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은 개뿔’ 신혜원·이은홍 지음
(사계절 출판사; 2019)

▲ ‘평등은 개뿔’ 표지.
 사람은 사는 동안 많은 방식으로 타인에게 흔적을 남긴다. 이 흔적은 모여 합의가 되고, 합의는 법으로, 문화로, 사회로 발전한다. 모든 개인은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딱딱한 방식으로 말하자면, 책임을 져야 한다. 신혜원과 이은홍. 두 작가의 만화 ‘평등은 개뿔’(신혜원·이은홍 지음, 사계절 출판사, 2019)에서도 노골적인 우리의 책임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짐짓 타인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다. 오해에서 비롯된 여아 낙태의 위기를 모면하고 태어나 남성의 권리를 누렸지만 진보적인 태도로 삶을 바라보는 운동가 은홍. 여남(女男)이 평등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회의 불평등에 조금 더 빨리 눈을 뜬 페미니스트 혜원. 두 사람은 결혼 전 많은 약속을 한다.
 
 가사 노동과 육아는 공평하게 나누어 하기!
 각자 수입은 스스로 관리! 생활비는 동등하게 내기!
 자신의 본가 쪽 문제는 스스로 주도적으로 해결하기!
 서로에게 불만이 생기면 솔직히 이야기하고 의논하기!
 평등한 결혼 생활을 위하여!
-‘평등은 개뿔’ 22쪽
 
 결혼이란, 아직도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럼에도, 축하할 만한 일이다. 불완전한 한 개인이 정착을 꿈꾸고, 평생 함께하고픈 상대를 찾았다는 말이 아닌가. 결혼이라는 삶의 중대사에는 꽤나 부풀린 감정이 섞여들기 마련이다. 딱 혜원과 은홍이 그랬다. 그들은 서로를 돕는 평등한 삶을 상상했고 상대방과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사회적 관성이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평등’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 혜원은 답답했고, 은홍은 더 답답했다. 두 사람이 가진 갈등의 모양새는 은홍이 식사 당번이었던 날의 대화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은홍 : 참 내. 부부가 일일이 그걸 말해야 알아? 딱 보면 몰라?
 혜원 : 모르지! 말 안 하면 어떻게 알겠어? 서로 그런 사정 있으면 상의하자고 약속했잖아! 우리 약속을 기억 못 해? 난 그게 화가 나! 미리 이야기했음 내가 준비했잖아.
 은홍 : 하, 난 정말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널 얼마나 잘 도와주는지 잘 알잖아. 안 그래? 다들 나만큼만 하라고 그래.
 혜원 : 뭐? 도와주는 거라고? 둘 다 일하고 돈 버는데 누가 누굴 도와? 넌 밥 안 먹어“ 옷 안 입어?
 은홍 :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 아 피곤해… 이렇게 피곤한 여자였다니! 나 같은 남편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들어… )
 혜원 : 잘 들어! 난 네 엄마 역할 하려고 너랑 함께 사는 게 아니야.
-‘평등은 개뿔’ 42쪽
 
 ‘도와주고 있는데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 저 여자는 나를 지지고 볶고 못살게 군다!’ 두 사람은 끝없이 다투고 소리지르다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혜원은 은홍에게 말한다. “남자 여자 남편 아내. 그런 고정관념이 적어도 우리 사이엔 없었으면 해. 난 네가 페미니스트가 되면 좋겠어!” 그래서 은홍은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했다.

 이후로 모든 것이 잘 풀렸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은홍은 작은 행동 하나에도 칭찬받았고, 혜원은 남편 못살게 구는 여자라는 틀에 갇혔다. 은홍은 남자가 되어서 유난 떤다 핀잔을 듣는 정도였지만, 혜원은 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떠드는 사람”으로서의 피로감을 안고 살았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생각하고, 변화하고, 연대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평등하기로 소문난 결혼 30년 차 부부’가 되었다. 페미니즘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공동체를 이뤘다.

 록산 게이는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모두가 완벽한 사람이나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사회를 더욱 좋게, 진보하게 하는 것은 완전한 소수 아닌 불완전한 다수이며, 그들의 작은 변화와 목소리들이 모여야 굳건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수에는 분명히 남성도 포함하고 있다.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며 자주 맞닥뜨린 질문 중 하나가 있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남자들을 하나하나 설득하고 있어야 해?”라는. ‘평등은 개뿔’을 읽다 보면 혜원의 고생담이 하나하나 눈앞에 그려지며 마음이 서늘해진다. 왜 항상 여자들은 저런 고충의 시간을 개인적으로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치솟는다. 남자들은 불평등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으려 들지! 하지만 그래서 이 책은 더욱 소중하다. 혜원이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서 여성이 맞닥뜨리는 차별과 굴욕을 드러냈다면, 은홍은 그 과정에서 남성이 얼마나 무책임해질 수 있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해결되지 않은 것을 얼마나 잘 회피하는지,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고백한다.

 여성 혐오가 스포츠가 되고, 페미니즘이 멸칭으로 불리는 시대. 혜원과 은홍은, 어쩌면 이보다 더했을 시대를, 불완전한 페미니스트 부부로 살아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이 만화는 이상향을 위한 교과서가 아닌 가능성에 대한 교과서다. 무엇 하나 완성되지 않아도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이 당신에게, 당신의 답답한 남편, 남동생, 남자친구에게, 어쩌면 당신이 가르치는 학생에게, 당신을 가르치는 선생에게, 마땅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돌파구가 되기를 바란다.
호수<동네책방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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