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롭다: 영화를 말하다’
조대영, 드림미디어:2018

 영화 보는 것이 즐겁다.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가 좋다. 사람들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역사를 바꾸고 누군가의 삶을 흔들어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순간을 영화에서라도 보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묵직한 보물상자 같은 책이다.

 처음 책을 만났을 때, 당혹스러웠다. 꽤 두꺼운 분량에 강렬한 붉은색, 불친절하다고 느껴질 만한 디자인까지. 요즘 책들에 비해 너무 묵직한 존재감에 ‘읽기 어렵겠구나’하고 단정지었다. 심지어 잘 펼쳐지지도 않는 책장을 넘기며 보이는 빽빽한 본문글에 ‘공부해야하는 책’인 듯 싶었다. 그런데 목차를 살피다가 감탄이 절로 나왔다. 150여 편 가까운 이 많은 영화이야기를 한 책에 가득 실었다는 사실이 대단했다. 언젠가 보리라 꼽아두었던 영화와 새롭게 알게 된 영화까지 지난 20여 년의 영화를 총망라 한 듯하다. 저자 나름의 기준에 따라 ‘한국영화의 오늘, 감독의 이름, 메이드 인 할리우드, 독립영화만세, 소설과 영화사이’ 등 나누어진 영화 목록 사이에 나의 취향과 겹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도 나름 즐거운 발견이었다. 그러다 어느 하나를 콕 집어 펼쳐들면 단숨에 그 영화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글은 부담스러웠던 이 책과의 첫 만남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했다.

 20년이 넘도록 영화토론 소모임 ‘굿펠라스’를 시작으로 줄곧 영화를 만나고 이해하고 알리는 일에 전념해온 저자는 어떤 대단한 이득이나 자리차지 없이 묵묵히 영화의 현장을 지켜온 산 증인임에 틀림없다. 현재 광주독립영화관 프로그래머로 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영화사랑은 크고 화려해 눈을 현혹시키는 거품같은 블록버스터가 아닌, 바닷가 모래 속에서 반짝이는 작지만 보석 같은 조개들을 엮은 것 같다. 수많은 고민과 시간을 지나 탄생한 한편의 영화가 쉽사리 잊혀지는 현실에서, 그의 남다른 시각과 글로 새롭게 조명된 영화들은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반짝이는 장면들을 마음에 새길 수 있게 돕는 안내자 같다.

 특별히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는 ‘5월과 영화’라는 장을 발견해서다. 40여 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도 5월 항쟁에 대한 폄하와 왜곡, 망언이 계속되는 상황은 통탄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그간 오월광주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몇몇의 영화 덕분에, 많은 시민들이 오월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한 실상과 의미를 알고 지지하고 있다. 더욱이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형태의 오월 영화는 상업적으로 알려진 몇 편을 넘어서서 그간 영화라는 작업을 통해 광주 5월이 어떻게 이해되어 왔고 사람들에게 알려졌는지, 역사의 기록으로서도 의미가 깊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자막을 일절 배제하여 ‘오월여성’들이 말하는 입과 얼굴에 주목하도록 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고통의 시간을 이겨 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항쟁당사자들이 직접 체험한 말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오월여성’들은 사드로 시름을 앓고 있는 경북 성주를 방문해 음식을 나눠먹고, 오월정신의 헌법전문수록을 위한 발족식에 참여한다. 그리고 제주도 강정마을과 4·3유족들을 만나며, 경북 성주와 제주도 강정이 ‘오월광주’와 다르지 않음을 실천한다. 그렇게 ‘오월여성’들은 오늘도 ‘오월광주’를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310쪽 - ‘외롭고 높고 쓸쓸한’ 중에서)
 
 흔히, 책 한 권에 저자의 일생이 담겨 있다거나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단지 가격이 매겨진 상품 이상의 것이리라. 심지어 조대영 작가의 책 ‘영화.롭다 : 영화를 말하다’는 수많은 이의 인생과 다양한 사회의 이야기, 긴 시간을 걸쳐 켜켜히 쌓여온 인간의 여정까지 담고 있으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이해되는 그의 글들은, 단지 영화를 좋아하는 이에게든 그 이면의 의미들을 탐색하는 것에 골몰하는 이에게든, 모두를 위해 쉬우면서도 허투루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우리의 곁에서 꾸밈없이 한 길로 삶을 살아 온 이의 글에서 거대한 우주를 만날 때, 이것이야말로 영화로운 일이 아닐까.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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