면 친구와 어울리고 싶고 또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찾고 싶겠지.

 한 시간의 짧은 만남으로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기에 설문도 병행했다. 모인 학생들의 거의 대부분(80%)이 방과후에 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어려운 교과목을 혼자 공부하기 힘들어서다. 그렇다고 학원에만 다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방과후에도 단체활동이나 봉사활동을 했으며 그 활동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극소수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사회참여활동이나 직업체험활동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절감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학생들에게 그런 기회의 장이 열리지 않는 데 있다. 여가활동이나 진로탐색을 위한 시설이 충분하다고 답한 학생은 거의 없었다. 학생들은 무엇보다 문화예술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기를 바랐다. 모인 학생들의 절반이 바라는 일이다. 체육시설이나 동아리활동을 위한 카페도 늘어나기를 당연히 바란다.

 

학생들 삶의 의미 찾는 소중한 기회

 수요일 오후를 보충수업과 야간자습 없는 ‘광주교육공동체의 날’로 지정한 이후 학원만 좋은 일을 했다는 원성이 들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준비 없이 무턱대고 학생들을 집으로 보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것이 걱정된다면 지금부터라도 마을 곳곳에서 지혜와 힘을 모아 학생들을 보듬자. 자신의 삶이 의미 있다고 느낀다면 어느 누가 애써 시간을 허비하려 하겠는가. 사회참여활동은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하정호 <마당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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