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각색
달콤한 꿈 또는 저주, 아직도 모를 사랑

▲ 토니(왼쪽)와 루나.<전남대학교 극문화연구회 제공>
 지난 9월 6일부터 7일, 이틀간 궁동예술극장에서는 셰익스피어 작품이 각색되어 올라갔다. 전남대학교 극문화연구회(이하 전대극회)는 제 116회 정기공연으로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A Midnight Summer’s Dream)’을 각색하여 ‘선잠’이라는 제목으로 올렸다.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 4대 희극 중 하나로, 멘델스존은 17세에 이 희곡을 읽고 영감을 받아 같은 제목으로 극음악을 썼다.

이 극음악에 나오는 ‘결혼행진곡’은 지금도 사랑하는 이들의 결혼식장마다 울려 퍼지고 있다. 발레도 있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연극 무대는 셀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도 다수 참여한 대학교 동아리 연극이 셰익스피어 작품이어서 흥미가 갔다. 각색은 졸업생 위남호가 맡았고, 연출 오태훈은 14학번이었다. 당연하다고나 할까, 이 연극을 보러 갈 때는 각색이 관람 포인트였다.


37편에 달하는 세익스피어의 희곡 중에서 ‘한여름 밤의 꿈’을 선택하여 각색해서 올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제목을 ‘선잠’이라고 한 이유도 궁금했다. 무릇 선잠이라고 하면 깊이 잠들지 못하는 상태고, 그 제목과 연극 내용이 얼마나 부합하는지 알고 싶었다.
 
▲ 장소 지정하기 어려운 현대극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극을 각색해서 올리니 만큼 대대적인 작업이 벌어졌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전대극회의 ‘선잠’의 구성은 전반적으로 ‘한여름 밤의 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원 희곡에서는 아테네의 공작 테세우스와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타가 나오고, 마지막에 이 쌍도 결혼식을 올리지만 전대극회의 ‘선잠’에서는 이 두 사람이 빠졌다.

이 두 사람이 빠지니 극중극으로 나오는 ‘피라머스와 시스비’도 빠졌다. 장소도 숲 안에 있는 고급 리조트로 바꾸어서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했다. 이 리조트의 인물인 매니저는 한 배우가 1인 2역을 했다. 매니저 역일 때는 정장을, 요정 역일 때는 요정 의상을 입어야 했기에 가장 바쁜 역이었다.

 드미트리어스나 라이샌더 같은 아테네식 이름도 좀 더 부르기 쉬운 간편한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는데, 요정의 왕인 오베론이나 여왕인 티타니아, 요정 퍽, 그리고 헬레나와 바텀은 그대로였다. 이름을 보면 적어도 공간적 배경이 한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어디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선잠’은 장소를 지정하기 어려운 그저 현대극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잠’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아버지가 맺어주려고 하는 사람(앤디)과의 약혼을 피해서 진짜 연인(토니)과 숲으로 도망을 치는 아가씨(루나)가 있다.

루나에게서 거부당한 앤디를 사모하는, 루나의 친구 헬레나가 있다. 요정의 왕 오베론과, 그의 시종인 요정 퍽은 마법을 부려 이 얼크러져 있는 사랑의 끈을 정리한다. 그리고 루나의 부모인 헨리와 로즈는 결혼 26년 만에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루나는 토니와, 헬레나는 앤디와 이루어지고, 헨리와 로즈도 리마인드 웨딩을 올리며 행복해진다.

 뭔가 셰익스피어의 원 대본과는 많이 달라서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으니 마음을 열고 연극을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앉았다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 원작이 주는 몽환적인 아름다움이나 환상 속의 세계가 별로 없자 그렇지 않아도 열었던 마음을 더 활짝 열어야 했다. 마음을 열고 봐서 그랬는지 열정 충만한 대학생들의 셰익스피어, 그렇게 나쁘게 보지 않았다.

일단 연기는 신입생들의 설익은 연기에 전반적으로 톤이 맞추어져 있어서 부담 없이 보았다. 그 와중에 연기가 되는 두 명이 퍽으로 분한 차한결(응용식물학과 14)과 루나의 아버지 헨리 역을 맡은 고경태(원예생명공학과 13)였다.

헬레나에게 사랑의 묘약을 바르는 퍽.<전남대학교 극문화연구회 제공>|||||


 사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연관되어 있는 요정 퍽 역을 그나마 연기가 되는 배우가 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고,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가 제법 연기가 되어서 좀 놀라기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 배우는 이번이 마지막 무대였고, 연기 전공으로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서 그랬는지, 각색과 연출의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전대극회의 ‘선잠’은 ‘부부의 날(매년 5월 21일)’에 공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것은 눈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출을 감행한 딸을 두고 완고한 아버지와 그 아내가 벌이는 다툼이 해결되는 과정을 보노라면 이 연극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미 결혼한 자들의 사랑과 삶에 대한 것이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결혼한 이들의 사랑도 사랑이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서약에 묶이기 전, 사랑을 선택해야 하는 자들에게 사랑은 정말 절박하고 간절한 것이다.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 사랑한다고 말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확실하게 아는 것. 그런데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불확실성이 가장 확실한 속성이다.

 셰익스피어도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행복한 결말로 연인들을 이끌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집필한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가장 슬픈 결말로 연인들을 데려갔다.

어쩌면 요정의 마법의 묘약이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사랑, 사랑이 불러내는 내 안의 광기, 사랑이 내게 퍼붓는 저주와 상처, 한여름 밤의 꿈같은 달콤함. 이 모든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녀석에게 인간들은 지금도 마음의 가장 큰 자리를 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우리는 사랑을 모른다. 대학생들의 풋풋한 연극 ‘선잠’을 보고 다시 한 번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지만 괜히 헛웃음만 나온다. ‘선잠’에서는 토니였던 라이샌더의 대사로 글을 마무리한다.
 
 사랑은 마치 음향처럼 순간적이고, 그림자와 같이 재빠르고, 꿈과 같이 짧고, 그래, 한순간 천지간을 밝게 비추어, 사람들이 “보라!” 하고 외칠 사이도 없이 다시 암흑의 아가리 속에 먹혀버리고 마는 캄캄한 밤의 번개보다 더 짧은 목숨으로 되버리거든. 그처럼 아름다운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부수어지기 쉬운 법이라구.
 -셰익스피어 ‘한여름밤의 꿈’ 중에서 라이샌더.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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