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남자배우가…신선한 시도 불구
울다가 웃다가 충실한 공식 따른 ‘로코’

▲ 연극 ‘친정 엄마랑’.<충장아트홀 제공>
 2월19일 저녁, 연극 ‘친정 엄마랑’을 보기 위해서 금남로에 있는 ‘충장아트홀’을 찾았다. 상무지구에 있는 ‘기분좋은극장’에서 ‘S다이어리’를 보고, 유스퀘어 안에 있는 동산아트홀에서 ‘한뼘사이’를 보고 나니 마지막으로 충장아트홀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일 년에 세 번 정도는 연달아서 로코(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금남로로 발길을 옮길 때까지만 해도 새로운 연극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연극 제목이 ‘친정 엄마랑’이었다. 그 때 뭔가 눈치챘어야 했는데 홍보용 리플릿에 나온 사진과 문구에 정신이 팔린 나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연극을 보러 갔다. 물론 ‘친정엄마’라는 단어를 보면서 뭔가 무조건반사적인 거부감을 느끼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리플릿에 나와 있는 친정엄마(아무래도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한 것 같은)와 아주 발랄해보이는 소녀의 사진이 내 걱정을 날려 보냈다. 이건 그런 연극, 아주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어머니와 딸이 주는 진득한 인간관계로 점철된 연극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투적이고 상식적인 엄마와 딸의 관계를 그린 연극이 아니라 뭐가 도전적이고 역발상인 신선한 재미를 줄 것만 같아서 살짝 기대도 되었다.
 
▲엄마 혼자 오해하고 오열한 신파조
 
 일단 친정 엄마역을 하는 배우가 남자라는 게 첫 번째 신선함이었다. 여자들이 나이가 들면 남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어 목소리도 걸걸해지고 남자처럼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남자 배우가 나이 든 어머니 역을 한다는 것이 자못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기존의 뻔한 식상함이 이 연극에는 없을 것만 같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의 친정엄마와 그런 엄마의 의미를 뒤늦게야 깨닫고 참회하는 구성 말이다.

 배우는 세 명이었다. 친정 엄마 역은 역시 남자배우가 맡았고, 딸 역에 가녀린 몸피의 여배우, 그리고 멀티맨을 맡은 남자배우 한명이었다. 이 멀티맨은 자신이 모 방송국의 개그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개그맨이라고 소개했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 역을 맡았던 남자 배우 역시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개그맨 출신이었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이 연극은 로코의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시종일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자 했고 그래서 어느 부분들은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내 맘대로 기대한 것처럼 신선한 플롯을 가진 연극은 아니었다. 친정 엄마는 딸을 위해서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고, 딸은 그런 엄마의 그늘에 감동했다. 주제와 소재가 그렇게 흘러가더라도 다른 신선한 캐릭터와 구성을 기대했지만 이변은 없었다.

 딸이 암에 걸려서 귀향했을지도 모른다고 친정 엄마 혼자 오해하고 오열할 때 ‘신파’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내내 코믹극으로 흘러가다가 갑자기 비극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관객들을 울리려고 작정이나 한 듯이 엄마의 독백이 길어졌을 때 말이다. 우는 관객도 있었지만 나는 지루했다. 웃음은 맥락을 이해해야만 터져 나온다. 그래서 희극은 지적인 작업일 때가 많다. 비극은 감정에 호소하기 때문에 희극보다는 더 직접적이고 덜 지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많아서 할머니라는 말을 듣는 엄마가 창피한 딸, 상대방 남자와 신분과 환경에 차이가 많이 나서 결혼이 힘든 딸의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나가다가 갑자기 죽음이라는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진지한 연기를 시도했을 때 적어도 나는 쉽사리 동화되지 못했다.
 
연극 ‘친정 엄마랑’.<충장아트홀 제공>|||||

▲기대했던 신선한 플롯은 없으나…
 
 방송작가 고혜정이 펴낸 수필집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던 연극 ‘친정 엄마’와 같은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었던 ‘친정 엄마와 2박 3일’. ‘친정 엄마’에서 친정 엄마 역을 했던 배우 고두심이나 ‘친정 엄마와 2박 3일’에서 친정 엄마 역을 했던 배우 강부자와 이 연극, ‘친정 엄마랑’에서 친정 엄마역을 맡은 개그맨 출신 배우의 연기를 비교할 생각은 없다. 배우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 연극의 기획 의도다. 이미 있는 유명한 연극의 짝퉁 같은 이 연극을 기획해서 무대에 올린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죽음’이라는 무겁고도 진지한 주제를 살짝 비틀려고 했을까. 암에 걸렸다고 생각한 딸은 사실은 암**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중이었고, 배우들은 연기하기 힘든 대본을 쓴 작가를 죽이겠다는 농담을 해댔고, 에어로빅을 하던 노인은 죽은 걸로 처리되었다. 이 연극의 주제가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건 농담이지만 진담이 아닌 것도 아니다. 대중극은 늘상 재미와 웃음만 주어야 하는 것일까? 진지하고 무겁고 심각한 주제나 소재의 연극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대중이 아닌 것일까?
임유진<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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