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생되는 날, 학교는 생기 충전”
월곡중 ‘전문적 학습공동체의날’ 참여기

▲ 지난 1일 광주 월곡중에서 진행된 학습 공동체의 날.
 학교는 참 많이 바뀌었고, 또 동시에 변하지 않았다. ‘획일성’을 강요하는 교육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입시경쟁, 학력중심이라는 견고한 벽은 제 자리이기 때문이다. 아직 해소되지 않은 모순 속에서 학교는 참 더디고, 지난한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그 변화를 증명해낼 리트머스 시험지가 혁신학교다. 도입 9년째를 맞이한 ‘빛고을혁신학교’는 견고한 벽을 깨부수진 못했을지라도 작지만 유의미한 균열을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아직까지도 시민적 지지와 공감을 얻지 못하고 현실과 괴리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가운데 본보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40여 곳의 광주지역 혁신교육 현장을 들여다봤다. 변화를 주도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힘겨운 진통을 겪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학교도 많았다.
 올해 시작되는 시즌Ⅲ에서도 서부 10곳, 동부 10곳의 혁신교육 현장을 찾아 사례 중심으로 취재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교육청, 학교와 사전협의를 거쳐 가장 두드러진 변화상 중 한 장면을 포착해 지면에 중계할 계획이다. 생생한 교육현장으로의 초대에 독자분들도 함께 동행해주시기 바란다. <편집자주>
---------------------------------------------------------------

 광주 월곡중에선 수요일 6~7교시 수업이 없다. 대신, 학생들이 하교한 뒤 교사들만의 수업이 시작된다. 이름하여 ‘학습공동체의 날’이다. 교사도 학생처럼 배우고 협력할 때 공동체라는 물살을 타고 성장의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값진 하루다.

 무엇보다 월곡중 전문적 학습공동체는 교사가 망망대해에 떠 있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언제든 교사 간, 수업 간에 다리를 놓고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되고 있어 의미가 깊다. 그래서 교사들은 학습공동체의 날을 의무나 부담으로 짊어지기 보다는 고민을 털어내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힐링캠프로 여기는 분위기다.

 지난 1일 수요일 5교시 수업을 마친 월곡중 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학습공동체의 날은 모든 학년 교사들이 참석하는 ‘학년 교육과정협의회’로 꾸려졌다. 학년 초 계획했던 학년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앞으로 진행할 프로젝트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다.

 월곡중은 전 학년 프로젝트를 일 년에 4차례 정도 점검하고 있다. 학년별, 과목별 교사들 모임은 수시로 갖고 있는데, 전체 교사가 모여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점검하는 협의회는 분기별 이뤄진다.

 이날 교사들은 학년 별로 마련된 세 개의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별도의 토론 형식이 있는 것 아니지만, 테이블마다 전지 크기의 활동지가 준비됐다. 교사들은 프로젝트 주제가 적힌 활동지를 둘러싸고 익숙한 듯 열띤 논의를 시작했다. 토론 진행은 각 학년 부장이 맡았다.
 
▲매주 수 6~7교시, 교사만의 배움 터전
 
 “우리 학년은 ‘나의 몸과 마음 알기’를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습니다. 먼저 과목별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야기 나눠볼까요?”
지난 3월 열린 수업연구회 수업친구 장면.

 1학년 테이블에선 핵심질문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라는 주제를 다뤘다. 학기 초인 3월부터 교과목별로 주제와 관련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과목별로 공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진지하면서도 시종일관 편안하고 여유 있는 분위기 속에서 토론이 무르익었다.

