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등 여성문제 고민 담아

 나는 여자다. 이 단순한 명제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똑같은 인생은 어느 누구도 없지만, 그래도 어느 여자나 비슷한 억울한 사연 하나씩은 다 있기 마련이란 걸 발견할 때마다 새삼 놀라게 된다. 그저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들은 어찌 그리 많은지, 확인할 때 마다 씁쓸하고 허탈하기까지 하다. 작년만큼 수많은 사건 사고와 화두가 등장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2016년은 정말 다사다난했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여성’ ‘여성혐오’에 대한 관심과 논쟁들이었다. 누구는 그런 논쟁이 남녀진영의 싸움처럼 느껴져 불편하다고도 했지만, 어차피 세상에 사는 인간종족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기 마련이니, 이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남성과 여성? 결국 인간의 이야기!

 

 민들레 읽기모임에서 ‘통념깨기 : ‘여자가’ 라는 말’이라는 부분을 읽으며 모두들 한탄어린 말을 주고받았던 날, 읽어봐야지 했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집어 들었다. 소설은 2015년 가을 특이한 정신이상 증상을 보이는 주인공 김지영의 현재에서 시작해 한 평범한 집의 둘째딸로 자란 그의 전 생애를 보여주면서 사이사이에 언론 등에 보도된 관련 통계를 알려주다가 다시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김지영을 바라보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실제로 82년생 중에 가장 많은 이름이 ‘김지영’이라는데, 그렇게 아주 평범하고 흔한 이름의 여성 ‘김지영’의 인생을 따라가며 진행되는 소설은 그보다 10여년 더 일찍부터 살아 온 나에게 너무 익숙한 경험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다 아는 이야기 같았고 그래서 흥미로웠다.

 ‘자꾸만 김지영 씨가 진짜 어딘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의 여자 친구들, 선후배들, 그리고 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늘 신중하고 정직하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김지영씨에게 정당한 보상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다양한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2년생 김지영’ 177쪽,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람은 흔히 자기 자신의 문제는 잘 들여다보지 못한다. 내면화된 여러 가치와 생활 습성들에서 ‘나’라는 존재를 떼어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특히 사회의 오랜 관습은 개인인 나를 들어다 보는 일에 비교적 익숙한 사람에게까지도 ‘다들 그러고 사는거야’라며 옴짝없이 옥죄는 강력한 울타리가 된다. 그런 속에서 여성이 스스로를 자각하고 함께 집단행동을 하며 새로운 틀과 정신을 주장한다는 것은 그 억압과 왜곡이 얼마나 오래 극심히 지속되어 왔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은 설레고 기쁘고 보람되기도 하지만 공포와 피로, 당황과 혼란, 특히 좌절의 연속이기에 갈등과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태어난 나대로 살아내는 일 조차 무슨 사명처럼 각오하고 치열해야 하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싸움은 오히려 그 불투명함과 혼란을 걷어내고 인생에 대해 선명해 지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내 삶이 내 살 같지 않을 때 존재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한없이 투명해지려면 계속 말해야 한다. 싸움이 불가피 하더라도’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중)

 

 잘 싸워야할 숙제 같은, 어떤 싸움

 

 그저 그런대로 살아가는 거지 뭐 그리 복잡하고 힘들게 생각하냐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눈 가리고 몇 걸음 더 나아간다고 해서 또 다른 구덩이를 만나지 말란 법은 없다.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인간은 진실을 알아보는 마음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오해받을지라도 순간의 진실을 추구하고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며 살아갈 때만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삶은 변한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118쪽)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기쁨이고 행복이기 위해서는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넘어서 한 존재로서 온전히 삶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삶을 방해하는 일련의 모든 것에 대해서 싸움은 불가피하다. 누군가를 이기고 제거하는 싸움이 아니라 논제로섬게임(non-zerosum game)이 되기 위해, 껍데기는 벗어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서로 만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싸움. 은유 작가의 산문집을 읽다보니 그 ‘싸움’은 결국 환영해야 할 것이고 잘 싸워야 할 숙제 같은 것이구나 싶다.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 한국사회 ‘여성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 싶다면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2016)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서해문집:2016)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민경 (봄알람:2016)

‘대한민국 넷페미사史:우리에게도 빛과 그늘의 역사가 있다 ’ 권김현영 외 공저 (나무연필: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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