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권 째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민들레’
2주에 한 번 함께 낭독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임 가져

 2주에 한 번씩 목요일 늦은 저녁 숨에서 모이는 독서모임이 있다. 비밀독서단은 아니지만, 그다지 요란스럽게 소문내지도 않고 모인 것이 벌써 4개월이 되어 간다. 슬그머니 모여 밤 10시가 넘도록 편안하면서도 매우 집중된 시간을 보내는 우리 독서모임은, 격월간으로 발간되는 교육잡지 ‘민들레’를 함께 낭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진행된다. 분명 11-12월호인데 12월 중순에 나온다며 (늘 그렇다. 해당하는 달의 중순쯤 가서야 받아보는!) 서로 키득거린 적도 있다. 아무튼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민들레’라는 제호를 가진 이 멋진 잡지는, 거의 20년 동안, 108번째 잡지를 발행해 오고 있다.

 요즘 읽는 108호는 ‘거리의 정치, 일상의 민주주의’라는 기획특집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늦가을부터 이어져온 전국의 촛불시위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다양한 담론들을 읽고 있는데, 아주 궁금하고 가려웠던 부분들을 꼭 짚어 쓴 다양한 필자들의 글들이 매우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해 준다.

 ‘정치’라는 말이 곧 혐오인 사회 분위기에서 순수하고 진심인 것과는 정반대의 어떤 행위인 듯 여겨져 왔지만, 그래서 모르척하고 특별한 누군가의 일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은 모두 연결돼 있고 이제는 일상을 파괴하고 있음을 알게 된 요즘, 그렇기에 주권자로서 제대로 역할하려고 모두가 촛불을 들고 있는 요즘, 혐오하면서도 특권층으로 여겨왔던 어떤 권위에 대해 제대로 그 임무와 역할을 수행하라고 요구하는 요즘, 그렇기에 이렇게 질서정연한 촛불만으로 과연 변화가 이루어질까 계속 의구심을 갖는 우리에게 딱 필요한 기획기사로 다가왔다.

 정치는 자신을 공적인 존재로 전환시키는 과정이고, 그래서 나와 우리의 경계, 사(私)와 공(公)의 경계가 계속 바뀐다. 나를 무대에 올려놓아야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다…(중략)…결국 정치는 수많은 타자들 속에서 나의 위치를 어디에, 어떻게 놓을 것인가, 무대 위에 올라서 나는 타자를 어떻게 만나고 무엇을 함께 도모할 것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 작은 승리의 경험들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분노를 넘어 삶을 바꾸는 풀뿌리 정치’. 12쪽)

 이제 선을 넘는 구체적 실천론을 고민해보자. 우선 일상의 금지선들을 수시로 넘는 것. 이것을 나는 사소한 범법행위의 습관화라고 말하는데, 인류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제임스 스캇은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에서 그것을 ‘아나키스트식 유연체조’라고 부른다.

 ‘합당하지 않은 사소한 법들을 매일 어기도록 하세요. 어떤 법이 정의롭고 합리적인 것인지 아닌지 자신의 머리로 직접 판단해 보세요. 그렇게 하다보면 여러분은 날렵하고 민첩한 정신자세를 유지하게 될 겁니다.’ 나는 여기에 적극 동의한다. 그래서 나의 연습은 붙이면 안되는 곳에 붙이고, 들어가선 안 될 곳에 들어가고, 넘어선 안 될 선을 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이 왜 안되는 것인가를 모두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선 하나를 넘는 용기’. 34쪽)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의미 있는 구절을 옮겨 적고 또 떠오른 단상을 짧은 글쓰기로 남기는, 우리의 모임은 매번 서로에게 격려를 주고받는 느낌으로 오지다. 잡지를 읽는다는 것은 사회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시각과 방식의 글을 통해 세상을 보고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어서 의미 있다. 특별히 교육 잡지이기 때문에 청소년의 목소리도 들려지고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실험과 좌절, 그리고 성과들을 만날 수도 있다. ‘전환마을에서 삶과 교육이 전환을 상상하다’ 같은 해외 탐방기도 있고, 일본의 새로운 시민운동인 ‘어린이식당’ 소식도 있다. 소소하지만 사회적 맥락 속에 접근하는 부모일기, 영화나 책 이야기를 통해 문화소식도 함께 나눈다.

 요즘은 잡지를 서점에서 사는 경우는 별로 없어 보인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정기구독을 하거나 도서관에 자주 가서 보기도 한다. 사려고 해도 보통의 서점에는 대부분 여성지나 실용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는 잡지들이 많다. 소설을 써서 기고를 하는 문학잡지나 여러 달 거쳐 지면 논쟁을 벌이는 인문 잡지는 더욱이나 찾아보기 어렵다. 한두 달을 기다려 소식을 받아보기 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일 수 도 있겠다.

 숨에서는 몇몇 잡지를 판매하기로 하면서,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잡지지만 특정일(계절)과 상관없이도 읽을 수 있는, 나름의 주제를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선택 기준을 삼았다. 그래서 들여다 놓은 것이 ‘전라도닷컴’, ‘작은 것이 아름답다’, ‘녹색평론’, ‘지글스-지리산 글쓰는 여자들’, ‘대전지역잡지 월간 토마토’, ‘일상여행잡지 어라운드’, ‘감성요리매거진 아임푸드스타일리스트’, 그리고 ‘교육잡지 민들레’ 등 이다. ‘잡지인 듯 잡지 아닌 잡지 같은 너~’랄까. 암튼 이런 잡지들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심지어는 광고도 기발하고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세상엔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이렇게 살며 이런 사회를 꿈꾸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고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생각도 든다. ‘녹색평론’이든 ‘작은 것이 아름답다’든 ‘민들레’든…. 소중한 삶을 가꿔가는 활동가들의 잡지가 더 많이 읽히고 공감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각자의 삶에서 또 그렇게 살아야지 다짐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 그저 꿈이 아니기를. 그러려면 결국 시민들이 ‘잡지’를 더 많이 사서 읽어야지 싶다.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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