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삽겹살 피서’…상상이 현실로
1~3학년 야영 학생이 직접 기획·참여

▲ 지난 6월 ‘학년 야영’에 참여한 일곡중 3학년 학생들의 저녁식사 시간.
 한 손에는 삼겹살 5인분, 다른 한 손에는 돗자리까지 양 손 무거운 학생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학교였다. 방과 후 다시 학교로 발걸음을 돌린 학생들은 손꼽아 기다려온 야영 준비를 서둘렀다. 준비부터 프로그램 진행까지 직접 기획하고 참여한 야영이어서 한껏 기대감을 높였다.

 무더위가 성큼 다가선 6월 한 복판, 광주 일곡중학교(광주 북구 설죽로 570)에선 학교로 피서를 온 학생들로 왁자지껄했다. 학년 야영 프로그램의 일환인 2학년 학생들의 ‘대동놀이’가 펼쳐지기 직전이었다. 오후 2시30분에 맞춰 학생들은 평소보다 편한 복장으로 학교를 누비며 삼삼오오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야영에 앞서 안전교육을 받기 위해서다.

 3학년 학생들이 직접 2학년 학생들의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단체가 참여하는 활동인데다 음식을 직접 해먹고 몸을 움직이는 게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위해 필수로 거쳐야 할 단계였다.

 2학년 학생들은 전체인원 171명 중 163명이 야영에 참여했다. 개인적인 이유로 빠지게 된 8명의 학생들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학생들이 참여한 것이다. 이렇듯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일곡중의 ‘학년 야영’ 프로그램은 매번 인기가 좋다.

 항상 교사의 지시와 학교의 방침에 따라야 하는 학교지만, 이날만큼은 학생들이 주인이 돼서 상상하던 일들을 실현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원이나 다른 일과를 제쳐두고 이날 하루의 일탈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자율적 공간 활용 사례…배움에도 적용
 
 안전교육에 이어진 전교생 OX 퀴즈 시간. 2학년 학생회의 진행으로 학생들이 질문을 내고 학생들이 맞히는 게임이었다. 강당 무대 위 스크린에 ‘A선생님과 B선생님이 손뼉 밀치기 게임을 하면 누가 이길까’라는 질문이 뜨자 A선생님을 택한 학생들은 O로, B선생님을 택한 학생들은 X로 갈라섰다.

 정답 확인을 위해 즉흥적으로 A선생님과 B선생님이 무대 위에서 손뼉 밀치기 게임이 벌어졌다. 일제히 학생들의 시선이 승부 겨루기에 쏠렸다. 이긴 쪽의 환호와 함께 진 쪽의 학생들은 탈락의 고배를 맛보게 됐다.
2학년 ‘학년야영’ 프로그램의 일환인 ‘OX퀴즈’에서 선생님들간 즉흥 게임이 벌어졌

 이날은 아쉽게도 장대비가 쏟아져 야외에서 예정된 프로그램들을 모두 실내로 가져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연신 싱글벙글 즐거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다음 순서인 저녁 식사 시간은 학생들이 가장 고대하던 프로그램이었다. 부탄가스, 각종 식기구와 먹을거리들을 양 손 가득 가져온 수고가 빛을 발할 시간인 것이다.

 학생들은 조별로 모여 챙겨온 식사 준비물을 꺼냈다. 망설임 없이 재료를 손질하고, 뚝딱 뚝딱 요리를 시작했다. 많은 조에서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일곡중 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인 듯 했다. 이밖에도 닭발을 굽고 치즈를 녹여 곁들이는 조, 벌써 후식으로 라면을 끓이는 조까지 취향에 따라 다양했다.

 한 학생은 “이렇게 학교에서 친구들과 먹고 싶었던 음식을 직접 해먹으니까 꿀맛”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학교와 선생님, 부모님은 항상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게 많은데, 오늘 만큼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기분이 든다”며 통쾌한 심경을 밝힌 학생도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음식을 접시에 덜어 지켜보던 선생님들에게 나누기도 했다.

 일곡중 2학년 학생회장 염유빈 학생은 “야영 프로그램은 모든 게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해 만들어 온 것”이라면서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도 있었지만, 이렇게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자리인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급별 회의 프로그램 토론 거쳐
 
 일곡중에선 이번 야영을 준비하기 위해 학급별 회의를 거쳐 원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후 학생회를 중심으로 2차 회의를 진행했고, 가장 다수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위주로 행사의 틀을 짤 수 있었다. 학년 야영은 지난 1월 학생회가 참여한 간부수련회에서 의결된 사항으로 연초에 계획된 프로그램이다.

 이날 2학년 야영은 저녁식사 이후 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게임 활동과 장기자랑 등 프로그램을 이어갔고, 학교에서 숙박은 하지 않고 해산했다.

 일곡중 김방희 자치복지부장은 “학년 야영이 몇몇 선생님의 기획으로 시작해서 학교의 정례 행사처럼 자리 잡고 있다”며 “학교에서 잠을 자고, 밥을 해먹으며 학생들 간에 유대감을 형성하는 프로그램으로서 효과를 톡톡히 경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선 교사들이 학생들의 자율적인 야영 활동에 동의하고 지원하는 역할로서의 합의가 중요했다.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학생회장이 공약사항으로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교사들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야영과 같은 큰 행사를 치르기는 어렵습니다. 다행이도 교사 분들이 야영활동에 대한 교육적 목적의 부합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한 지원 사격에 나서 주셔서 올해도 진행할 수 있게 됐어요.”
식사하는 학생들.

 학년 야영이 학교 공식 행사로 안착한 것은 아니지만, 약속한 듯 매해 치러질 수 있었던 것은 야영 활동을 통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에 공감해서다.

 “학교라는 공간은 교사, 교직원, 학생, 학부모 등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교사들의 주도적인 계획에 따라 공간이 활용되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적어도 학생들이 기획하는 프로그램만큼은 학생들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어 줄 필요가 있었어요. 무조건 ‘안 된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되게 할까’를 고민하는 건 민주시민으로 중요한 교육적 덕목이기도 하고요.”

 학생들에게 ‘주인의식’을 일깨워주자는 학교의 의지와 결단에도 불구하고,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는 떨칠 수 없는 과제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 경험 잊지 않길”
 
 “안전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음식을 하며 불을 다룰 때는 특히 그렇고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총 출동해서 눈을 떼지 않고 필요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있어요. 행사를 치른 뒤에는 반드시 반성회를 거쳐서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요. 그리고 사전에 안전교육은 필수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년 야영은 한 번의 행사로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다른 활동에서도 주체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고 있다.

 일곡중 설성민 혁신부장은 “단 한 명의 학생도 교육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학생자치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면서 “학생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학교의 모든 행사에 참여하고 기획 단계부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유기적인 구조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곡중은 3월 입학식부터 학생회 주도로 행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체육대회에서 체험부스를 운영하거나 4·16, 5·18 주간을 맞이해서 추모행사를 여는 등 학생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확보하고 있다.

 한편 일곡중은 2015년 빛고을 혁신학교에 지정된 이후 혁신학교 2기(5년차)에 접어들었다. ‘열정적이고 당당한 일곡인’을 학교 교육목표로 삼고, 학생자치와 수업혁신을 중점 과제로 혁신의 마중물을 붓는 중이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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