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아끼지 마라” 40년 고집
보기 좋고 맛도 좋고

 기업 설립은 창업자의 몫이지만 세대(30년)를 넘어 장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느냐는 후계자의 능력일 게다. 대개 가업 형태로 이뤄지는 창업의 경우 후계자는 자식이 될 확률이 높은데, 결국 ‘2세’의 역량에 기업의 영속성이 좌우되는 형편이다.

 1965년 창업, 올해로 45년째인 ‘창억떡’은 역량 있는 후계자를 뒀다. 부모님 세대, 그저 동네에서 알아주는 떡집에 불과했던 가업을 전국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아들, 임철한(39) 사장이다.

 ‘청출어람’이 손색없는 광주 기업,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떡 전문점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1965년 동명동서 창업

 맛과 품질에 대한 부모님의 노고와 열성이 기업의 터전이 됐음은 물론이다.

 창억떡은 1965년 광주 동구 동명동에서 문을 열었다. 어머니의 손맛이 자산이었다. ‘창억’이란 상호는 아버지 임성근 씨의 호에서 따왔다.

 전통식품인 떡을 만드는 데 특별한 기술이 있겠는가? 창억이 소문난 떡집이 된 비결은 쌀·고물 등 좋은 재료에 있었다. “재료 아끼지 마라.” “좋은 것만 써라.” “사람이 먹을 것이니 절대로 정성을 다하라.” 당시 어머님이 되뇌던 철칙이었다.

 “재료를 아끼거나 덜 쓰면 엄청나게 혼이 났죠.” 김승열 본부장의 전언이다. 아들 철한 씨는 이런 부모님 밑에서 일을 배웠다. 정성과 기술을 자연스럽게 체득했음이다.

 그러나 부모님 세대 당시 떡은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 등 특별한 경우에만 소비 되는 음식이었으니, 판로에 있어 한계가 분명했다. 그러던 차 2000년 무렵 참살이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떡 산업계에 찾아온 기회였다.

 임철한 사장의 경영 수완은 이때부터 발휘되기 시작됐다. “1999년 대전에 직영점을 냈거든요. 창억이란 이름으로 외지에 진출한 최초의 사례였죠.” 김 본부장은 “대전지점은 창억이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여세를 몰아 2005년, (주)라이스 파이닷컴이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프랜차이즈(가맹점) 사업을 본격화 했다.

 2008년엔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탄생했다. ‘예다손’이다. ‘예를 다해 떡을 빚는 손길’이란 의미다.

 

 예다손 전국 24개 점포 문열어

 창억떡은 경북·부산·대전·전주 등 전국에 24개의 ‘예다손’을 오픈했다. 연간 매출액 70억 원대의 중견기업 반열에 오른 것이다.

 “사업성은 밝다”는 게 김 본부장의 전망이다. 떡산업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음이다. 김 본부장은 “예전에 제과점이 독점하고 있던 선물, 케익, 크리스마스 시장이 떡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학교는 물론 군부대에도 납품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사업성이 밝다 보니 수많은 업체가 떡 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 우후죽순이다. 방앗간 개념까지 포함하면 광주에서만 500여 곳이 넘는단다. 최근엔 대기업들까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렇듯 시장은 갈수록 치열해지지만 선도기업 창억은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 원천은 재료와 시스템.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는’ 창업 정신을 아들 철한 씨가 굳건하게 고수하고 있는 것.

 “제일 중요한 재료인 쌀은 국산 간척지 쌀을 쓰구요. 사장님이 직접 품질을 체크하는데 몇 십년 거래했더라도 기준 이하가 납품되면 곧바로 업체를 바꿀 정도로 엄하시죠.” 김 본부장은 “팥은 씨알이 굵은 것으로 직수입하고, 쑥은 봄철 남해안 섬에서 채취해 필요량을 확보한다”면서 “첨가제는 절대 색소를 쓰지 않고 천연재료를 고집하니 떡이 그리 화려하진 않다”고 말했다.

 시스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떡은 김이 모락모락 할 때 제일 맛있는 법. ‘만든 후 4시간 이내 주문자 전달’을 실현시켰다. 1일 2회 생산, 4번 배송 시스템이 구축된 덕이다.

 

 만든 후 4시간 내 주문자 배달

 2008년 새로 이전한 중흥동 사옥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아지트다. 1층은 매장, 그리고 2층에서 5층까지는 떡 공장이다. “떡집에 공무팀이 있는 곳 보셨어요? 우리 회사엔 전기·전자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떡은 사람들의 수고와 정성으로 만들어지지만, 창억은 여기에 기계적인 시스템을 보태고 있다. 사람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맛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선 꼭 필요한 기계나 장치들이 있거든요. 일반 공장에선 만들 수 없어요. 우리가 직접 제작하는거죠.”

 실제 창억은 수입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시설·디자인 등 분야에 집행하고 있다. 하여 개발된 상품만 100여 종.

 시루 형태 포장으로 집에서 찌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상품도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이런 모든 시설이 집적돼 있는 곳이 중흥동 사옥의 2~5층. 기업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어서 함부로 공개할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국에서 창억떡의 성공사례를 배우고자 하는 견학 요청이 끊이지 않는 실정. 김 본부장은 “가능한 곳은 최대한 공개하고 노하우를 알릴 생각”이라면서 “현재 이를 위해 공장 구조를 개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사진 제공=예다손 창억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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