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아이’ 임길택 글, 김동성 그림 / 길벗어린이

아주 가끔, 내가 먼저 집에 도착하는 날이면 버스정류장으로 아이 마중을 나간다. 도심에서 벗어난 버스 종점의 오후 풍경은 외로워서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쓸쓸하다.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고 빈 거리에 혼자 오도카니 서 있는 게 심심해지면 들꽃을 꺾어 아이에게 줄 꽃다발을 만든다. 짜잔 하고 꽃을 내밀 때 놀라면서 활짝 웃을 아이를 상상하면서.

꽃묶음을 만들다보니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 되는 것만 같다. 아득하게 잊혀졌던 학창시절, 아침 일찍 교무실에 숨어들어가 좋아하는 선생님 책상에 꽃을 꽂아두고 나오던 일도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른다.

탄광촌과 산골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시와 동화를 썼던 임길택 선생의 단편 `들꽃 아이’가 그림작가 김동성의 그림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라고 했던 임길택 선생의 글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을 울린다. 그러니 이야기에 달리 그 무엇이 필요하랴. 글의 완결구조 때문에 만만치 않았을 그림작업이 아아, 이토록 사무치는 아름다움을 안겨줄 줄이야. 그림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마음이 말갛게 씻겨지는 기분이다.

도회지에서만 살아오던 김 선생님은 면 소재지의 열두 학급짜리 아담한 학교로 첫 발령을 받아 온다. 6학년 여자반을 맡아 바짝 긴장한 김 선생님의 책상에 꽃병 가득 진달래가 꽂혀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보선이는 등굣길에 꽃을 꺾어와 선생님 책상에 놓는다. 선생님은 차츰 우리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

어느 날, 선생님은 장 심부름을 다녀오느라 5교시 수업에 늦은 보선이를 혼내게 되고, 이때 보선이가 손전등을 들고 학교에 다녀야 할 만큼 멀리에 사는 것을 알고 놀란다. 선생님은 보선이네 집을 찾아가기로 하는데, 숲길을 헤매며 “보선이가 이토록 먼 길을 다니고 있었구나”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선생님이 엎치락뒤치락 지름길로 내달아 보선이네 집에 다다랐을 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었는데, 30년 전 학교가 생긴 이래 마을을 찾아 준 이로는 김 선생님이 처음이었단다.

산마을에 눈이 하염없이 내리자 보선이는 끝내 졸업식 날 학교에 오지 못한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군대에 가게 된 김 선생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선이를 떠올린다. 늦가을 보선이가 꺾어왔던 노박덩굴은 그때의 노란 빛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선생님 책상에 걸려있다.

들꽃 아이 보선이와 아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김 선생님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감동의 원천이라면 작은 시골학교의 정경과 푸른 숲의 기운들, 보선이의 환한 웃음과 철철이 고운 들꽃 그림이 미적인 감수성을 한껏 높여준다. 다만 지금 아이들이 보선이가 걸었던 길을 잃어버렸다는 게 안타까운 여운을 남긴다. 아름다움의 저편에 들꽃아이가 꿈결처럼 웃고 있다.

정봉남 <`냉이꽃 피는 글방’ (cafe.daum.net/4ugulbang)운영·아이숲어린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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