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학생 ‘협약’…학부모도 ‘3자간담회’ 참여
‘음료수 자판기 설치’ 2차 회의까지 설전 벌여
“학생들 요구하고 설득, 주인 되는 과정”

▲ 산정중 학생회는 스스로 안건을 선정하고 교사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수업 종소리가 지겨워졌다면?’ ‘급식 먹는 순서에 따라 고기의 양이 달라진다면?’

 하루의 3분의1 이상을 학교에서 보내는 학생들에겐 소소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대부분 학교에 말해봤자 퇴짜 맞을게 당연해 입을 닫은 문제들이다.

 광주 산정중은 학생들의 발언권 보장을 위해 ‘학생회’라는 기둥을 큰 축으로 삼았다. 학교의 의사결정구조에서 소외되다시피 한 학생들이 주인의식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학생회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실제로, 산정중 학생회는 평범했던 수업 종소리를 국악 멜로디로 바꿨다. 1분20초의 긴 국악곡이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데 적합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선택한 종소리다.

 이밖에도 ‘학년별 급식 순서 조정’, ‘각 반에 거울 설치’, ‘점심시간 케이팝 음악 방송’ 등 학생들의 바람이 학교 곳곳에서 실현됐다. 현안으로 채택되면 의결 과정을 통해 확실한 결과물로 이어지는 구조인 것이다.

 산정중은 2014년 빛고을혁신학교로 지정된 이듬해부터 ‘학생자치’에 주안점을 두고 민주적 소통구조를 정착시켜왔다. 교사·학생 간 요구 협약, 교사·학생·학부모 3자간담회 등이 대표적인데, 다자간 협상 테이블에서 학생을 동등한 위치에 배치시키는 게 핵심이다.

 

 학생 대표 4명-교직원 4명 협상

 

 지난 14일 꿈끼주간을 맞아 들썩이는 산정중 분위기와 달리 학생회실에선 교사·학생 협약을 위한 2차 회의가 열렸다. 학생 대표 4명과 교감·교무부장·학생부장 등 교직원 4명이 양측으로 나뉘어 협상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았다. 마치 회사에서 노사협상이 진행되는 것처럼 서로에게 존대를 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지난 1차 회의에서 나온 10가지 안건 가운데, 합의를 이루지 못한 안건 세 가지를 추가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산정중의 협약은 교사 측에서 제안한 요구안 10가지와 학생 측 요구안 10가지가 제시되고 안건 당 협의를 거쳐 합의점을 이룬다. 한 번의 회의로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서로가 수긍할 수 있는 지점까지 회의는 계속된다.

 특이한 점은 교사들의 요구안이 작년과 다름없이 ‘규칙 준수’에 한정된 반면, 학생들의 요구는 나날이 다양해지고 구체적이 되고 있다.

 이날 회의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 간 첨예하게 대립했던 안건은 ‘교내 유제품 자판기 설치’였다. 1차 회의에서 학생들은 ‘탄산음료 자판기 설치’를 제안했었지만, 교사 측이 ‘건강’ 상의 이유로 반대하자 ‘유제품’으로 바꿔 다시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도 해당 안건은 통과되지 못했다. 교사 측은 자판기 설치로 발생할 수 있는 ‘쓰레기’를 문제 삼았고 학생 측은 ‘쓰레기통 설치’를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설득엔 실패했다. 안건은 3차 회의로 넘어가게 됐다. 모든 안건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공식적으로 협약식을 갖는다.

 한 학기에 한 번씩 개최되는 3자 간담회 역시 학생 250명, 교사 20명, 학부모 30명이 참여해 현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1학기 중 열린 3자 간담회에서 학부모들은 공예 동아리 추가를 요구했고, 학교 측은 학부모 측에 자유학기제 등 교육과정에 재능기부로 참여해줄 것을 요구해 합의가 이뤄졌다.

 

 “학생들을 주인으로 대접하기”

 

 산정중이 학생자치를 생활교육 혁신의 제1순위로 꼽은 것은 공모교장으로 학교에 발을 디딘 이성철 산정중 교장의 결단이 있었다. 이 교장은 “예민하고 간섭받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교사가 지시하고 교육하는데 한계가 있어 보였다”며 “학생들을 주인으로 대접하고 스스로 경계세우기를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 준 것이 학생자치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박항숙 산정중 교감도 “학생들이 원하는 게 많지만, 학교가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소통을 막는 장애물이었다”며 “학생이 제기하는 작은 민원이라도 우선 교사들이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만족감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산정중은 매년 12월 경 다음해 학생회를 선발하는데, 성적이나 수상경력은 자격요건이 아니지만 사회봉사처벌 유무 등은 검증 대상에 포함된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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