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불편한 진실에 맞서 길 위에 서다’

 내 학창시절은 아직도 책 하나를 보고 공부모임을 해도 작전을 짜야 했고 또 심심치 않게 데모를 하고 몰래 영화를 보던 때였다. 홍성담 작가를 알기도 전에 그림을 먼저 봤다. 사실 비슷한 판화며 민중화를 볼 때면 작가 구분이 안되면서도 ‘이 분 그림은 참 강렬해. 직접적인 것 같으면서도 깊은 이야기가 있어’라며 아는 체를 했었다. 그리고는 시간이 흐르고 상상도 못한 광주살이를 하면서, 정말 오랫 만에 지난 5월 시립미술관에서 펼쳐진 전시를 통해 홍성담 작가를 다시 만났다.

 온갖 이야기와 우여곡절이 그 분의 인생을 채운 만큼 그림 역시 그러했다. 지난 정권 내내 탄압의 한가운데 있었던 ‘세월오월’과 함께,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여러 점의 그림을 통해 토해내듯 이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한 작가는 이미 관찰자가 아닌 희생자 그 자체였다. 전시를 보며 그림이 예술이 과연 이 시대에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그 즈음 발간된 그의 작품집 ‘불편한 진실에 맞서 길 위에 서다’(홍성담. 나비의 활주로:2017)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걸개그림 ‘세월오월’은 자신도 치유 받지 못한 광주시민군들이 부러진 총으로 비유된 목발을 짚고 상처받은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달려가야 하는 우리 현실의 슬픈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를 들어 올려 수많은 아이들을 우리들의 품으로 귀환시키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 정치역사에서 가장 슬픈 여인이며 이 어둡고 깜깜한 인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운명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시민군들이 절뚝이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세월오월’은 조선 후기 민화의 화려한 채색 뒤에 이렇게 전체적으로 비극의 아우라를 품고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에 맞서 길 위에 서다 : 39쪽)

 2014년 부끄럽게도 광주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세월오월’은 작품에 대한 수정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온전한 작품이 전시되기도 전에, 자극적으로 그림의 일부가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지속적으로 그림을 고치라고 회유하는 이들 사이에서, 작가는 작품전시를 거부하면서 기자회견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촛불시민의 힘으로 박근혜 탄핵이 결정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던 올 봄에서야 비로서 제대로 자리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졌다.

 “그림은 나에게 ‘도구’다. 가난하게나마 나를 먹고살게 만드는 직업이다. 또한 내가 기어코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표현하는 도구다. 그림은 나에게 ‘무기’다. 저 무참한 권력들은 항상 법을 앞세우고 뒤에서 우리 등에 총과 칼을 박았다. 그림은 그들의 음모를 폭로하고 그들의 민낯을 드러내게 만드는 무기다. 그림은 진실을 파괴하는 온갖 야만에 저항하는 지극히 단순한 내 언어일 뿐이다. 물론 나의 그림이 저 야만을 꺽는 힘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단지 이 모멸스러운 시대를 함께 견디어내는 사람들과의 연대와 공감을 추구하는 인간 정신을 세우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불편한 진실에 맞서 길 위에 서다 : 6쪽 )

 사실 작가의 방대한 작품세계를 접할 수 있게 한 작품집의 그림들은, 옆에 적힌 작가의 글로 인해 그 의미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본인 스스로 ‘핏빛 서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작가는 이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운동화비행기’를 내기까지 되었다. 그림책의 한 부분도 허투를 그리고 쓴 것이 없이 자신의 삶을 관통해 온 인생과 시대에 대한 질문과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는 것이다.

 동네책방 숨에만 있는 특별한 서가 ‘광주,전남’에는 5·18코너가 있고, 거기엔 홍성담 작가의 책 여러 종이 진열되어 있다.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책들이지만, 그렇기에 이 땅에 진득하게 발 붙이고 서서 피눈물이 나더라도 시대와 사람들을 직시하라고 이야기 한다. 영광스럽게도 이번 주말 ‘홍성담 작가와 함께 하는 책방에서의 하룻밤(북스테이)’ 행사가 진행된다. 10월 20일(금)-21일(토) 1박2일 동안 진행되는데, ‘세월오월’ 작품준비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조재형 감독과 함께 다큐 ‘세월오월’(62분) 상영회도 할 예정이다. 짧지만 깊은 밤, 밤새도록 작가와 함께 작품이야기며 우리 시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벌써 부터 마음이 두근거린다.
참가 문의 : 062-954-9420

▶홍성담 작가의 책들
‘불편한 진실에 맞서 길 위에 서다’(홍성담. 나비의 활주로:2017)

‘난장:그의 죽음뒤로 음악이 흘렀다’(홍성담, 에세이스트사:2017)

‘바리’(홍성담, 삶창 : 2013)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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