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내내 학교 갇혀 서글픈 명절 나기

▲ 전국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 광주지부 당직 노동자들이 지난 2017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 10박11일이라는 장기 휴일 연속 근무를 우려해 광주시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연휴 기간에 학교 당직 노동자에게 최소 3일의 특별(유급)휴가를 실시하라”고 촉구하는 모습. <광주드림 자료사진>
 지난달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쉬던 중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최고 기온이 34.6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의 날씨였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쉴 공간은 한 평 남짓에 불과했다. 냉방은커녕 환기도 전혀 되지 않는 생지옥이었다.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보며 많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숨죽여 울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휴게실은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발 뻗고 쉴 공간조차 없는 학교가 태반이고, 언제 쓰고 버려질지 모를 고용불안과 최저임금도 못 미치는 시급까지…. 여러 악조건 속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도 함께 유폐됐다.

 지난 7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3일 간의 총파업을 벌였다. 정규직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신분보장을 약속받기 위해서다. 학생과 학부모, 국민들의 지지로 이번 파업은 큰 동력을 얻었다. 그러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는 아직까지도 침묵으로 일관 중이다. 학비노조는 10월 중 2차 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광주지역 학교비정규직노조 역시 그 투쟁의 선봉에 서 있다. 광주 학비노조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라’는 끝나지 않는 싸움을 이어온지도 벌써 10년째다. 그동안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학교는 ‘비정규직 백화점’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교묘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노동착취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광주지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5000여 명에 달하며, 비정규직 직종만 50여종이 넘는다. 이에 본보는 ‘하루살이 목숨’이라 불리는 특수직군, 편법계약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계약직(강사직군), 산재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급식노동자와 같은 공무직 등 학교 비정규직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직군별 대표 직종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이어갈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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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명절이 반갑지 않아요. 애들이 집에 와도 보러 갈 수 없으니까. 서로가 안타까운 상황이지 뭐. 혼자 당직실에서 차려 먹어도 밥숟갈이 잘 안 넘어가대요.”

가족,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추석 명절. 학교에서 야간당직을 서는 A씨는 올해도 손주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명절을 쇨까봐 마음이 심란하다. 식사라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명절 내내 학교에 갇혀 있어서 그마저도 쉽지 않을 듯하다.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이하 당직 노동자)들은 휴일 내내 학교를 벗어날 수 없는 까닭에 추석이나 설날과 같이 공휴일이 계속되는 경우엔 몇 박 며칠을 학교에서 살다시피 한다.

주말까지 겹치면 4~5일 이상 연속근무를 하게 되니 감옥이 따로 없다. 휴일이 길었던 2년 전 추석 땐, 대체휴무를 포함해 최대 ‘10박11일 연속근무’라는 최장 기록을 세웠다.

▲24시간 근무에 6시간 근무 ‘변칙계약’

광주지역 학교비정규직노조(이하 학비노조) 정정만 당직 분과장은 “당직 노동자들에게 명절은 더 고독하고 버티기 힘든 시간”이라며 “평소에도 부당한 노동조건 아래서 노예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명절에는 우리 신세가 더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학비노조에 따르면, 광주지역 국공립학교 240여개에선 대부분 ‘당직’이라 불리는 1인 노동자가 경비 업무를 맡고 있다. 휴일 동안 대체인력이나 교대인력을 투입하는 학교는 거의 전무한 실정.

2015년 광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7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근무하던 학교 당직기사가 쓰러져 끝내 사망한 이후 학교 당직자의 연휴기간 연속근무를 개선하라는 요구를 담은 플래카드가 광주시교육청 앞에 걸린 모습. <광주드림 자료사진>

이런 상황에서도 당직 노동자들은 주휴수당과 연장·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조차 받지 못한다. 평상시 매주 찾아오는 주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정 분과장은 “작년에 당직도 미화원과 함께 교육공무직 전환 대상에 포함돼 이뤄져 교육감 직고용으로 바뀌었지만, 부당한 처우와 저임금은 그대로”라며 “‘감단법’이라는 악법이 사라지지 않아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학교 당직 노동자들은 대표적인 ‘감시·단속적 근로자’다. 근로기준법 제63조 제3항에 따라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 근로시간, 휴게 및 휴일 등 근로기준법 일부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를 ‘감시적 단속적 근로법(감단법)’이라고 부른다. 학교 당직을 비롯해 아파트 경비원, 수위 또는 임원 수행기사 등 ‘감단직’이라는 족쇄로 묶여 노동법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이유다.

특히 ‘쪼개기 계약’ 때문에 근무 여건은 더 열악해졌다.

B씨의 경우 주말이나 공휴일 24시간을 근무해도 근무시간 중간마다 휴게시간을 1∼2시간씩 끼워 넣는 방식의 변칙적 근로계약 탓에 6~7시간만 근로시간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에게 연속 11시간 이상의 휴식시간을 줘야 한다.

평일엔 오후 4시30분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10시에 퇴근해 실질적으로 학교에 있는 시간은 17시간30분. 하지만 B씨의 학교는 근무시간인 오후 ‘10시 퇴근 후 오전 7시까지 출근’이라는 명목상의 편법을 강요하고 있다.

정 분과장은 “B씨뿐 아니라 대부분의 당직 노동자들은 늦은 밤 퇴근해 다시 아침 출근, 그날 퇴근 후 몇 시간 뒤 출근하는 게 불가능해 보통 학교에서 잠을 자고 있다”며 “외부출입자 통제, 숙직 등 밤늦게 학교에 비상 상황을 감시하고 단속하는 게 우리 일이다 보니 자면서도 틈틈이 일을 하고 있는데도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광주지역 학교비정규직노조 정정만 당직 분과장이 최근 근무 중 머리에 부상을 입는 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다.

2013년 국민권익위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당직 노동자들은 평일에는 16시간, 토·일요일 및 공휴일에는 24시간을 근무하고,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6800시간에 이른다. 1년 중 유급휴일을 인정받는 날은 ‘노동자의 날’ 단 하루다.

▲“‘감시 단속적 근로자’법 족쇄 철폐돼야”

실질적인 근무시간 제약이 없다보니 2015년도에는 광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73시간 연속 근무 중이던 당직 노동자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당직 노동자가 계약서 상 근무시간이 아닌 시간에 다치거나 숨져도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정 분과장은 “어떤 학교는 당직 노동자에게 휴게시간 중 다쳐도 산재처리를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도록 했다”며 “안 그래도 휴식시간이 짧아 밖에서 바람도 쐬고 친구도 만날 시간이 안 되는 마당에 혹시라도 다칠까봐 온전히 당직실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당직 노동자들이 대부분 고령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근로환경 및 처우개선은 시급하다.

광주지역 당직 노동자 240명 가운데 65세 이상 72세 미만이 70%를 차지할 만큼 연령대가 높다. 65세 미만은 36명에 불과한 상황.

이들은 거의 모든 근무시간과 휴게시간 동안 몸만 간신히 눕힐 수 있는 당직실에서 보낸다. 보통 당직실은 한 평 반 정도의 크기에 cctv 송출 스크린, 무인경비 시스템, 소방기기 등이 들어차 있다.

정 분과장은 “명절, 휴일에도 쉬지 않고 당직 근무를 서는 건 둘째치더라도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최소한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너무나도 비참하다. 학교가 감옥이 아닐 수 있게 정부와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실태조사와 더불어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노동자를 법 사각지대로 몰아넣는 ‘감시적 단속적 근로법(감단법)’ 폐지가 시급하다는 말을 힘주어 강조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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