 체육교사는 체력평가 기준표(PAPS)에 따라 학생들이 자신의 체지방·근력·유연성 등을 체크하고 개인기록지에 작성하는 수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도덕교사는 16개의 가치를 나열해보고 하나씩 추려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찾아보는 수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회교사는 ‘나’에 대한 마인드맵 그리기를, 진로교사는 심리검사(mbti)를 통해 16가지 유형 가운데 해당되는 자신의 성격 유형 파악하기 활동을 진행했다고 공유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도중 교사들은 다른 교과목 프로젝트 진행 상황에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한 교사는 진로교과의 심리검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아쉬운 점은 없는지 질문했다. 이어진 진로교사의 대답에서 개선점이 시사됐다. 이로써 다른 교사들은 심리검사를 교과목에 적용하고자 할 때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학년 테이블에 동석한 월곡중 김혜주 교장이 교사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경청하고 있었다. 김 교장 역시 1학년 과학교과 생물 수업을 맡는 교사로서 격의 없이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공유했다. 김 교장은 2년 전 교장공모제로 월곡중에 부임한 이후 수업혁신의 일원으로서 수업공개, 협의회 등에 교사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토론의 결과는 다른 학년 교사들에게도 공유됐다. ‘전문적 학습공동체’라는 교사 공동체의 결과물 중 하나가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학년별 발표시간에서도 교사들은 테이블 토론만큼이나 집중해서 다른 학년의 발표에 귀 기울였다.

 2학년은 ‘함께 하는 여행’이라는 큰 주제에 따라 ‘우리는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가’를 핵심질문으로 삼았다. 주제에 맞게 ‘경청과 배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3학년은 주제 ‘세상으로의 여행’에 맞춰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화두로 던졌다. 프로젝트 명은 ‘힘과 정의 프로젝트’다.
 
▲“부담 덜고 함께 성장” 목표 수업혁신
 
 각 학년별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평행선이 아니라 하나의 종착역을 향하고 있었다. ‘나를 찾고(1학년), 함께 하는 법을 익혀(2학년) 세상으로 나아가자(3학년)’라는 단계별 목표점을 지나면, 월곡중 통합교과 프로젝트 ‘삶으로의 여행’이라는 최종 목표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교사들이 함께 모이면, 큰 시너지를 얻는 것 같아요. 오히려 다른 교과, 다른 학년에서 창의적인 접근법이 제시되기도 하고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협의회 문화는 혁신의 기본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진행된 수업 공개 장면.

 월곡중 양승현 혁신부장은 학습공동체가 구축됨으로써 수업혁신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월곡중의 수업연구회인 ‘수업친구’는 22명의 교사가 회원으로 참여, 한 달 2회의 모임을 통해 수업을 공동 디자인하는데 핵심 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년부터 시작된 수업친구는 올해 학교생활과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학생 입장에서 수업을 디자인해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점차 자리잡고 있는 수업연구 동아리는 학습공동체의 기틀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고, 결국 모든 교사들의 수업에도 파급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한편으론 수업시수를 주 1~2시간 줄이면서 교사들 학습공동체의 날을 운영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수요일 6~7교시 수업을 관행적으로 유지하는 학교가 많은 이유다. 월곡중은 과감하게 최소한의 수업시수를 확보하는 선에서 시간표 배치를 촘촘하게 짜낸 덕분에 학습공동체를 무리 없이 안착시켰다. 이 과정에서 교장과 교감, 교무부장 등 관리자들의 의지와 시간표 조정을 위한 충분한 토론과 협의가 선행됐다.
 
▲“교사들이 원하는 학습기회 지원”
 
 또한 교사들의 배움이 학생들의 교육권에 지장을 주는 게 아니라는 점을 학부모들에게 설득시키는 과정도 중요했다. 월곡중은 학부모 밴드(sns)를 활용해 교사 학습공동체 과정과 결과물을 학부모들과 공유하고, 교사들의 배움이 수업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에 대한 공감대를 높이고 있다.

 월곡중 김혜주 교장은 “교사들이 과거처럼 지식만을 전달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배움 중심으로 변화된 수업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며 “수업을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가 교사들이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고 밝혔다.

 월곡중 노선희 교감은 “교육청이 지원하는 연수도 있지만, 월곡중에 맞고 교사들이 원하는 학습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지원하고 있다”면서 “올해는 수업디자인 부분을 활성화 하고 많은 교사들이 수업나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수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1994년 1월 설립된 광주 월곡중(광산구 월곡산정로 95)은 2013년 12월 혁신학교로 선정된 이래 ‘함께 성장하는 월곡중 전문적 학습공동체’라는 목표로 혁신을 추진 중이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