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설의 시대 1, 2’김탁환 (민음사:2019)

 1권 이상이 넘어가는 장편소설은 읽는 대상이 아니었다. ‘소설’이라는 이야기책 보다는 인문사회과학서적으로 세상을 알아가던 그 시절이 하도 강렬해, 그것만이 세상에 근간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책방을 열고 제일 곤란했던 것이 ‘문학’에는 도무지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동안 무엇을 들고 읽었던 것인가.

 그렇게 문외한 책방지기에게 소설가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2016년 세월호 참사에 구조활동을 했던 민간잠수사를 통해 쓴 사회파 소설 ‘거짓말이다’(북스피어.2016)가 출간되고, 고맙게도 출판사와 작가가 함께 하는 전국 순회강연 첫 시작을 광주 동네책방 숨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김탁환 작가와의 인연은 문학에 문외한이던 책방지기가 소설에 관심을 갖고 사회이슈를 넘어 역사소설까지 확장하여 읽게 만들었다. 특히 이번에 출간된 작가의 신작 ‘대소설의 시대’는 소설에 의한 소설을 위한, 장편소설과 장편작가 그리고 ‘같이 읽고 함께 사는’ 독자들을 위해 바쳐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소설에 의한 소설을 위한…’
 
 남자작가들이 인물들의 갈등을 대략 만들고 거기에 공맹의 도리를 얹었다면, 여자 작가들은 직접 겪은 사건과 그 사건으로 인해 받은 몸과 마음의 상처와 그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나눈 대화까지, 아주 세세히 소설에 담았다네.…여자로서 겪는 다양한 경험들 위에서 역사도 따로 공부하고 아름다운 시와 문장도 익혔던 거야. ‘산해인연록’은 물론 임두 작가님이 홀로 23년 동안 쓴 거작이지만, 그 밑바탕엔 이처럼 여자 작가들과 여자 독자들이 백년이 넘게 쌓아온 상상의 세계가 깔려 있다네. 이건 청나라에도 없고 일본에도 없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소설이야. 놀랍지 않은가? (1권. 46~47쪽)
 
 ‘대소설의 시대 1, 2’(민음사)는 17~19세기초까지 왕성했던 한글소설에 얽힌 이야기를 줄기로 하고 있다. 당시 한글소설은 여성작가와 여성 독자들에 의해 폭발적인 인기와 성장을 했고 궁궐에서는 따로 필사궁녀가 있었을 정도였다. ‘위로는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에서부터 아래로는 소설을 필사하는 궁녀에 이르기까지, 궁궐과 사대부 가문과 세책방을 가리지 않고, 순수 소설 애호가들이 넘쳐났다. 여기서 ‘순수’라는 말을 붙인 까닭은, 그들에겐 소설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이야기는 남존여비의 세상,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못하는 사회에서, 소설을 통해 그들만의 상상을 펼쳐나갔다. 함께 모여 베끼고 읽고 논하는 자리는 자연스럽게 소설을 즐기는 모임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작가가 탄생한 텃밭이기도 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백탑파 시리즈로 1만매의 원고가 되기까지 16년간 4편의 소설 8권의 책을 낸 김탁환 작가가 5번째 이야기로 들고 온 것이 ‘여성작가와 독자’의 이야기이다.

100권이 넘는 소설이 다반사였던 그 시대, 23년간 199권을 써온 ‘산해인연록’을 5개월째 잇지 못하고 있는 작가 임두를 위해 김진과 이명방이 활약하는 이야기는 탄탄한 구성과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수작이다.

16년전 썼던 백탑파의 첫 책 ‘방각본 살인사건’이 제일 못 쓴 소설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당시의 사회상과 국학(國學)에 대한 연구가 미흡했던 상태에서 썼기 때문이라는 작가는 16년간 어느 학술서 못지않은 참고문헌이 달린 소설을 내고 있다.
 
 ▲한글소설 역사·의미 새롭게 조명
 
 김탁환 작가의 ‘대소설의 시대’는 2000매 총 2권으로 구성된 장편이지만 읽는 것은 하룻밤이면 충분하다. 그만큼 몰입도가 있기 때문이다. 짧게 홀로 소비하는-‘읽기’보다는 ‘보기’의 시대에 역행하는 것 같지만, 그렇기에 더 의미있는 소설이다.

18세기 한글소설이 넘쳐났던 이유는 계급에 상관없이 문중의 여성들이 장터의 아낙들이 함께 모여 읽고 필사하고 그러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그러다 작가가 되는 것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독자와 필사자가 작가로 나아갔던 것이다. 극심한 남존여비의 시대, 읽는 여성들은 결국 문제적이고 위험한 여성으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로 부터 선택과 행동을 하게 되고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 여성들의 소비로만 치부되어 삭제되었던 한글소설의 역사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이번 작품이 반가운 이유다.
 
 재밌으면 눈을 비비면서도 듣고 재미없으면 첫 줄만 읽고도 하품을 해 대던, 백씨 문중 여인들이 없었다면, 나는 감히 소설을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쓰는 것만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 옮겨 적는 것, 함께 떠드는 것, 소설 밖으로 나가더라도 막지 않는 것, 소설 밖에서 들어오더라도 환영하는 것 역시 쓰는 것만큼이나 소설을 즐기는 것임을 고맙게도 나는 겨우 스물넷에 알아 버렸다. 그리고 다신 그 즐거움으로부터 떠날 수 없었다.… 나 홀로 대소설을 계속 쓰는 것은 스물넷에 만난, 소설과 삶을 뒤섞어 고통의 경계도 슬픔의 구별도 기쁨의 한계도 없애 버렸던 여인들을 기억하며, 내 소설에 한 사람 한 사람 넣는 즐거움 덕분이다…스물넷처럼 쓰고 읽고 적으며, 스물넷처럼 살고 싶다, 솜씨는 지금이 더 낫지만 즐거움은 그때가 더 컸다.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2권. 92~93쪽)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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