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경계도시2’를 보고] 릴레이 기고 <2>

 2월이 끝날 쯤 영화 개봉에 앞서 ‘경계도시1·2’ 상영이 있다하여 서울에 갔었다. 영화를 보고 당일 밤차로 다시 내려올 계획이었으나 영화를 본 후, 막차 시간이 다 돼가도 내려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전 내가 아는 송두율 교수에 관한 것은 단편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재독철학자였고 37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였다가 거물간첩으로 체포되었다는 것.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초췌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 있던 그의 모습이 내 머리에 저장되어 있던 마지막 이미지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뒤의 대법원 무죄판결.

 시간이 흘러 ‘경계도시1·2’를 보기 전까지 나는 그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국가보안법에 의해 또 한 명의 희생자가 생기겠구나’ 하는 정도의 소극적 관찰자 입장이었다가 연일 매체를 통해 ‘송두율=간첩 김철수’라고 몰아가는 보도를 보고 ‘어, 그렇다면 정말 간첩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구심 끝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카메라와 신문기사처럼 나 또한 그에게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거듭 되묻는 집단 속의 한 개인이지 않았나 싶다. 나 역시 국가보안법이라는 보이지 않는 그물에 갇혀 침묵과 망각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대한민국이 한 사람의 자유로운 철학자이자 사상가를 간첩으로 몰아세워 구속시킬 때까지 진행과정을 보면 국가보안법을 통해 권력과 이념체제 유지를 위한 국가시스템이 얼마나 정확하고 집요하게 최선을 다해 작동되는지 알 수 있다. 거기에 동조하는 언론매체, 폭언을 마다하지 않은 극우 단체들. 환상적인 팀워크를 자랑하는 이들은 딱 여기까지다. 대법원 최종판결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완수하는 ‘책임의 체계’는 찾아 볼 수 없다. 즉 몰아붙이는 데는 선수고 끝까지 책임을 지는 선수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철저히 유린당한 한 개인의 철학과 인권, 걸어온 학자의 길은 누구 하나 보상은커녕 사과의 말 한 마디 없는 것 같다. 높이 피켓을 들며 추방을 외쳤던 분들도 현재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앞에서 외쳐야 할 것이다. 익명의 공간에 숨어 별점 테러를 가할 게 아니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세계화·국제화를 외치며 글로벌 경쟁 시대에 국익·국위를 말하지만 한 나라의 세계 속의 위치라는 게 무역수지로만 평가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의 자유로운 철학자의 존재마저도 부정하고 설자리도 없는 나라에서 그것은 그저 헛구호에 그칠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송두율 교수는 고향인 제주도의 바람과 공기를 맡고서야 비로소 고향의 품에 안긴다. 고향의 산하는 37년만의 송 교수를 변함없이 반겨주지만 뿌리 깊은 낡은 이념의 틀로 무장한 채 들이대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그를 거부한다. 자유로운 사고를 가두는 시대착오적인 법과 이념은 이제 사라졌으면 한다. 어찌보면 우리 사회는 더욱 많은 경계인이 나와야 되고 함께 보듬어 가야 할 것이다.

 고향의 산천 또한 언제까지 변함없이 반겨줄 지 걱정이 드는 근자이다. 김형수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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