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 시대’에 읽을 책들

 선고를 들으며 누구는 눈물을 흘렸고 누구는 환호성을 질렀다. 주권자인 시민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볼 수 있어 감격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선고가 있던 날이 마침 금요일이라 감격에 불타는 시간은 오래도록 계속된 듯 하다. 닭요리가 주메뉴가 되고 술집과 노래방은 차고 넘쳤으며 다음날인 토요일 전국의 촛불집회에서는 폭죽이 연신 터졌다. 파면당한 ‘전(前)’대통령은 비밀의 궁을 떠나 지지자들로 둘러싸인 비밀의 방으로 돌아갔을 뿐이고 여전히 탄핵무효를 외치는 이들도 있지만, 비로소 우리나라는 명실상부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위엄과 자격을 얻은 듯하다.

 대한민국은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들이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하는”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갖춘 나라이다. 뽑아놓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좋지 않은 제도라고 불평할 수 없다. 그들이 일시적으로 악을 저지른다고 해도 위축될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원래부터 그런 위험을 적절하게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언제든, 임기가 정해져 있는 정부를 해고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울 수 있다.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국민이 정부를 교체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한, 그 나라의 정부는 민주정부이다. 이 가능성을 말살하면 독재정부가 된다. 압도적인 민심의 압력이 국회의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2016년 12월9일,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재확인했다. (국가란 무엇인가, 118쪽)

 이미 우리 안에 있던 법과 제도가 실행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의 가치와 의식 수준이 그것을 누릴 만큼 준비돼 있지 않다면 그것은 그저 박제된 문장으로 남을 뿐이다. ‘민주주의는 절차와 제도를 대하는 의식과 태도를 포함한다.’(국가란 무엇인가. 314쪽)는 말대로, 2017년 오늘, 그것을 되살리고 생명력을 부여한 것은 촛불의 강렬한 외침이었고 삶의 곳곳을 민주광장으로 만든 시민들의 비폭력과 참여였다.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고 해결해야 할 적폐는 산적해 있지만, 발을 떼었으니 걸을 수 있는 것 아닌가. 80년 서울의 봄처럼, 수많은 촛불을 들었으나 명박산성에 막혔던 그때처럼, 시작은 했으나 다시 덮어져 버릴까 걱정하는 우리의 불안감 안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회이기를 원하는 강렬한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오직 인간만이 시간을 역사로 만들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역사 안에서 사람들은 나라와 공동체를 일구며, 국가와 사회라는 틀거리에 자신들의 이상과 의지를 관철시킵니다. 이상과 의지의 결합이 곧 헌법이며, 그렇기 때문에 헌법을 만드는 주체는 바로 국민입니다. (헌법의 상상력, 322쪽)

 역사가 심용환은 최근작 ‘헌법의 상상력-어느 민주공화국의 역사’(사계절:2017)에서 제1호 제헌헌법부터 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헌법 제10호까지의 변천과정을 보여준다. 헌법을 만들고 개정하는 과정에서 문구 하나를 포함하거나 수정 혹은 삭제하는 것에도 수많은 논쟁과 이유가 있었다. 시민들이 원하는 국가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헌법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총동원해 우리의 이상과 의지를 담아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해 분주해진 요즘, ‘개헌’을 주장하는 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정의를 실현할 능력있는 국가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혼자 힘으로 훌륭한 국가를 만들지는 못한다.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다. 어떤 시민인가? 자신이 민주공화국 주권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대통령이 된 것과 똑같은 무게의 자부심을 느끼는 시민이다. 주권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이며 어떤 의무를 수행하야 하는지 잘 아는 시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면서 공동체의 선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행동할 줄 아는 시민이다. 그런 시민이라야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310쪽)

 모두가 원하는 훌륭한 국가나 사회는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하다고 하겠지만, 결국 인간은 꿈꾸는 존재 아니던가. 꿈꾸며 노력하는 과정이 결국 삶을 풍요롭게 하고 온전하게 만들어 가는 것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그런 존재로 스스로를 인지하고 있느냐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일 것이다.

 그래서 ‘책 읽는 사람이 뜻을 이룬다’는 유시민 작가의 친필사인(비록 작가에게 요청한 출판사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으로 격려를 받던 날, 다시 다짐했던 것이다. 책을 열심히 팔고 읽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공동체의 선’을 이루어 가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주권자인 시민으로서 알아야 할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책

국가란 무엇인가(개정신판) (유시민, 돌베개 : 2017)

후불제민주주의-유시민의헌법에세이(유시민, 돌베개 : 2009)

헌법의 상상력-어느 민주공화국의 역사 (심용환, 사계절 : 2017 )

정의를 부탁해-권석천의 시각 (권석천, 동아시아:2015)

야매공화국10년사(事) (정훈이, 생각의길 : 2017)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제작팀, 후마니타스 : 2016)

헌법의 풍경-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개정증보판) (김두식, 교양인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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