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년 전 암사동 신석기인이 그린 서울 하늘 뭉게구름

▲ <사진88> 이집트 선왕조(Predynastic) 시대. 기원전 3500∼3100년 그릇. 높이 30cm. <사진89> 빗살무늬토기. 서울 강동구 암사동. 높이 20.8cm. <사진90> 《육서통》의 수(水) 글자. <사진91>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높이 38.1cm. 국립중앙박물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나온 지 벌써 94년째 되어간다. 그 오랫동안 우리는 빗살무늬의 뜻을 풀지 못했다. 8000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하고 ‘생선뼈무늬’라 했다. 본보는 수 차례에 걸친 기획을 통해 세계 신석기 그릇 문화사 속에서 한반도 신석기 빗살무늬의 비밀을 풀어 보고자 한다. 한반도 빗살무늬의 비밀을 푸는 일은 한국·중국·일본·베트남 신석기인의 세계관에 한 발짝 다가가는 일이고, 그와 더불어 세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편집자 주>
---------------------------------------------------------------

이집트와 암사동 신석기인이 그린 뭉게구름
 
 <사진88>은 이집트 선왕조시대(기원전 5500∼3100) 신석기 그릇이다. 이 그릇에서 눈여겨봐야 할 곳은 하늘 아래 ‘반타원형 구름’이다. 반타원형 구름 사이로 삼각형 구름 띠무늬가 있고, 그 아래 야생 염소 아이벡스처럼 보이는 네 발 짐승이 있다. 또 그 아래 삼각형 구름 띠무늬가 있다. 이 삼각형은 산(山)이 아니다. 가장 아랫부분 무늬는 사람이 살아가는 ‘들판’인데, 이 무늬는 두 발 짐승과 산과 들과 새싹을 한곳에 뭉뚱그려 표현했다. 가장 아래 두 발은 새와 사람을 비롯하여 두 발 달린 짐승을 뜻하고, 산과 산 사이는 들판을 뜻하고, 거기에서 덩굴손 같은 새싹이 피어나고 있다. 그릇에 있는 무늬를 모두 아울러 해석하면 이 세상 모든 만물이 구름과 비에서 태어난다는 우운화생(雨雲化生)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우운(雨雲)은 ‘물(水)’을 뜻한다.

 <사진89>는 <사진88>과 무늬가 상당히 비슷하다. 특히 하늘 속, 반원형 구름, 빗줄기가 그렇다. (하늘 속을 보면 왼쪽과 오른쪽 깊이가 다른데, 이것을 우연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이는 연재글 마지막에서 다룰 ‘암사동 신석기인의 세계관’에서 자세히 밝힐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암사동 그릇은 경계(파란 하늘)를 뚜렷이 하고, 땅속으로 흘러드는 물(水)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88> 이집트 그릇처럼 신석기 시대에 우운화생(雨雲化生)을 그릇에 새긴 곳으로는 유럽 이베리아반도의 신석기인 이베리아인을 들 수 있다. 그 뒤로는 이탈리아 풀리아 그릇을 들 수 있다. 21세기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옛 세계관인 우운화생을 바구니와 그릇에 표현하고 있다. 우리 한반도 사람들에게 우운화생은 청동기시대 유물에서 간혹 볼 수 있고 삼국시대에 꽃을 피운다. 신라의 ‘토우장식 항아리’ 같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중국 한자와 한반도 신석기인의 세계관
 
