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의 이중성, 원작과 다른 접근
노래·연기·춤 어우러진 무대 인상적

▲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공연마루 제공>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원작은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1886)이다. 한 인간의 내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선과 악에 대해서 쓴 이 소설의 영향으로 탄생한 것이 마블사의 캐릭터 ‘헐크’(1962)이다. 이 녹색 괴물은 다시 TV드라마로 만들어졌고, 1977년에 CBS에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는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헐크는 이 이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프랭크 와일드 혼은 스티븐슨의 소설을 바탕으로 뮤지컬을 만들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1997년 4월28일 브로드웨이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이후 다른 나라로 수출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초연 이래로 거의 해마다 공연이 이뤄지고 있는 작품이다. 이 뮤지컬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조승우가 있고, 이 뮤지컬에 나오는 넘버 중 하나인 ‘지금 이 순간’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모르는 사람도 이 노래를 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 뮤지컬이 광주에 온다고 하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이드 캐릭터 설정 이해난
 
 그런데 뮤지컬이란 장르가 연기가 주인 연극적 요소에 춤과 노래가 더해진 것이다 보니 가끔 불협화음이 생길 때가 있다. 노래는 좋은데 연기가 안 되거나 연기는 훌륭한데 노래가 부족한 배우들이 나오는 뮤지컬이 있는 것이다. 유명 가수에서 유명 뮤지컬 배우가 된 이가 나오는 뮤지컬을 보러 갔다가 대단히 실망한 적이 있었고, 유명한 뮤지컬 배우가 그 뮤지컬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인 노래를 엉망으로 부르는 것에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 적도 있었기에 관람 전에 내 마음 자세를 정했다. 연기보다는 노래에 주안점을 두기로 했고, 특히 ‘지금 이 순간’만 잘 부른다면 휼륭한 관람으로 치리라 마음먹었다.

 연기와 노래만 생각하고 갔던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뮤지컬의 서사 구조였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원작 소설과 서사 구조가 달랐다. 원작에서는 50대인 지킬이 뮤지컬에서는 혈기왕성하고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거기까지는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지킬 박사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선과 악을 분리하면서 나온 하이드(악)라는 인물이 다른 하나의 존재로(마치 헐크처럼) 나타나는데 뮤지컬에서는 한 명의 배우가 1인 2역을 했다. 원작에서는 선과 악의 특징에 따라 존재의 모습도 달라지기 때문에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 목소리 톤만으로 하이드와 지킬 모두를 연기해내는 부분이 낯설게 다가왔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공연마루 제공>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부분은 하이드의 캐릭터 설정이었다. 원작에서 하이드는 저명한 인사인 지킬이 자신에게서 분리해 낸 인간의 어둡고 타락한 부분이다. 하이드는 뚜렷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한다. 댄버스 경을 살해한 것도 그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분노(댄버스 경과 상관 없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하이드는 ‘순수악’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뮤지컬에서 하이드는 지킬의 연구를 방해했던 유명 인사들을 차례로 살인해 나가서 마치 하이드가 자신의 다른 인격을 위해 복수한다는 느낌을 주었고, 더 나아가 그 상류층 인사들이 소아성애자랄지, 위선적인 모습을 지닌 인물들이어서 겉으로는 문제없지만 안으로는 썩어 있는 사람들을 하이드가 청소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관객들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게 만들었다.

 지킬을 젊은 청년으로 만들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원작 소설을 그대로 만들면 상업적 재미가 없는 지극히 우울하고 무미건조한 작품이 될까봐 그랬는지 뮤지컬에는 난데없이 여자들이 등장한다. 지킬의 약혼녀 엠마와, 거리의 여자 루시가 그들이다. 엠마가 루시보다 약간 더 하이소프라노였고, 두 사람이 지킬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이중창은 전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었다.
 
▲ 역량 한꺼번에 쏟아붓는 배우들
 
 하이드의 살인에서 원작 소설과 가장 가까운 의미를 지닌 살인은 거리의 여자 루시를 죽인 것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행해진 이 살인은 그런데 뮤지컬만 놓고 봐서는 약간의 어긋남이 있다. 계속해서 상류층의 위선자들(지킬의 연구를 방해했던)만 골라 죽이던 하이드가 갑자기 자신을 사모하는 루시를 죽인 것은 뮤지컬 진행에서 개연성이 떨어졌다.

 원작 소설과 서사구조가 많이 다르고, 하이드의 인물 캐릭터가 너무 판이했지만 뮤지컬 자체는 볼만했다. 일단 배우들이 노래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연기도 되었다. 이 공연은 중간에 10분의 인터미션을 가지는데 인터미션 전에 이미 나는 이 공연이 훌륭하게 진행될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뻤다. 지킬과 하이드 역을 맡은 배우에 대해 소상히 알고 싶어서 무려 만 오천원짜리 프로그램 북까지 구입했다. 배우의 이름은 전동석이었다.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를 보지 못해서 비교 불가지만, 이 전동석이라는 배우의 ‘지킬 앤 하이드’도 조승우의 것만큼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공연마루 제공>

 가장 관심이 갔던 ‘지금 이 순간’도 훌륭했지만, 지킬과 하이드가 서로 대립하면서 고뇌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Confrontation(대결)’에서 배우의 모든 역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전동석 배우는 지킬은 좀 부드러운 톤으로, 하이드는 약간 굵고 낮은 톤으로 처리하여 한 인간 안에 있는 두 내면을 확실하게 표현하였다. 노래를 하도 잘해서 공연 후에 검색해보니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 휴학생이었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선과 악에 대한 알레고리 소설로 유명한 스티븐슨의 원작과 다른 서사구조로 나를 당황하게 했지만 노래와 연기와 춤이 되는 배우들이 열연하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근래에 본 그 어떤 연극보다 흡족한 공연이었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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