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샤오허옌 신석기인이 빚은 그릇(<사진97>)을 보면 <사진89, 91> 암사동 세모형 빗살무늬토기처럼 아가리 쪽에 경계(파란 하늘)를 짓고 그 위에 ‘하늘 속’을 그렸다. 하늘 속에 ‘반원형 구름’이 위아래로 있고 그 사이마다 빗줄기(雨)를 그렸다. 그들은 하늘 속에 구름과 비를 아주 그려 넣은 것이다. 그에 견주어 암사동 신석기인은 구름싹 또는 수분(水)을 짧은 빗금(<사진89, 91>)으로 새기거나 위 <사진96>처럼 그믐달 모양 무늬를 찍었다. 이 구름싹이 천문(天門)을 통해 나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구름이 되고, 그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 것이다(<사진92> 참조).
나중에 다시 자세히 다루겠지만, 중국 신석기인 또한 한반도 신석기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릇에 무늬를 그릴 때 먼저 경계(파란 하늘)를 짓고 ‘하늘 속’과 파란 하늘 아래에 구름과 비를 그리거나 새겼다. 이러한 중국 신석기 그릇으로는 씽롱와(興隆窪, 기원전 6200∼5400), 앙싸오(仰韶, 기원전 5000∼2000), 마지아야오(기원전 3500∼2000), 씨야지야디앤(夏家店하층, 기원전 2000∼1400) 문화를 들 수 있고, 청동기 시대로는 신뎬(辛店, 기원전 1500∼1000) 문화를 들 수 있다.
<사진96>을 보면, 암사동 신석기인은 ‘하늘 속 물(水, 수분)’을 그믐달 모양으로 표현했다. 우리 신석기학회에서는 이 무늬를 보통 ‘조문(爪文 손톱조·무늬문)’이라 하고, 암사동 신석기인이 정말 손톱으로 찍어 무늬를 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사진96>의 ‘하늘 속 물’과 ‘반타원형 구름’ 점무늬를 보면 새기고자 하는 무늬에 따라 무늬새기개를 따로 만들어 새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늬 한두 개는 손톱으로 새길 수 있지만 이 많은 무늬를 손톱으로 일일이 새기기는 힘들다. 또 자세히 보면 손톱으로는 이런 무늬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조개껍데기 뾰족한 곳을 뭉툭하게 갈아 찍었을 것이다.
용과 말의 기원은 구름싹
구름싹 무늬는 이로부터 4500년이 지나 신라 금관에서 볼 수 있다. 암사동 신석기인이 그릇 평면에 새긴 구름싹을 신라인이 3차원 입체로 만든 것이 바로 곡옥(曲玉 굽을곡·옥옥)인 것이다. 요즘은 곡옥이란 이름이 ‘조문(爪文손톱조·무늬문)’처럼 무늬의 형태만 말해 줄 뿐이라면서 ‘옥룡(玉龍)’이라 한다. 신라 금관에 수없이 달려 있는 곡옥(구부러진 옥)을 용의 원시 형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 또한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다. 중국 전국·진·한대의 수막새(<사진100>)와 고구려신라백제 수막새를 보면, 천문(天門)에서 <사진96> ‘하늘 속 물’과 똑같은 구름싹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재글 말미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고대 중국인과 한반도 사람들은 용과 말을 천문에서 나오는 구름, 그 구름의 3차원 입체 형상으로 보았다(<사진93, 94> 참조). 그렇다면 신라 금관의 옥룡은 용의 원시 형상이기 전에 ‘구름싹’(또는 빗방울水)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반원·타원형 구름무늬는 뭉게구름
다시 <사진89, 96>을 보면, 암사동 신석기인은 하늘 아래 점점이 점을 찍어 반원·타원형 무늬를 새겼다. 이 무늬를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무지개무늬’라 하고, 신석기학회에서는 ‘중호문(重弧文 겹칠중·활호·무늬문)’이라 한다. 활 대 무늬가 겹쳐(重) 있다는 말이다. 이 무늬 이름 또한 조문처럼 무늬의 형태(겉모습)만 알려줄 뿐 이 무늬가 정작 무엇을 새긴 것인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나는 반원·타원형 무늬를 ‘뭉게구름(적운, 층적운)’으로 본다. 그리고 점점이 찍은 점은 구름 속의 수분(水)으로 읽는다. 이 반원·타원형 구름무늬는 암사동 신석기인뿐만 세계 신석기 그릇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구름무늬이기도 하다.
서울 암사동과 부산 동삼동 편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 474장과 179장에서 반원·타원형 구름과 삼각형 구름을 살펴봤다. 암사동 474장 사진 자료에서 반원·타원형 구름무늬는 92점, 삼각형 구름무늬는 201점이다. 동삼동 사진 자료 179장에서 반원·타원형 구름무늬는 1점, 삼각형 구름무늬는 118점이었다. 삼각형 구름무늬(<사진91>)가 월등히 많은 까닭은 반원·타원형 구름무늬보다 새기기가 편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표가 덜 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원에 가까운 그릇에 반원·타원형보다는 삼각형 구름무늬가 더 잘 어울려서이기도 하다.
<사진104-106>은 다섯 살 여자아이가 그린 구름 그림이다. 세계 어린이, 특히 초등학교 2학년 아래 어린이들은 구름을 그릴 때 거의 다 <사진104>처럼 그린다. 구름 가운데 이런 구름을 층적운(또는 적운)이라 하는데, 사실 층적운(<사진103>)을 보면 꼭 이렇게 생기지도 않았다. 어떤 구름이든 아이들이 이렇게 그리는 까닭은 입체(3차원)의 평면화(2차원)라 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실제대상을 평면에 그릴 때 2차원 x축과 y축 가운데 어느 한 방향에서만 본 것을 그린다. 거기에는 음영도, 원근감도 없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신석기인과 청동기인이 그린 그림도 그렇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같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사진104>를 수평으로 나누면 <사진105>가 된다. 이 구름을 그대로 경계(파란 하늘)에 붙이면 <사진89, 102>의 ‘반원·타원형 구름’이 되는 것이다. 신석기인은 이 구름에 점점이 점을 찍어 그 안에 비의 씨앗 물기(또는 수분)가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이 또한 세계 신석기 그릇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진102>의 반타원형 구름무늬는 암사동 신석기인의 구름무늬에서 표준이라 할 수 있고, 그 뒤 여기서 실타래 모양, 삼각형, 반호띠 구름무늬로 변형이 이루어진다.
아이들이 그린 구름을 보면 <사진106>처럼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구름 속에 비(또는 수분)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어떤 아이는 구름 속에 점점이 점을 찍어 놓기도 한다. 아이들의 ‘직관’이라 할 수 있다. 신석기인이 그린 무늬는 어린아이들이 그린 평면화와 아주 닮아 있고, 그 무늬는 추상이나 상징이라기보다는 실제 대상(구상)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