 <사진90>은 중국 청나라 초 민제급이 편찬한 전각 글자 《육서통(六書通)》(1661)에 나와 있는 수(水) 글자 가운데 하나다. 암사동 빗살무늬토기를 공부하기 전 나는 이 글자를 온전히 읽어낼 수 없었다. 가장 아래 강줄기는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 위부터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 글자를 내보이는 까닭이 있다. 중국 한자 갑골·금문·전서·육서통에서 상하(上下), 하늘(天), 구름(云), 기(气), 땅(土), 바람(風), 용(龍), 말(馬), 물(水), 비(雨), 령(零), 입(口) 같은 글자는 암사동 신석기인의 세계관이 전제되지 않으면 온전히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자를 처음 공부할 때 시라카와 시즈카가 쓴 《한자 백 가지 이야기》(황소자리)는 아주 중요한 입문서인데, 그는 이 책에서 갑골이나 금문을 보면 구(口)를 사람의 입으로 풀이할 수 있는 글자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말(言)과 소리(音)를 보기로 든다. 이 두 글자의 옛글자를 찾아보면 둘 다 천문(天門)에서 비롯한 글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이 두 글자에서 ‘천문(天門)’을 읽어내지 못한다. 더구나 구(口)의 옛글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지 못한다. (옛글자에서 구(口)의 기원은 ‘그릇’이다) 이는 그의 한자 풀이 바탕이 처음부터 불안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진92>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조각. <사진93> 용(龍) 금문. <사진94> 말(馬) 육서통. <사진95> 천(天) 육서통. 신라와 마한 사람들은 용과 말의 기원을 천문(天門)에서 나오는 ‘구름’에서 찾은 듯싶다. 이는 신라와 마한의 ‘서수형토기’와 황남대총 남·북분에서 나온 말갖춤 무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라 <천마도>에 그린 것은 기린(麒麟)이 아니라 말(馬)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도 그렇듯 용과 말의 갑골과 금문을 보면 모두 다 머리는 하늘, 꼬리는 땅 쪽으로 뻗어 있다. <사진95> 천(天)의 육서통을 보면 사람 또한 그 기원을 천문으로 보고 있다. 이는 고구려벽화의 천문과 신라 무덤에서 나오는 그릇과 뼈그릇 천문 무늬를 보면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람이 들판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들판과 강과 구름과 하늘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이와 관련된 글자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다시 말해 고대 중국인이 글자로 그린 ‘세상’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는 중국 한자를 서양 학자들처럼 상징(symbol, 기호)으로 보고, ‘상징의 결정체’로 읽는다(55쪽). 하지만 <사진90-91>, <사진92-95>를 견주어 보면 한자가 결코 상징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는 그것(그림)을 아직 온전히 읽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빗살무늬를 해석할 때 지금까지 ‘상징’이란 말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이 무늬는 뭉게구름을 그린 것이다’ 했지 ‘이 무늬는 뭉게구름을 상징한다’ 하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거의 다 뒷말로 읽는 것 같다.
 
상징(기호, symbol) 또는 추상
 
 러시아 역사학자 리바코프(Rybakov, B 1908∼2001), 미국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Marija Gimbutas 1921∼1994), 러시아 문양학자 아리엘 골란(Ariel Golan 1921∼ )은 그릇 아가리 쪽에 있는 반원·타원 무늬를 ‘구름’으로 본다. 이것은 아주 정확히 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신석기인이 구름을 ‘처음에’ 왜 반원·타원형으로 그렸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은 고대 무늬에서 곡선이 꺾인 선으로 바뀌듯 반원·타원이 삼각형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 또한 정확하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그들이 신석기 무늬를 볼 때 그 무늬의 내력(또는 실제 대상)을 설명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불충분한 까닭은 신석기인이 그린 무늬를 ‘상징(기호, symbol)’ 또는 ‘추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상징’을 모르겠으면 ‘추상’이라 하고, 그 앞에 ‘기하학’을 붙여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한다. 하지만 세계 신석기인이 그릇에 일부러 ‘추상 무늬’를 새겼을 리 없고, 더구나 이 무늬는 ‘기하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실 ‘기하학적 추상무늬’란 말은 ‘I don’t know!’와 같은 말이다.

<사진96> 서울 강동구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조각. <사진97> 채색 바리. 샤오허옌문화(小河沿文化). 기원전 3500∼2000년. 높이 12.2cm. 한반도 신석기 유적 가운데 반원·타원형 구름무늬가 나온 곳으로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 인천 운서동,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 함경북도 웅기 송평동 유적을 들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한성백제박물관.

 우리는 지금까지 기원전 9천년부터 1천년까지 한반도 신석기인이 빚었던 빗살무늬토기 무늬를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하고, 그 시대를 ‘빗살무늬토기 문화’라 해왔다(국립중앙박물관 도록, 2005). 이 말은 우리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8천 년 남짓 기하학적 추상 무늬를 새기고, ‘추상 미술’을 해왔다는 말이다. 나는 서구 문양학자들과 달리 세계 신석기인이 새긴 무늬는 실제 대상에서 왔고, 직선으로 바뀌는 것 또한 실제 대상과 닮은 어떤 구상과 작업 과정에서 왔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무늬의 상징이 아니라 그 무늬의 ‘구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는 일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 초빙교수>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